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우상, 악질경찰

2019년 3월 3주 영화감상 기록

by 겨울달

(최초 작성: 2019.3.21)


어쩌다 보니 이번 주 개봉 한국영화 세 편을 다 보게 됐다. 개봉 전부터 다 별로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다 일장 일단이 있더라. 무조건 “별로래, 안 봐야겠다.”라고 학 전에 믿을 만한 리뷰어들의 간단한 소감이나 씨네리 100자평 보고 판단하시길. 내 생각엔 할인권이나 관람권이 있으면 이때 알차게 써먹는 게 좋겠다. 물론 이런 말 하는 본인도 4월 말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위해 총알 장전 중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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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감상을 적어본다. 스포일러 있음.



우상 - 이해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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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은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모르겠다. 세 인물이 각자의 결핍에서 발현된 욕망을 좇고 그게 한 사건으로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일단 “우상”으로 대표되는 각 인물의 이상향부터 잘 이해되지 않았다. 범인의 사고로는 도시자와 미래의 대통령도 꿈꿔보는 구명회 말고는 중식도 련화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련화는 이상향을 꿈꾸기엔 사는 게 급하니까 그렇다고 쳐도, 중식의 사고방식은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암튼 인물 각자의 선택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그게 어느 순간 로오지컬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정확히는 중식이 명회의 선거 운동에 참여하는 부분부터 “xx 이게 뭐냐?”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련화를 한국에 머물게 하려고 혼인신고서를 내미는 것도 그렇고, 련화가 가진 아기에 미친듯이 집착하는 것도. 결국 련화가 자신의 입으로 밝히고서야 중식의 헛된 집착이 드러날 땐 끔찍했다. 아무리 허구이지만 중식의 선택과 집착은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한다. 정치적 성공 위해 아들을 버린 명회보다 중식이 더 역겹고 무서웠다.

모든 장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한다. 각 인물의 대사와 행동은 다른 것을 의미하고 상징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머리를 뎅강 베어버리고 시뻘건 피가 화면을 채우면 해석이고 이해고 이미 머리 밖으로 날아가 버린다. 각 인물 중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이입할 수 없는데, 게다가 인물을 풍자하고 비꼬는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지옥도를 가져다 댄다. 이걸 모두 견딜 만큼 난 강하지도 않고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자신도 없다. 그냥 영화를 모르는 걸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도 정말 궁금한 건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 목은 왜 쳐낸 거야.




악질경찰 - 왜, 하필이면,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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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찌질한 경찰이 자신보다 더 악한 이들을 만나 위기에 빠진다는 내용은 그 자체만으로 흥미롭다. 이정범 감독이니 어련히 알아서 잘 만들었겠지. 이선균 목소리로 찰지게 욕하는 건 좀 신기하고 생경하게 재미있겠네. 거기에다 재벌의 탐욕과 정경유착? 한국에서 이런 영화는 너무 많이 만들어 왔으니 만듦새는 기본으로 하는 거지. 여기까진 틀린 게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하고, 그곳엔 감독의 몰이해가 도사리고 있다.

세월호부터 짚고 가자. 사실 문제라고 느낀 것들의 순서를 매기면 세월호는 크게 부각되는 순서도 아니다. 소재에 대한 나름의 조심스러움이 있었고, 상업영화에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고민했다. 만약 이 영화가 따로 진행되는 이야기이고 조필호가 그의 앞에 닥친 위기를 돌파해야 하는 인물이 아니었으며 전소니의 미나가 가진 아픔과 고통을 충분히 들여다볼 시간이 있었다면 상업영화라도 눈물을 글썽이며 봤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굳이, 꼭, 왜 세월호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저씨가 잘못했다!”를 외쳐야 했을까? 친구와 딸을 잃은 이들의 아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하는 인물이 왜 중년의 나쁜 아저씨여야 할까. 가장 크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이들임은 알겠다. 하지만 용서 이야기가 중심이 될 것도 아니고 뒷부분에선 독기 품은 아저씨의 이상한 원맨쇼가 펼쳐지는데 여기에 세월호 이야기를 넣어야 했던 걸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모습이 다소 전형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렇다. 사실 <악질경찰>에서 조필현 외의 모든 캐릭터는 어디 틀에 넣고 찍어낸 것 같은데, 그게 미나와 지원의 아버지 등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친구에까지 미친 게 아쉬웠다. 여러 리뷰에서 지적하는 이정범 감독의 “어리거나 젊은 여성이 중년 남성에게 용서와 구원의 기회를 준다.” 설정이 이 부분에서 들어오는 것도 꺼림칙했다.

