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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여섯 개의 대처상"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by 겨울달

새해의 첫 월요일이 돌아왔고, 동생이 갑자기 "오늘 토론 재미있겠네."라고 카톡을 보냈다. 하지만 정작 나는 jtbc 신년토론 방송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

"셜록 볼 거야."

하지만 절대 그럴 리가 없고요…. 너무 졸려서 비몽사몽 하던 나는 결국 셜록이 신나게 떠들던 소리를 못 참고 실시간 방송을 꺼 버렸다. 스포일러를 밟긴 했지만 별 감흥은 없었고, 그래서 트위터가 들썩거리는 걸 구경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봤다! 더빙판으로!! 지금은 트위터의 분노에 내 몸을 던지고픈 심정이다. 왜 이 드라마에 한국 드라마 패치가 된 것인가….



내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마음에 안 들었다가 점점 화가 났던 지점을 짚어보면

첫째, 모리아티로 시작한 이번 에피소드, 하지만 그의 존재는 훼이크라는 것. 맥거핀 좋아하시네! 이건 그냥 훼이크지.
둘째, 존 왓슨을 왜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요? 왜??
셋째, 메리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방법. 그리고 문제의 그 장면. 진하게 느껴지는 한국드라마의 향기.
넷째, 더는 고기능 소시오패스가 아닌 셜록.

셜록의 숙적이 모리아티라는 건 알겠고, 이게 드라마라는 것도 알겠지만, 죽은 자의 망령이 셜록의 정신세계를 잡고 흔들어 놓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이제 등장도 하지 않는 악당 하나에 셜록이, 아니 셜록만 지나치게 집착하는데, 그걸 보고 있자면 셜록이 이성적인 머리만 돌아가는 고기능 소시오패스라는 게 설득력이 떨어진다. 모리아티를 놓고 싶지 않으면 그를 죽이지 말았어야 했고, 2시즌 엔딩을 그딴 식으로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아일린 애들러와 마그누센은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사라졌는데, 모리아티는 대체 몇 년을 떵떵거리는 건지….

그리고 왓슨. 왓슨한테 왜 그래? 평범한 삶을 사는 남자의 방황은 왜 우연히 만난 '다른 여자'와의 '정다운' 커뮤니케이션이어야 하는 걸까. 왓슨이 메리를 사랑해서 메리가 해왔던 모든 일을 잊고 현재와 미래의 메리와 함께하겠다고 말했었다. 개판이었던 3시즌에서 기억나는 것 그거 하나밖에 없는데 그걸 (극 중) 몇 개월 만에 헌신짝 취급한 걸까? 존이 다른 여자에게 쓴 문자도 진짜 찌질했단 말이지.

결국, 여섯 개의 대처 상이 부서지고, 모든 신호가 메리를 향하자, 메리는 그 여느 때처럼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한다. 바로 잠적.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묘한 K-코드는 만국 공통이라고 믿고 넘어간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총이 발사될 때, 온몸을 내던져서 막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이 감성….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이 남긴 말….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 사람은 다르고, 대사도 조금 다르지만 묘하게 비슷한 느낌…! 한국 드라마 느낌! 적을 앞에 둔 그 시간부터 최후의 울부짖음까지, 아니 수족관 장면 전체가 그냥 한드의 한 장면이었다. 내가 이런 장면을 보려고 셜록을 보는 게 아닌데….

그래서 결국, 셜록은 자신의 맹세를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엄청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셜록이 허드슨 부인에게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어요."라고 말할 때 허드슨 부인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원래 셜록은 저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이제는 죽은 사람의 부탁을 어떻게 해야 들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 오만하고 이기적인 셜록이 아니라 그냥 인간 셜록이 서 있었다. 본인 스스로 고기능성 소시오패스라고 말하고 다녔던 셜록, 그의 독특한 캐릭터를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이 장면에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맹세. 3시즌 3편에 했던 그 맹세. 셜록에게 그게 정말 중요했던 걸까? 3시즌 방송할 때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몰랐는데. 셜록이 지금 흔들리는 건 친구가 더는 자신의 곁에 없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맹세를 지키지 못하게 된 것 때문인 게 더 큰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면 셜록답기도 하다.

아마도 남은 2개 에피소드는 죽음보다 더한 위기를 맞은 셜록과 존, 두 사람이 어떻게 다시 맘 맞춰 일하는 파트너가 되는지를 그릴 듯하다. 드라마의 두 주인공은 당연히 화해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겠지만, 그 파장 한 번 일으켜보자고 멀쩡한 캐릭터를 사지로 보내야 했던 걸까. 셜록과 존이 아닌 이상 다른 캐릭터는 큰 의미가 없으며, 스토리를 위해 희생하는 존재라는 건 알겠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건 다른 법이니까.

아... 암튼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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