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4주 영화 감상 기록
(최초 작성: 2019.5.10)
한국에서 가장 먼저 본 사람임에도 회사 페북 리뷰 + 400자 리뷰 + 트위터에 몇 번 끄적인 것 말고는 사실 이야기를 풀지 않았다. 온 감정을 다 끌어내서 쏟아붓기엔 체력이 정말 부족했고(드디어 비염 증상이 사라졌다!) 그 사이에 전주국제영화제도 다녀왔고(리뷰 써야 하는데ㅠㅠ) 이래저래 현생에 치여서 <엔드게임>도 더 못 보고 있다. 물론 다음 주까진 할 테니까 주말에 시간 내는 걸로 하고. 이 글은 <엔드게임> 영화 자체에 대한 리액션 그동안 소셜미디어와 커뮤에서 본 반응들, 매체 리뷰들에 대한 생각까지 담겨 있다. 횡설수설이란 뜻이다.
당연히 스포일러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미 영화 다 보셨겠지만 노파심에 말해둔다.
아이언맨 안녕
결국 죽음은 예상과 달랐다. 모두가 캡틴 아메리카와 호크 아이를 후보로 꼽았지만 정작 이들은 살았고 행복을 찾았다. 아이언맨과 블랙 위도우가 대의를 위해 죽었다. 오리지널 식스 중 가장 안 그럴 것 같던 두 사람은 가장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아이언맨은 역시 11년간 이어진 이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이다. 이건 캐릭터의 공헌도뿐 아니라 그저 그런 대본도 다 씹어먹는 로다주의 미친 연기력이 만든 결과다. 스스로 메탈 슈트를 만들어 지구뿐만 아니라 외계인과도 싸우는 백만장자 바람둥이 자선사업가 천재라니. 코믹북이니까 가능한 캐릭터 설정을 로다주만큼 입체적으로 표현할 배우는 없었을 것이다. 11년간 그는 토니 스타크의 서사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흥행 바람을 제대로 일으켰다. 그의 죽음은 그를 가장 존중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존중이라면 살아야지, 왜 죽게 만드냐는 반론도 있다. 수많는 사람들을 MCU와 사랑에 빠지게 한 그를 다시 볼 수 없음에 슬퍼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토니는 너무 많이 변했다. 더 이상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한다. 페퍼와 모건과의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다고 소리치지만, 결국 모든 일을 해결한 사람은 또 토니였다. 그가 살아남는다면 다시금 아수라장이 된 이 세계를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가버린 이들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살아남았다면 다시 메탈 슈트들을 모두 버리고 페퍼와 모건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가 가 버린 건 안타깝지만, 이게 그의 삶을 더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3000만큼 사랑한다. 캡틴 아메리카를 사랑하는 만큼 좋아하진 않았지만, 당신은 정말 영웅으로서 죽었다. 가상 캐릭터의 죽음에 이렇게 슬프고 우울해질 줄이야.
블랙 위도우한테 왜 그래요?
나타샤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블랙 위도우는 단독 영화를 만든 세 캐릭터만큼 공들여서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캐릭터 성장이 가능한 공간을 받지도 못했다. 그나마 나타샤의 성장을 엿볼 수 있었던 건 <어벤져스> 시리즈보단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였다. 캡아 2, 3편에서 블랙 위도우는 사이드 킥 이상이었다. 특히 <윈터솔저>에서 스티브의 곁을 언제나 지킨 건 나타샤와 샘이었고, 그만큼 믿음직한 동료로 보인 순간도 그때부터였다. 하지만 부족했다. 나타샤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나갈 자격이 충분했지만, 망할 수익구조와 선례가 어쩌고 하면서 그 시기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왜 나타샤인지… 아직도 작감에게 화가 난다. 이를 전제로 하고, 나타샤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며 대의를 위해 희생하기로 한 점은 존중한다. 나타샤는 오리지널 식스 중 가장 절박했다. 스티브보다, 토니보다 더. 사라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많이 울고 많이 슬퍼했다. 동료를 잃었기에 그랬을까? 나타샤는 어둠 속 스파이로 살았지만 <인피니티 워>를 거치며 가장 이타적이고 박애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는 조직과 국가를 옮겨 다니며 평생 누군가의 명령을 받았다.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한 선택은 항상 성공적이진 않았다. 너무나 부족한 러닝타임이지만 나타샤의 서사는 해석과 재해석을 통해 더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아쉽다. 최후의 전투에서 모든 여성 히어로들이 모인 자리에 나타샤가 없는 것, 출연진과 제작진이 모두 모인 단체 사진에 스칼렛이 없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단독 영화는 대체 어쩔 건지 모르겠다. 프리퀄인 것이냐. 3부작은 아닌 것이냐.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일단 좀 더 기다려 봐야겠다. 마블 페이즈 4 발표가 여름에 있다는데 아마 D23 행사에서 뭔가 나올지도.
