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드탐닉 1주년 기념 (1)
(최초작성 2025.06.07)
백수 되면서 보기 시작한 중드 감상 어느새 1년! 내 형편은 나아진 거 없지만 중드는 많은 위로가 되었다. 아마 다시는 이렇게 열심히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1년간 열심히 본 것 정리해 본다.
국내외 OTT에 업데이트된 신작 위주로 보았기 때문에 대부분 신작이다. 현대극은 잘 안 보기 때문에 고장극/선협극에서 골랐다.
개인 캐릭터
처음부터 끝까지 내 취향을 그대로 빚어놓은 캐릭터, 최행주. 외적으로 완벽하지만 류면당 앞에선 철없고 체통 없는 모습만 자꾸 보여서 '으구이놈아!'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하지만 캐릭터의 "여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기 세상을 깨부수는 수준의 변화를 감내한 몇 안 되는 남캐가 아닐까. 의무 앞에서 개인의 감정과 욕망은 절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가 가짜 결혼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면서 연정이 무엇이고 부부란 무엇인가 확실하게 깨닫는다.
우리가 많이 본 고장극에서 남자는 흔들림 없는 멋짐을, 여자는 사랑 앞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주로 보인다. 하지만 <류주기>에서 행주가 성장을, 면당이 멋쁨을 담당했다. 익숙한 트롭을 교묘하게 비틀었다는 점, 캐릭터의 매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잘 보여준 점, 그리고 장만의가 카리스마 왕야부터 애새끼미 낭낭한 철없는 신랑까지 연기를 맛깔나게 해냈다는 점에서 큰 점수 드려요.
지금도 조원주 생각만 하면 눈물 나는 사람 여기 있다 ㅠㅠ 자기 의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용납할 수 없는 죄를 짓고 죄책감에 시달렸던 원숭이 요괴는, 속죄를 위해 죽기로 한다. 그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생전 처음으로 죽음이 아닌 삶을 갈망했다. 그래서 조원주의 최후의 순간은 더욱 슬프고 찬란했다.
선협드라마 캐릭터에, 그것도 삼만 사천 살 요괴 할배에게 이렇게 몰입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암튼 그렇게 되었다. 조원주의 실없는 개그와 문어발 애정 폭격까지 다 좋았다. 그래도 마지막에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고 가서 다행이다. 그의 업적을 올바르게 기리는 노력이 있다는 것도 좋았고. 아 암튼, 그래서 조원주의 선택은 문소냐 탁익신이냐. 그냥, 할배는 다 사랑했고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모두를 사랑하고 품을 것 같다.
강한 여성 캐릭터는 많았지만 내 기준 가장 '단단한' 캐릭터는 단연 <유수초초>의 히로인 강자. 위소와 배염, 두 정치 라이벌 사이에서 온갖 개고생을 다 했지만 절대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았고, 미래 없고 대책 없는 삼각관계에서 철저히 주도권을 잡았던 소녀.
위소에게도 배염에게도 강자는 어두운 삶을 밝혀주는 빛이었지만, 강자는 일가의 안녕을 도모하는 배염보다는 자신을 불살라 월락성을 구하려는 위소를 선택했다. 혐관으로 시작한 둘의 관계가 사랑으로 바뀌는 과정은 설득력 있었고,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슬프고 너무너무 좋았다. 하지만 끝이 보였기 때문에 그 많은 시간들이 아쉽고 슬프고... 그래도 강자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사랑했고 위소의 기억을 품은 채 강자답게 살 거라서 마냥 가슴 아프지 않다.
철저히 메인캐/메인컵 신봉하는 내 취향을 박살 낸, 올해 최고 재미있게 본 선협드라마의 섭남이자 드라마 재미의 일등공신. 파트너이지만 연인은 아니었던 여인을 1만 년 동안 사랑하는 미친 짝사랑의 주인공. 근데 1만 년 동안 형벌처럼 수많은 삶을 살아가면서 정작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른다는 게 이 캐릭터의 킥이다.
