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가 더 좋음. A Series Of Unfortunate Events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다시 만든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을 봤다. 사실 지난 주말에 봤는데, 감상은 이제야...
감상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하나. '레모니 스니켓'은 이 드라마의 원작이 되는 어린이 소설을 집필한 작가의 필명이다. 작가 대니얼 핸들러는 총 13권의 시리즈에 '레모니 스니켓'이라는 화자로 직접 등장해 더는 불행할 수 없는 보들레르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준다. 하지만 너무나 사려 깊은 이 작가는, 독자들, 그리고 시청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제발 이 이야기를 피하라고 말한다. 책에서도 그러고, 2003년 영화에서도 그랬으며, 심지어 넷플릭스 시리즈의 티저 광고에서도 그랬다. (지금 이 광고에 등장하는 사람은 드라마에서 '레모니 스니켓' 역을 맡은 배우 패트릭 와버튼이다.)
이때 알았어야 했다. 나가라고 했을 때 나가야 하는 건데...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전체 13권으로 되어 있는데, 드라마는 1권을 2편으로 나누어서 제작한다. 즉, 8편이 제작된 1시즌은 이 책의 1~4권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고,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보들레르가 3남매의 눈물겨운 고생담의 초반부를 그린다. 드라마가 반응이 좋으면, 앞으로 전체 26편을 만들 계획인 듯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동화 속 화려한 일러스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미술이다. 특히 이 드라마에 나오는 '집'의 대부분은 마치 크림과 쿠기로 만든 과자 집처럼 정말 예쁘다. 물론 이 드라마 최고의 악역, 올라프 백작의 집은 상태가 엉망이다. 그리고 이 예쁘고 독특한 것들을 찍는 촬영도 한 번씩 경악할 정도로 균형 잡힌 미장센을 보여준다. 등장인물의 의상과 분장도 캐릭터의 개성을 굉장히 동화적으로 그려낸다. 턱수염과 매부리코가 인상적인 올라프 백작뿐 아니라, 몬티 삼촌의 턱수염, 슈트라우스 판사의 하얀 가발 등은 단순히 소품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 함께 그들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아니, 어떻게 보면 보들레르가 아이들의 눈에 보였던 어른들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멋지고 귀엽고 다소 충격적인(?!) 비주얼에서 드라마의 제작에 참여하고 1, 2편 연출을 맡은 베리 소넨필드 감독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다. 촬영감독 출신이고, 2003년 영화 버전의 연출을 맡기도 했던 베리 소넨필드의 대표작은 바로 <맨 인 블랙> 시리즈다. <맨 인 블랙>의 다소 엽기적인 외계인 분장들과, 너무 하얘서 별천지 같았던 MIB 본부 사무실에서 느꼈던 것들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과자집 같은 건물의 색감은 그가 제작에 참여했던 드라마 <푸싱 데이지>에서 느꼈던 색감과 비슷하기도 했다. 그런 색 배치나 아기자기한 것들을 보면서 이제는 "예쁘다!"가 아니라 "감독이 변태인가." 생각하는 나는 썩었다.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문제는 여기부터다. 정말 '이야기는 이야기구나'라며 느낄 수 있는 이 모든 세팅에도 불구하고, 난 어쩔 수 없이 이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고 분노하게 된다. 잠깐 해변에 놀러나간 사이에 고아가 된 보들레르가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후견인'들을 전전하며 살아야 한다. 아직 '나이가 차지 않았다는 것'은 발명왕 바이올렛도,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클라우스도, 철도 씹어먹는 이빨을 가진 서니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그런데 이렇게 똑부러지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어른들은 무능하거나, 사악하거나, 무능하고 사악하다.
아이들의 유산을 노골적으로 탐내고, 아이들 주위를 맴돌며 온갖 음모를 꾸미는 올라프 백작. 음모를 꾸미고 실행하는 그는 '나쁜 인간'일지 몰라도, 최소한 멍청하지는 않다. 그래서 그가 쳐놓은 위협을 헤쳐나가는 아이들의 활약은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그 사이에 은행가 포, 신문기자 포 부인, 슈트라우스 판사 같은 사람들이 끼어들며 자연스럽게 드라마의 뒷목 지수가 급상승한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선의나 동정심은 가지고 있지만, 그 마음은 아이들의 안위나 사태 해결에는 1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삶과 의견이 더 중요한 포 씨와 포 부인은 아이들을 끊임없이 위기에 빠뜨리는 올라프보다 나를 더 분노하게 한다. 슈트라우스 판사처럼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은 있지만 자신의 원칙은 절대 버리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몬티 삼촌처럼 똑똑하고, 선의가 있으며,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있는, 이 드라마에는 보기 드물게 '완벽한' 캐릭터는... 흡 ㅠㅠ 이게 이 드라마의 코미디 포인트이며, 내 환장 포인트 되시겠다.
분노를 삭이느라 잠깐 멈춤 하긴 했지만, 조만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풍자와 블랙 코미디를 받아들일 수 있는 DNA 자체가 없는 인간이라,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걱정은 되지만 말이다. 아, 죽은 보들레르가 부모들에 대한 반전이 있는 것 같은데, 이 글에 언급할 수 있는 만큼 감이 오지 않는다. 바람이라면, 1시즌 다 보기 전까지 이 반전은 모르는 상태로 있고 싶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