스티브가 도망 갔다고?
<어벤져스> 시리즈가 끝날 때마다 스티브가 욕받이가 되는 게 너무너무너무너무 싫다. 이번에도 아이언맨과 블랙 위도우가 죽은 세상을 떠나 혼자만 행복하게 살았다며 욕받이가 되고 있다. 왜 세상 모든 짐을 캡틴이 다 져야 하는 거냐고! 왜 캡틴은 행복하면 안 되냐고!!
사실 2011년 깨어나 2023년까지 현대에 살았던 캡틴은 어디까지나 이방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그 모든 것들과 강제로 헤어져 완전히 바뀐 세상에 뚝 떨어졌다. 깨어나서도 영웅이 직업이자 정체성이었다. 그 사이에 쉴드는 붕괴되고, 어벤져스는 해체되고, 오랜 친구를 만난 대신 믿었던 친구를 잃었다. 스티브가 항상 옳다는 건 아니다. 그 자신만의 원칙을 따랐지만 버키에 대한 선택은 자신도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친구와 동료가 먼지가 된 후, 여느 때처럼 긍정적으로 살아보려 했지만 그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친구가 있어도, 키스할 만큼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 있어도, 스티브는 힘들고 외로웠다.
그가 과거로 돌아가 페기와 함께한 건 물론 자신의 베스트 걸에게 돌아간 것도 있지만, 이방인이 마치 고향을 찾아간 것과 같기도 하다. 정의감과 사명감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했던 스티브다. 전투의 끝에 휴식이 주어졌을 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무쪼록 스티브가 행복한 삶을 살았길 바란다.
작감들이 밉다가도 스티브에게 이런 결말을 준 건 고맙다. 시간 여행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예상…이라기보단 바라왔던 게 현실이 되어서 정말 기뻤다. 페기 오랜만에 봐서 너무 좋쟈나ㅠㅠ 너네 둘 다 3000만큼 사랑해 ㅠㅠ
뚱토르(입에 정말 잘 붙네)와 헐크, 호크아이는 사실 셋만큼 할 말은 없어서. 토르는 나중에 아스가디언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할 때 다시 언급하게 될 것 같다. 호크아이는 지금 분위기상 드라마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헐크는 모르겠다. 유니버설이 어쩔 건지.
멀티버스와 양자 영역
양자 영역은 사실 스포도 아니다. <앤트맨과 와스프> 때 이미 마이클 더글러스가 “양자 영역 진짜 중요”라며 큰 활약을 예고했다.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앤트맨 정말… <엔드게임>의 서사 진행부터 개그까지 전부 다 하더라. 정말 깨알 같은 활용이었음. 폴 러드 사랑해요.
의외의 등장인물은 에인션트 원. 여기서 나오실 줄은 정말 몰랐고요(알고 보니 마크 러팔로가 1년 전에 스포일러 했다고. 이 아저씨가 증말…) 인피니티 스톤과 멀티버스 설명을 정말 잘 해주고 가셨음. 타임라인상 이게 맞기도 하고, 한 번 쓰기엔 아까운 에인션트 원도 활용하고 일석이조.
결국 시간 여행이란 다른 차원의 다른 시공간으로의 여행이라는 의미인데,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감질나게 떡밥만 뿌린 멀티버스를 이렇게 확 열어젖힐 줄이야. 그냥 이렇게만 하고 <닥스 2> 가서 좀 더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 아예 대놓고 말하네? 스포일러 금지가 월요일에 풀리네 어쩌네 쇼했던 건 트레일러에서 아이언맨의 죽음을 다룬 것도 있지만 멀티버스를 제대로 언급하면서 시작된다. 미스테리오/퀜튼 백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는데, 그랬다면 닉 퓨리가 모를 리가 없다는 데 한 표요.
제이크 질렌할을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빌런(?)으로 보는 날이 오다니… 사람 오래 살고(?) 봐야 한다.
인피니티 스톤?
파괴된 건 파괴된 거지. 아니에요? 루소들이 팟캐스트인가 인터뷰인가 나와서 “인피니티 스톤은 깨졌지만 원자 형태로 세계에 머물고 있다.”라고 입을 털었단다. 진쯔… 하나만 하자 하나만.
그나저나 타임 스톤 키퍼(=닥스)는 이제 지켜야 할 타임스톤이 사라졌는데 이제 어떡하지?
에인션트 원에 따르면, 인피니티 스톤은 이 세계의 존재를 관장하며 사람들이 인식하는 시공간을 규정한다고 했다. 이제 여섯개 다 사라진 마당에 사람이 인식하는 시공간이 변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이 세계가 매우 취약해서 평행우주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뭐 그런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엔드게임>이 끝나니 더 궁금해진다. 이렇게 다 죽였다 살리고, 또 죽이고 인피니티 스톤까지 파괴했는데, 다음엔 어쩔 건데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