짝사랑 서사 절절하지. 그렇지만 남서월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걸 바라냐, 그건 또 아니다. 불분명한 소유욕에서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감정으로, 그걸 창생에 대한 연민으로 확대하여 결국 자신을 희생한, 그의 여정이 눈물 나게 마음에 들 뿐. 사랑을 깨닫기까지 자신도 남도 다 죽일 뻔한 미친 짓을 여러 번 하기 때문에, 품을 수는 있는데 편은 못 들어주겠다.
황실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울보 공주님 양영은 떳떳하게 대접받는 공주가 되고 싶어서 남장을 하고 황제 오라버니를 구할 사절단을 이끈다. 하지만 그 여정에서 여의와 원주에게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배웠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전쟁으로 억울하게 스러진 백성들의 삶도 배웠다. 그래서 결국 날개를 활짝 편 한 마리의 매가 되었다. 자신의 존재와 지위, 상징성을 자각한 공주는 결국 자신과 뜻을 함께할 이동광과 혼인해 전쟁이 아닌 평화를 가져왔다.
1화 보고 마지막 화를 보면 분명히 같은 인물인데 같은 인물인 게 안 믿길 만큼 엄청난 성장을 보여준 양영. 원래 성장 서사가 메인이 되면 그 주인공은 민폐 캐릭터라며 상당한 비판을 듣는다. (주로 여자 주인공에게 성장 서사가 주어지는 편이라 여자 주인공이 엄청 욕먹는다) <일념관산>은 그 지점을 살짝 비껴갔기 때문에 양영이라는 캐릭터의 성장을 한층 유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커플
지금까지 본 드라마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애정하는 커플. <일념관산>은 무협 드라마이지만 이 메인 커플의 서사는 다른 로맨스 드라마보다 더 탄탄하고 짜릿하다. 죽음의 위기 따윈 예사로 겪는 오국 비밀조직 수장과 안국 최고의 살수가 서로에게 연민과 애틋함을 느끼며 사랑이 시작된다.
여의와 원주 둘 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싸우고 서로를 보호한다. 대화도 잘하고 오해도 안 하고 싸워도 '너는 내꺼' 확실하고 심지어 둘이 같이 잘 논다. 담담한 바다 같던 녕원주나 남자의 마음은 귀신같이 안다는 임여의나 정말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유치한 질투도 한다. 이런 으른으른한 연애 너무 좋아서 둘만 보면 웃음이 나온다. 마치 내가 육도당 제기가 되어 1열에서 우리 대장 연애 관람하는 기분.
슬로우 번의 매력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 준 2025 대표 정략결혼 커플. 원수 집안 간의 정략혼에서 사랑이란 감정이 싹틀 수 있을까? 얘네는 그걸 솔직함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둘은 '대국을 살피기 위해' 서로를 싫어하는 상황에서 결혼하지만, 1년 동안 '남편'과 '부인'이라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마주하고 대화하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얘네는 정말 초딩처럼 유치하게 싸우면서도 솔직하게 자기 감정 다 꺼내보인다. 하지만 절대 선을 넘는 말은 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과 한계는 빠르게 인정한다. 그래서 치열하게 싸워도 부부 관계의 본질을 해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결국 부부는 한마음이 되어 외부에서 닥친 위기를 해결하고 마침내 자신들이 원하는 태평성세를 얻는다. 솔직히 이게 맞지. 바깥에서 오는 위기도 많은데 서로 믿지 못하고 싸우면 얼마나 짜증나게요.
<춘화염>은 정말 아쉬운 드라마다. 작품이 아쉽다기보단, 초반의 그 치명치명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분들이 많아서 아쉽다는 의미다. 그냥 비주얼에 홀려서 보게 된다면 복수에 삶을 바친 두 사람의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에 목놓아 울게 된다. 우리 애들이 너무 돌돌돌 굴러서 나중엔 고생한 시간만큼 사랑하고 행복하길 바라는데... 그놈의 해독약 풀때기와 불로장생 타령하는 미친 할배 때문에 다 망했어요 ㅠㅠ
오해로 시작된 혐관부터 서로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찾은 연인이 되기까지 경화와 미림이 나오는 모든 장면이 좋다. 그중에서도 미림의 죽음에 반쯤 미친 모용경화가 채찍으로 무덤을 파묘하는(제대로 적은 거 맞습니다) 장면은 원작 소설과 드라마를 모두 아우르는 대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정신이 피폐해지는 게 싫어서 모용경화가 데릴사위되는 날을 가장 많이 돌려본다. 둘은 제발 다음 생에서는 복수 같은 거 하는 일 없이 평범하게 살고 사랑하길 바란다.
