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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달 Oct 28. 2019

82년생 김지영

누군가에게서는 나를 발견하는, 평범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오랜만에 감상글 같은 것(…)을 올려보려 한다. 핫한 그 작품, #82년생김지영 이다.



과거와 현재와 아마도 미래의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얼굴이 될 것이다. 정유미의 힘이다 정말.


누군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며 5점을 주고, 누군가는 ‘정신병자의 망상’이라며 비난한다. 2019년 여전히 남녀는 불평등하며, 여성은 모든 면에서 억압과 차별을 받는다는 쪽이 있는 반면, 이미 모두가 평등하며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었고 남자가 역차별받는다는 주장도 있다. 후자의 의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돈도 쓰지 않겠지만, 싸잡아 비난하기 전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이건 오롯이 나의 이야기는 아니며,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김지영같은 삶을 살진 않는다.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으며, 공유처럼 잘생긴 남편도 없다(외모만 비현실적이다). 날 정말 사랑하는 가족은 있지만 날 설거지 머신으로 여기는 시가는 없다. 내가 <82년생 김지영>에 공감하면서도 지영의 삶이 구구절절 내것이라 느끼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영의 삶은 거짓이 아니다. 당신이 공감하지 않는다고 해서 거짓이 아니다.


정대현은 바깥에서 보기에 좋은 남편이다. 자상하고, 지영을 아낀다. 말은 부드럽고, 걱정은 태산 같으며, 지영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같아 보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지영에게 대현이 가장 필요한 그 순간, 대현은 주저한다. 어려운 순간에선 지영이 오롯이 모든 걸 해야 하고 대현은 한발짝 비켜난다. 많이 우는데, 울 때마다 너무 얄밉다.


지영을 아끼는 친정 아버지는 지영이 스토킹을 당할 뻔하자 피해자가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취직을 못 하자 시집이나 가라고 버럭 소리지른다. 지영의 동생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신이 받은 걸 누나들이 받지 못한 건 모른다. 남자 직원들은 능력있는 여자 상사 앞에서 개기고 뒤에선 험담한다(개싸가지라서 영화 보다 삿대질할 뻔). 아기 키우는 건 노는 거라며 부럽다는 말을 아무렇게나 한다. 불법촬영에 사진 공유는… 에휴 말을 말자.


누구도 세상을 모두 경험할 수 없다. 우리가 말하는 “세계”란 각 개인의 경험의 총체다. 새벽 1시 누군가가 이 글을 쓰는 순간, 지구 어딘가에선 무장군인에게 시달리는 여성들이 있고, 누군가는 대선에 도전하며, 누군가는 마지막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려 버틸 것이다. 그러니 아이의 잠든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져도 한 구석에 웅크린 나의 꿈을 외면하지 못하는 누군가도 있을 수 있다. 여자는 특별한 존재이지만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미스터리가 아니며, 그저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만족할 만한 성취를 얻고 싶은 인간일 뿐이다.


전술했지만, 나는 <82년생 김지영>의 모든 삶에 공감할 순 없다. 내 처지와 성격은 사실 지영의 언니 은영에 가깝다. 결혼도 결혼이지만, 친척들의 성차별적 발언에 따박따박 말대꾸하며, 동생을 걷어차서 설거지라도 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내가 남녀차별의 덫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은영은 집안 형편상 교대를 가야 했지만, 다행이 난 사범대학을 못(!) 갔고, 원하던 공부를 울면서 하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 하고 싶은 걸 했으니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나중에 논하기로 하고. 내가 하고픈 말은 모든 여성이 ‘김지영’이지만 ‘김지영’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김지영’의 삶은 특별히 비극적이지도, 마냥 해피하지도 않으며, 이게 2010년대를 사는 한국 여성의 기본적 삶이다.


개인의 목소리가 없다고 해서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통계자료가 당신에게 숫자놀음이자 사기처럼 보일 수 있어도, 그 뒤엔 억지로 아이를 낙태하고, 성추행 피해를 말했지만 오히려 자신을 탓하는 사법 당국에 울고, 하고 싶은 것은 꿈도 못 꾸고 살면서 아이를 낳는 기계가 된 듯한 자신을 바라보는 여성, 여성들이 있다. 그런 인물들의 최악의 상황도 아닌, 그냥 상황을 모아놓은 것이 ‘김지영’일 뿐이다.


누구도 이렇게 불행할 수 없다는 사람, 한국 남자가 오히려 역차별을 당한다는 사람은 개인의 좁디좁은 경험치를 너무 과신하지 않나 싶다. 나도 남자를 일반화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불법촬영물을 보며 낄낄대지만 누군가는 여성 인권 신장 운동을 적극 지지하기도 한다. 남자가 이러네 여자가 이러네 말해도 당신이란 개인을 만나기 전엔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당신은 ‘김지영’을 만나기 전부터 판단하고 비난하는가?


주인공에 이입할 수 없다면, 남편 대현은 어떤가? 지영의 동생도 있고, 친정아버지도 있으며, 직장 동료에게 불법촬영 사실을 알려준 회사원이나 성희롱 발언 일삼는 동료를 제지하는 사람이 당신일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남자를 악마로 그리지 않으며 일부 싸가지와 개념 없는 인간들을 제지하는 데는 성별도 없다. 이건 그저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당신이 성별, 나이, 경험, 성적 취향, 장애 여부 등 사람을 분류하는 모든 기준과 상관없이 인간은 동등하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에 공감할 수 있다. 어머니, 누나, 동료, 아내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훔칠지도 모른다.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고 생각치 못한 걸 짚어줄지도 모른다. <82년생 김지영>은 사실적이지만 다큐는 아니며, 허구의 인물이지만 그 속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다. 그걸 즐기라 추천하는 것이다. 재미가 없다…는 취향이지만, 원색적 비난은 수준을 드러낸다.


p.s. 공유의 부산말 연기에 박수칠 뻔. <골든아워> 송선미와 함께 부산말 연기 교본으로 쓸만하다. 정유미도 부산 출신인데 <응답하라 1994> 때 네이티브 구사하더라. 부산 사람들은 저렇게 말해요. 우악스럽지 않아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2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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