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작성일자: 2018.12.23)
* 퇴고도 안 할 굉장히 두서없는 글이 될 것이다.
넷플릭스 홀리데이 로맨스 영화 감상을 쓰며 내가 이런 이야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좋아하는 거 아니다, 사랑하는 거다) 깨달았다. 어렵고 힘든 이야기에 도전하기 힘들어 도피의 심리로 골라서 보고 있지만 나름대로 볼만한 것들도, 아이디어를 가져갈 만한 것도 있다. 로맨스를 정말 잘 하는 우리나라 드라마가 너무 길게 느껴질 때, 간단하게 한 시간 반 (빠르게 넘겨서 한 시간도 가능) 볼 만한 홀마크 영화를 시청한다. 전체관람가 로맨스 코미디만큼 심신 안정 수준의 편안함을 느낄 만한 콘텐츠는 흔하지 않다. 그래서 올해 본 것 중 인상적인 것들 몇 개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사고뭉치 하키 플레이어와 작은 서점 주인, 첫 만남부터 이상했던 두 사람은 각자의 절박함 때문에 일종의 동업을 하며 사랑에 빠진다. 아담은 통제 불가능하다는 이미지를 벗고 하키 선수로 계속 활동하려면 이미지 개선이 필요하다. 메리는 부모님이 물려준 작은 서점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다름은 극복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아담은 메리를 따라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메리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오고, 책에만 안주해 오던 메리는 행동력 강한 아담과 함께 잘 모르는 것에 조금씩 도전해 간다. 겨울이 내린 작은 마을의 풍경도 뻔하지만 즐거운 이야기도 그렇지만 로코 정말 잘 하는 레이첼 리 쿡과 나이얼 매터의 케미가 최고 매력이다. 정말 자신 있게 말하는데, 홀마크 로맨스 남자배우 중 나이얼 매터의 연기력은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괜찮다. 저렴한 TV 영화 퀄리티밖에 안 나올 프로덕션에서 이 정도 연기는 절대 쉽지 않다.
남자친구의 승진의 제물이 되어 버린 카라는 고향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로 돌아간다. 오빠 가족이 머무는 찰스턴의 집 대신 어머니 러비가 머무는 무너져가는 해변가 집에 자리한 카라는 오래전 자신이 도망쳤던 과거와 다시 대면해야 한다. 비치 하우스와 해변가 거북 살리기에 힘쓰는 러비를 조금씩 이해하는 카라는 왜 어머니의 삶과 결혼 생활이 불행했는지, 왜 어머니가 비치 하우스에 큰 애착을 가지는지 서서히 알게 된다.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홀마크치고는 너무 잘 만들었는데, 아마도 주연과 제작을 맡은 앤디 맥도웰의 힘이 클 것이다. 민카 켈리와 채드 마이클 머레이라는, 홀마크에서는 못 볼 것 같았던 배우들의 등장도 반갑다. 두 사람이 나오는 순간 유치하고 일관됐던 홀마크 영화 느낌이 없었다. 이런 게 좀 더 많으면 좋을 텐데.
홀마크 로맨스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다니카 맥켈러 주연. 인테리어 디자이너 겸 TV 쇼 진행자 해나는 고향의 오래된 저택을 수리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5주간 진행되는 리노베이션과 촬영을 잘 해야 시리즈가 계속 진행될 수 있다. 저택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이기 때문에 보존 위원회는 감독을 위해 시 소속 건축가를 파견한다. (당연히) 그 사람은 해나가 고등학교 때부터 만났던 전 남자친구 제프. 두 사람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친구이자 열정적인 연인이지만 서로의 꿈과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포기했다. 결론이야 당연히 해피엔딩이지만 이게 꽤 인상적이었던 건, 홀마크 채널 영화의 또 다른 트롭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트롭을 따르면 대도시에 사는 해나가 다시 도시에 돌아와 제프와 사랑을 약속하는 걸로 끝났겠지만, 여기선 제프가 해나가 있는 도시로 향하고 어떻게든 함께 하자는 내용으로 끝맺는다. 소도시와 소상공업을 찬양하는 홀마크의 끝맺음과는 조금 달라서 놀랍다. 앤드류 W. 워커도 홀마크 영화에 많이 나오는데 안 진하게 생겨서 인상이 크게 남지 않는 게 단점인 듯. 그래도 두 사람의 케미는 나쁘지 않았다.
뻔한 것도 안 뻔하게 만드는 채드 마이클 머레이의 쿨함은 홀마크 영화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역 방송국 최고의 스타 줄리아 와이즈의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매기는 줄리아의 아들인 대니와 함께 홀리데이 스페셜 에피소드를 준비해야 한다. 두 사람은 특집에 쓰기 위해 네브래스카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사연을 담는 한편, 각자의 목표도 이루려 한다. 매기는 대니의 동생 데이빗과 데릭을 만나 방송 출연을 설득하지만 거절당한다. 대니는 크리스마스에 집에 가지 못하는 매기를 위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날 줄리아 와이즈의 홀리데이 스페셜이 시작되고, 줄리아는 자신을 찾아온 세 아들의 깜짝 방문에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로맨스 영화이면서도 가족 영화인데, 재미있는 건 '세 명의 현자'로 불린 세 형제의 구성이다. 줄리아의 아들 중 대니만 직접 낳았고, 데릭과 데이빗은 입양됐다. 그리고 데릭은 아시아 계고, 데이빗은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으나) 동성애자다. 홀마크 채널 영화에 입양, 인종 구성, 성 정체성까지 이렇게 캐릭터에 한꺼번에 집어넣은 경우는 많지 않다. 얼마나 드물면 NPR 해피 아워 호스트들이 드문 사례라며 언급했을 정도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바탕으로 했다. 홀마크에서 <오만과 편견>으로 영화를 여러 편 만들었는데, 이 작품이 재미있는 건 주인공이 리지 베넷이 아닌 피츠윌리엄 다시라는 것, 그리고 성별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뉴욕의 잘 나가는 투자회사 파트너 다시 피츠윌리엄(성과 이름도 바꿨다)은 어머니가 준비하는 마을 행사를 돕기 위해 고향으로 향한다. 어머니는 동네 레스토랑의 셰프에게 케이터링을 맡기는데, 하필 그 사람이 다시 피츠윌리엄의 고등학교 토론팀 파트너이자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루크 베넷. 짧은 시간에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 힘을 합쳐야 하는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 경쟁심에 가려 보지 못했던 서로를 향한 설렘을 발견하고, 다시는 아버지의 회사로 돌아와 자신의 비전을 이끌기로 한 한편 루크와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홀마크 로맨스의 또 다른 양대 산맥 레이시 샤베르는 평소의 러블리함 대신 좀 더 차분하고 철두철미하면서도 따뜻하고 솔직한 다시를 선보인다. 브랜든 페니의 루크도 성실하고 멋진 청년이자 다시에 대한 마음에 설레는 로맨틱한 남자다. 샤베르와 페니는 이미 홀마크 영화를 한 적이 있어 호흡도 잘 맞고 케미도 그럴듯하다. 무엇보다도 <오만과 편견>을 이렇게 비틀어서 차분하지만 설레는 로맨스를 그릴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 이건 보고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