겨울달 선정 중드 고장극에서 가장 무해하고 귀염뽀짝한 한쌍. 임가륜 송조아 둘다 구선야와 단반하라는 캐릭터에 찰떡이다. 요괴사냥꾼 선야와 요괴를 보는 소녀 단하가 함께 요괴가 얽힌 사건을 겪으면서 그들의 감정도 관계도 깊어지는데 그 지점들이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심드렁하게 시작했던 <무우도>를 각잡고 보게 만든 내 귀요미들.
그래서 마지막 두 편을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봤는데ㅠㅠ 선야답고 반하다운 선택이라 생각했지만 둘이 행복할 수 없는 건가 싶어서 너무 울적해졌다. 하지만 12년 뒤에 다시 무우경이 열리면 그땐 몰라! 나는 둘이 행복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시즌2를 봐야겠다 이겁니다. 아기표범 낳고 알콩달콩 사는 거 내 눈으로 보고 싶다. 그래서 어느 방향으로 정안수 떠놓고 빌면 된다고요?
일당들
우당탕탕 떼거리물과 파워메인 로맨스. <일념관산>은 내 취향만 쏙쏙 골라서 제대로 차려낸 드라마다. 황제를 구하기 위해 적국으로 떠나는 육도당의 리더 녕원주와 그의 부하들. 역대급으로 개성 강한 캐릭터를 잘 조형하고는 코미디, 액션, 드라마 등등 장르마다 다 잘 말아준다. 여기에 여의와 양영까지 합세해서 더 미친 조합이 된다.
이렇게 캐릭터를 모두 사랑하게 만들어놓고 34화부터 하나씩..ㅠㅠㅠㅠ 몰살 엔딩을 준 건 싫지만 캐릭터에 애정을 준 만큼 각각의 퇴장도 멋있게 만들어줘서 고맙다. 이런 관계와 구성이 빛나는 떼거리 캐릭터는 앞으로도 많이 나올 테지만 <일념관산> 같은 느낌을 주는 건 <일념관산>밖에 없을 거다.
요괴 하나, 인간 셋, 꼬맹이 하나, 신선 하나. 절로 머리를 짚게 만드는 조합에 사건 푸는 과정도 그만큼 우당탕거리지만 눈물이며 웃음이며 다 보여준다. 처음에 이 사고뭉치 소대가 요괴들 추적하면서 사건 해결하는 것들, 지금 보면 재미없을지 몰라도 시청자가 이들과 정들라고 만들어놓은 시간이다. 이게 끝나지? 그럼 바로 눈물바람 시작이다.
조원주의 과거 사연이 풀리는 15~17화부터 다른 요괴나 캐릭터가 크게 개입하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땐 이미 정이 많이 들어서 이들이 겪는 고난이 답답하고 안타깝고 슬프다. 그러면서 드라마에 과몰입 완료-! 처음엔 엔딩 크레디트에서 춤추는 거 보며 '뭐야 이상해'라며 넘겼는데 마지막 화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성의 우정? 연대? 성공? 이런 스토리가 필요하다면 <석화지>를 보자. 아주 취향 따라 펼쳐놓고 떠먹여준다. 가주인 할아버지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 집안 남자들이 귀양을 떠난 후, 규방에만 머물던 여인들이 생존을 위해 용기를 내면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는 존재가 된다. 드라마 크레디트에는 화지와 안석이 주인공으로 나올지 몰라도,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화씨 집안 노마님부터 어린 손녀까지, 수십 년 함께 한 충직한 하인부터 자신들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는 시녀들까지, 이 집을 지킨 여인들과 어린이들이다.
드라마의 원작인 소설은 현대 여성이 고대로 가는 타임슬립 설정인데, (광총 규제 때문이긴 하지만) 드라마엔 이런 게 없어서 좋았다. 화가 여인들의 재능이 규방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들은 그래서 더 빛났다. 수많은 여인들 중 내 최애캐는 작약. 장정의 노욱효가 언젠간 더블 주연으로 같은 작품을 하는 걸 소원합니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