세월호가 아니어도 되었다. 아직은 상업 영화의 겉가지 소재로 쓰여도 상처없이 볼 만큼 마음이 아물지 않았다. 유가족 분들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나는 아직도 그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텔레비전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자책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돈 - 이게 감독의 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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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으로 구렁텅이에 빠졌다가 스스로 개과천선을 택한 젊은 주식브로커의 이야기. 전형적인 한국 상업영화다. 사건 전개는 흥미진진하며, 스토리는 예측 가능하지만 배우들이 연기로 참 많은 것을 커버하며, 걸리는 장면 거의 없이 아주 스무스하게 잘 넘어간다. “이거 좀 많이 만들어본 솜씨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걸리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남성 캐릭터 중심의 상업 영화를 만들면서 쌓은 노하우로 뚝딱뚝딱 조립한 하이엔드 기성품 느낌이 영화 전반을 채운다. 배우를 바꿔도, 제작진을 바꿔도, 감독을 바꿔도 비슷한 영화를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영화는 예술인만큼 상품이기도 하고, 내 이야기 하겠다는 욕심만큼 다른 사람들도 즐길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으나, 한쪽에선 자꾸 아쉽다는 마음이 든다.

이게 더 아쉬운 이유는 <돈>이 상업영화에서는 보기드문 여성 감독 작품이라는 것이다. 작년부터 상업 영화를 만드는 여성 감독이 조금씩 나왔고 다행이 작품이 모두 손익분기를 넘겼다. 하지만 여성 감독이 아닌 감독 OOO를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가 물어보면, 평가는 조금씩 갈린다. <리틀 포레스트>나 <미쓰백>, <말모이>는 재미만큼 감독의 명확한 목소리가 느껴져서 좋았지만, <탐정: 리턴즈>는 솔직히 아니었다. 그리고 <돈>도 솔직히 말하면 후자다.

<악질경찰>이나 <우상> 모두 우당탕탕 엉망인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정범, 이수진 처럼 이걸 만든 감독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만큼 개성이 명확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슬릭하고 깔끔한 <돈>에 그런 매력이 없어서 아쉽다. 스필버그나 카메론까지 가지 않아도 마이클 베이가 뭐든 때려부시고 롤랜드 에머리히처럼 전 세계 랜드마크 무너뜨리는 것도 개성이라면 개성일 텐데, 상업영화 안에서 그런 목소리를 탐구하는 건 아주 큰 모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현실은 안다. 히트작을 몇 개나 내놓은 제작사에서 첫 영화를 만든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보다 다음이 더 기대되는 것이다.

셋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돈>이다. 어쨌든 가장 리스크가 작고, 익숙하긴 해도 만듦새는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돈을 써서 영화를 본다면 여성 감독을 지원하고 응원하고 싶다. 박누리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어간 다음 영화를 빠른 시일 내에 만날 수 있길 기대하며.

p.s. 한국영화는 진선규, 김민재 배우 없으면 안 돌아간다. 자주 나오는데 연기는 또 너무 다들 잘하셔.

p.s.2 유지태 배우는 벌크업하면 진짜 무섭다. <돈>에서 유달리 마르게 나온 류준열과 나란히 섰을 때 정말 위협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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