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4주 영화감상 기록
2019년 1월 4주 영화감상 기록
(최초 작성: 2019.1.28)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극영화다. 그만큼 여러 면에서 현실과 픽션의 구분이 흐릿해진다. 레바논 하층민 소년 '자인'의 삶을 통해 가난과 사회 시스템의 부재가 사회적 약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린다. 차마 옮기기도 싫을 만큼 끔찍한 일을 목격하거나 겪어야 하는 자인을 보고 있기만 해도 힘들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어른도 버티기 힘든 현실을 순수함과 영리함으로 헤쳐가는 자인을 온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런 시선이 아니었다면 영화를 볼 때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
이 영화가 부국제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 일부 관람객이 '불행 포르노'라고 평가했었다. 하지만 나딘 라바키 감독은 이게 그나마 "많이 순화한 것"이라 말했다. 비극과 고통은 언제나 현실이 더 끔찍한 법이다. 이 정도가 고통을 전시한다면 진짜 비극을 얼마나 잘 아는지 물어보고 싶다.
트위터에서 본 건데, 그나마 이 영화를 보면서 견딜 수 있었던 건 자인이 영화에서 다루는 조혼, 미혼모, 불법체류 등의 직접적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데, 그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이 암담한 세상에서 자인은 그나마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이며, 진짜 고통받는 사람은 자인이 사랑했거나 자인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이다. 자인을 고통스럽게 하고 괴롭힌 사람들은 그저 "아는 게 그것뿐"이란 말로 형벌을 모면하려 한다.
분노가 치밀었다. 슬프기도 했다. 자인과 요나스의 모습을 보며 잠깐 미소를 짓기도 했다. 현실을 헤쳐나가지 못하는 자인을 보며 절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날 지배한 감정은, 피부가 따끔거릴 만큼 다가온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가 우스웠고, 비웃어 주고 싶었다. 저 영화에서 내 역할은 수용소에 악기를 들고 나타나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는 제 1세계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영화 끝에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그나마 평화로운 삶을 찾아갔다는 것에 안심해야 할까?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을까? 정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