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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8

따뜻한 교감

by 겨울달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거의) 모든 이벤트와 노래와 행사를 싫어하는 나에게 한 줄기 빛이 내려왔으니, 바로 <센스8> 크리스마스 스페셜.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글쎄…."라고 말할 때 이 드라마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던 사람이 여기 있다. 무한한 상상력이 낳은 따뜻한 교감의 세계. <센스8>는 그런 드라마다.



<매트릭스>에서 워쇼스키스가 세운 차가운 세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세계가 비록 신기하고 새롭고 박진감 넘치긴 해도, 날카로운 금속과 끈적끈적한 액체로 이루어진 세계는 소름 끼치게 징그러웠다. 그 이후 만들어낸 <클라우드 아틀라스>나 <주피터 어센딩>의 세계관은 아주 흥미로웠지만, 정작 이야기는 부족했다. 세계관에 힘을 줘서 결국 이야기엔 힘을 주지 못했던 것. 그래서 <센스8>이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상은 글 쓰는 사람들이 감당할 만큼 펼친 대신, 그 안의 인물은 다양해졌고, 다양한 인물이 참여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졌다. 이를 글로벌하게 확장한 건 워쇼스키스의 판단이었겠지만.


1시즌은 생각보다 느리게 전개되었다. 등장인물만 8명인 만큼 이들을 소개하고, '센세잇'들의 규칙을 소개하는 데에 다소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 대신 시간을 할애한 만큼 인물들의 이야기는 더 재미있었다. 어느 순간 인물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게 되었으니까. 특히 노미와 리토는 정말 매력적이다. 인도 여자 칼라와 독일 남자 울프강의 독특한 교감도 마음에 들었다. 반담과 선은 매력이 넘치진 않지만 개성 있는 캐릭터였다. 아이러니하게 다른 드라마에서는 주인공격이고 이 드라마에서도 비중이 가장 큰 윌과 라일리가 제일 매력이 없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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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8>은 보면 드라마가 굉장히 즐겁다는 생각을 한다. 고난도 역경도 많고, 심지어 죽을 위기를 수차례 넘기기도 하지만, 센세잇들은 절망적인 심정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 그런 감정을 느낄 때 조용히 옆에 나타나 그를 위로하고 함께 그 감정을 나눈다. 그래서 나도 같이 우울해지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센스8>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이들이 서로의 감정 상태에 따라 교차하여 나타나는 것. 특히 이들은 두려울 때 번갈아 나타나며 함께 싸우고, 응원한다. 그걸 잘 보여줬던 부분이 아이슬란드에서 윌이 라일리를 구출할 때였다. 이 에피소드는 그동안 많은 시간을 들여 설명하고자 했던 센세잇의 법칙을 압축해서 보여줬다. 이번 크리스마스에서도 선이 동생이 보낸 암살자들에게 목숨을 잃을 것 같은 위기에 처하자, 모두가 함께 등장해 선의 활약을 돕거나 지켜봤다.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더 나오는데, 리토가 커밍아웃 후 그의 집 앞에 쓰인 낙서를 센세잇 모두가 보는 장면이었다. 리토가 본 내용과 별개로 센세이트 각자가 다른 이들이 자신을 규정하는 말 중 가장 싫어하는 것들을 보는 것이다. 센세이트들이 지식과 경험보다 감정과 의식을 공유한다는 것이 잘 드러났다. 물론 정말 전달하고 싶은 말도 빼먹지 않는다. "내가 누구랑 자든 무슨 상관인데? 지금은 21세기거든. 그만들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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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이들을 없애려는 미스터 위스퍼의 위협보다 센세잇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감정을 공유하고,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들이 더 재미있다. 각자의 공간이 교차해 등장하면서 보여주는 이국적인 느낌들도 좋고. 그리고 위스퍼스가 이들을 해치려는 건 어찌 보면 좀 억지 같은 느낌도 있다. 사회에 해악이 되는 존재들이 아닌데. 하지만, 최근 트렌드가 그러하듯, 이 또한 현실의 아주 '마일드'한 반영이 되었다는 게 생각나서 서글퍼지기도 한다.


2시즌 전에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를 볼 수 있는 건 정말 좋았다. 볼프강과 칼라가 결국 각자의 마음을 접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게 좀 화가 나지만. 윌과 라일리보다 이 두 사람이 더 좋았기 때문에, 칼라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에 내가 화가 나고 아쉽고 그렇다. 5월에 시작하는 새 이야기에서는 이 커플 신경 좀 써주세요, 감독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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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 노미. 캐릭터도 그렇지만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제이미 클레이튼도 너무 예뻐서 자꾸 시선이 간다. 실제 트랜스젠더 배우이며, 배우 활동 전에는 헤어디자이너 일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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