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란 참, 묘한 드라마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 한 번 시원하게 쪼개보자.
봤던 것도 시원하게 쪼개보자.
What's Charming
이 드라마의 매력포인트
What's Changed
드라마가 시즌을 거듭하며 겪은 변화
What's Affecting
드라마의 시청률 추이와 시청률에 영향을 준 요인
What's Different
이 드라마가 비슷한 드라마들과의 차별화를 꾀한 지점
Story
초현실적 사건에 맞닥뜨린 여성 FBI 수사관이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었던 천재 과학자 월터 비숍과 그의 아들 피터 비숍의 도움을 받으며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의 드라마
...였다. 분명히 그랬는데...
What's Changed
한 번 어디까지 가나 두고보자
프린지 과학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한다는 기본 구성은 1시즌 중반 어느 즈음에선가 사라졌다. 그 이후 스토리의 전개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는데…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을 복제하는 형태 변형자가 나타나질 않나,
피터가 진짜 피터가 아니라 다른 세계서 온 피터라고 하질 않나,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가 같아 보이지만 조금씩은 다르다고 하질 않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관찰하는' 먼 미래의 사람들도 있다고 하질 않나...
의심을 하면 안 되고 '그러하다'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 이야기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이건 분명히 수사물로 시작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처음 이 시리즈를 만든 쌍제이, 커츠먼, 오씨(라 함은 JJ Abrams, Alex Kurtzman, Roberto Orci다. 옛날 시리즈 리바이벌에 앞장서는 성공한 덕후들이며, TV 드라마 만드는 것으로는 문어발 중 문어발이라 할만하다)는 이렇게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까지 이야기가 뻗어나갈 줄은 몰랐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밑도끝도 없는' 이야기가 바로 프린지가 기존의 드라마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1시즌만 해도 같은 네트워크에서 방영한 전설이 아니고 레전드 적 드라마 '엑스파일'의 밍숭맹숭 카피캣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평행우주, 형태변형자, 관찰자 이야기들이 더해지면서 이야기가 제대로 소용돌이치면서 시즌마다 예상치 못하 전개로 흘러간다. 1시즌은 비주류 과학이 중심이 된 수사물이었다. 2~3시즌은 형태변형자와 평행우주세계의 대립을 그려냈고, 4시즌은 이 바탕 위에 역사와 상황을 다시 써서 존재의 문제와 잠재 기억을 소재로 활용했다. 그리고 마지막 5시즌은 미래 인류에 의해 점령된 지구와 그에 맞서는 사람들을 다뤘다. 내가 지금까지 뭘 쓴 거지 그러니 1시즌과 2~3시즌 분위기가 다르고, 4시즌 분위기는 또 다르고, 5시즌도 또 다르다. '흥미로운 컨셉'으로 시작한 드라마는 어느 순간 SF 장르에서 상상할 수 있는 매력적인 컨셉 여러 가지를 버무려 방대한 세계관을 구축한 시리즈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으로 '평행 우주'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는데, 이게 너무너무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웹에서 이것저것 찾아봤었더랬다.)
What's Charming
캐릭터의 힘
'무매력'이라는 박한 평가를 딛고 멋쁨 터지는 주인공이 된 올리비아.
사기꾼 청년에서 두 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된 피터.
안 그럴 것 같으면서 올리비아네 팀을 살뜰하게 챙기는 브로일스.
중요한 비밀을 간직한 니나.
정많고 다정다감하고 월터를 살뜰히 보살피는 아스트리드.
그리고 무엇보다! 천진무구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갖춘 미친과학자 월터.
월터찡(!)의 매력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귀여운 할아버지와 미친과학자 사이를 수시로 왔다갔다 하는 게 기본이라ㅎㅎ 아마 당분간은 나오기 힘들 듯한 복잡한 캐릭터를 '믿고보는' 배우 존 노블(John Noble)은 너무나 잘 소화해낸다.
What's Affecting
어차피 시청률도 낮은데 뭐...
프린지는 방영 내내 시청률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빴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1시즌은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아메리칸 아이돌 뒤에 편성되어 리드인을 받은 게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2시즌부터 화요일에서 목요일로 이동하면서 아이돌 버프 없이 이미 자리잡은 다른 작품들과 경쟁해야 했으니, 성적은 예전만큼 나오지 않았다. 결국 3시즌 중간에 금요일, 일명 "Friday Death Slot"으로 보내진다. 하지만 곧 캔슬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5시즌까지 100개를 꽉꽉 채우고 종영했다.
SF 드라마가 (기대한 만큼) 제작비가 정말 비싼 편인데, 그 제작비를 회수할 만큼의 시청률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사실 캔슬되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Fox는 어떻게든 이 드라마를 5시즌 13편까지 제작하게 만들었다. 여러 사람들이 그 이유를 분석해 봤는데 이 정도 의견으로 추려졌다.
하나, 당시 Fox 임원진들이 프린지를 굉장히 좋아했다 ㅎㅎ
둘, 신디케이션을 위해서. 신디케이션이란 드라마 재방권을 지역방송국에 판매하는 것이라 이해하면 된다. 중요한 건 이걸로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번다는 사실. 신디케이션은 보통 88회차(22x4시즌)에서 100회차(5시즌 초중반)를 패키지로 팔기 때문에 정말 캔슬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신디케이션을 위해서는 100개는 채우려 한다. 프린지가 5시즌까지 살아남은 건 이 이유가 아마 제일 클 것이다.
셋, 이건 앞뒤를 정확히 가리긴 어렵지만, 시청률이 낮기 때문에 시도했던 과감한 시도가 작품을 소수가 즐기는 컬트 드라마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다수에게 인기를 얻기는 어려웠지만, 대신 꾸준히 드라마를 보는 소수의 시청층을 확보한 것이다. 여기에 시즌을 거듭하며 비평이 꾸준히 좋아진 것이나 새턴 어워즈(호러/SF/판타지 장르 시상식)에서 애나 토브(올리비아 던햄)가 TV 부문 여우주연상을 4년 연속 수상하는 등 작품이 시상식에서 성적이 좋은 것도 플러스 요인이었을 거라 짐작된다.
What's Different
(당분간은) '성공한' 마지막 SF 시리즈
프린지는 공중파 네트워크에서 장기 시즌을 이어간 마지막 SF 드라마로 여겨진다.
프린지의 종영 이후 공중파 네트워크에서 방영된 정통 SF (즉 슈퍼히어로, 초자연적 존재, 판타지 컨셉이 나오지 않는) 드라마 중에서 이것만큼 오래 방영된 작품은 없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는데 진짜다.) Fox는 프린지 이후 다수의 SF 시리즈를 시도했으나 족족 실패중. 13-14 시즌의 '올모스트 휴먼', 이번 시즌의 '마이너리티 리포트'까지 알차게 말아드시고 있는 중이다. 그건 다른 채널의 사정도 마찬가지라, CBS에서는 주로 여름 시즌에 SF 시리즈를 편성했으나 ('언더 더 돔', '익스텐트' 등) 다들 에피소드를 50개도 채우지 못하고 캔슬됐다. 아무래도 일반 대중을 타겟으로 하는 공중파 네트워크이다 보니 '소수 중의 소수'만 즐기는 정통 SF를 제작하고 편성하는 건 수지에 안 맞았을 것이다. 당분간 SF는 너그러운 공중파 네트워크가 아니라면 케이블과 OTT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