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좀비 수사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좀비다. 처음에는 징그러워서 그냥 싫기만 했는데, <월드 워 Z>에서 예루살렘 성벽을 올라가는 좀비 떼를 본 이후에는 좀비라면 무조건 피해 다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후 좀비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범람했다. <워킹데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미드 중 하나고, 2016년에는 국산 좀비 영화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물론, 난 그 물결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좀비물이 있는데, 그게 바로 <아이 좀비>다. DC코믹스 산하 브랜드 '버티고'에서 출간하는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데, 몇 가지 규칙을 제외하고는 등장인물과 내용이 모두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좀비 중에서는 가장 인간 같은 것(!)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때문에, 기존에 봐왔던 것들에 비해서는 비주얼 면에서는 덜 징그럽다.
리브는 보트에서 열리는 선상 파티에 갔는데, 그날 그곳에서 몇십 명의 사람이 죽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하지만 그날, 리브는 죽었지만 죽지 않은 존재, 좀비가 되었다. 이후 외과의를 꿈꾸었던 리브는 검시소에 취직하고, 가족과 약혼자와도 인연을 끊은 채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살기(?) 위해 뇌를 훔치던 리브는 상사인 검시관 라비에게 그 광경을 들키는데, 리브에게는 다행히도, 라비는 좀비 등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관심 때문에 질병관리국에서 해고됐던 경력이 있었다. 라비의 연구를 돕는 대가로, 검시소에서 뇌를 계속 먹을 수 있게 된 리브.
리브는 범죄 피해자의 뇌를 먹고, 피해자들의 성격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피해자들의 기억 일부를 환각처럼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이 좀비이며, 뇌를 먹기 때문에 기억 일부를 본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사건 담당 형사인 베비노에겐 '검시소에서 일하는 심령술사'라고 속이며 접근한다. 그렇게 뇌를 먹으며, 사건을 수사하며 하루하루 지내는 리브. 하지만 리브의 생각보다 시애틀 내의 좀비들의 집단은 더 크고,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자신의 연인들이 좀비가 되고 죽어가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1시즌은 기대한 것만큼 재미가 없어서 심드렁하게 봤는데, 2시즌은 캐릭터가 자리를 잡으면서 많이 괜찮아졌다. 특히 1시즌에서 제일 답답터진 메이저가 방황을 끝내고 나름의 롤을 부여받으면서 모든 캐릭터가 완전히 자리잡은 느낌이었다. 물론 2시즌 말미에서 그게 끝나고, 3시즌에 새로운 판을 짜야 하는 상황이 오긴 했지만, 최소한 각자가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진짜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을 거치기 위해 희생된 몇몇 캐릭터가 아쉽긴 하지만(로웰 ㅠㅠㅠㅠ).
좋으면서도 아쉬운 부분이라면, <아이 좀비>가 제작자 롭 토마스의 전작인 <베로니카 마스>와 많이 닮아있다는 점이다. <베로니카 마스>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인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진실을 찾아내는 베로니카의 추진력, 주체적 행동, 쿨한 성격은 멋지고 동경할 만했다. 나이는 좀더 들었고, 능력치도 고등교육을 받아야 할 수 있는 것으로 업그레이드되긴 했지만, <아이 좀비>의 리브는 베로니카와 아주 비슷하다. 물론 강산이 바뀌는 10년간 주인공이 겪는 시련이 친구의 죽음에서 좀비화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현격한 세대 차를 느끼지만 말이다. 여성 주인공의 활약뿐 아니라, 주인공의 행동을 돕거나 방해하는 아기자기한 주변 인물들. 그리고 어디로 흘러갈지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판이 커지는 속도까지도 비슷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여성 주인공의 짝을 만들어주기 위해 여러 남자 캐릭터를 붙였다 떼었다 테스트했던 것, 그 테스트 결과가 어떻든 결국 처음 그 사람에게 돌아가게 한다는 것. 그리고 안 따라가도 되는 시청률마저 <베로니카 마스>와 비슷하다는 점이랄까.
징그러운 것 보기 싫을 때 볼 만한 좀비 드라마, 아기자기한 수사 드라마를 원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다만, 커플에 그렇게 마음 쓰면서 보는 것만 조심하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