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맛보단 사람의 마음과 일상이 매력
오랜만에 영화 이야기나 할까 한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2596
CGV 압구정에 다른 영화를 보러 갔다가 이 영화 홍보하는 걸 봤다. 와인은 그냥 깊이 음미하며 마시지 않아서 그냥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었다.
다들 그러겠지만, 마치 백그라운드 노이즈처럼 틀어놓는 영화가 있다. “힐링 영화”라 이름 붙이긴 거창하지만 그냥 안 봐도 되고 보면 좋은 영화들. 내게는 당연하게도 음식 영화들이 그렇다.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 <줄리 앤 줄리아>, <로맨틱 레시피>가 그렇고, 시리즈로는 <어글리 딜리셔스>,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 요즘은 <더 셰프 쇼>가 그렇다. 이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아마 <리틀 포레스트>에서 파생한 추천작일 것이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삼 남매의 장남 장은 고향 부르고뉴의 와이너리로 돌아온다. 그가 떠난 10년 동안 동생 줄리엣은 와이너리의 실질적 책임자가 되었고, 막냇동생 마르셀은 더 이상 꼬맹이가 아닌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삼남매는 곧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와이너리 상속 세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와이너리와 포도밭을 파네 마네 고민하면서 세 남매는 마치 떠난 적이 없던 것처럼 한 해 농사와 와인 제조를 시작한다.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봄까지 1년의 시간을 함께 보낸 삼 남매는 함께 성장한 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내가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계절의 풍광과 함께 ‘노동’을 담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맛있는 걸 먹고살려면 주방에서 뿐 아니라 농사를 짓고 채집도 하며 식재료를 구하는 ‘노동’을 수반한다는 걸 보여준다. <부르고뉴>가 가장 좋았던 이유도 와인 농사를 ‘노동’으로 그리기 것이었다. 향기로운 와인에 치여 현실을 환상처럼 그리는 걸 자제하고, 와이너리 사람들의 일상을 차분하게 담아낸다. 이 영화에선 세상에서 포도를 가장 심각하게 먹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다른 이유는 ‘도피’라는 마음가짐이 인생 사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려준다는 것이다. 장은 연인과 관계가 삐걱대며 힘든 와중에 아버지의 소식을 듣자 도망치듯 부르고뉴로 왔다. 하지만 그 현실을 도피하러 온 고향에도 오해와 엉클어진 마음이 있고, 장은 와인을 만들면서 동생과 아버지, 와이너리와 화해해야만 한다. 또한 하나가 해결된다고 다른 것도 해결되진 않는다. 연인과 아들이 호주에서 프랑스까지 먼 길을 오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그가 버리고 떠난 것들과 화해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인 취향인데, 요즘 성인 형제자매남매의 다이내믹을 그리는 영화나 드라마가 재미있다. 서로의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함께 보며 자란 형제들의 우애(?) 넘치는 순간들이 더 보고 싶어졌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져서 그런 걸까.
와인을 좋아하고 즐기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음식 영화보단 농사짓는 영화이며, 성찬 대신 현실적인 고민과 캐릭터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분들, 마치 내 이야기 같은 현실 남매의 스토리를 즐기는 분들께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에서 안 본 게 후회될 정도다. 왓챠플레이에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