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장면으로 정리한 중드 감상 1년

중드탐닉 1주년 기념 (2)

by 겨울달

(최초작성 2025.06.08)


백수 되면서 보기 시작한 중드 감상 어느새 1년! 내 형편은 나아진 거 없지만 중드는 많은 위로가 되었다. 아마 다시는 이렇게 열심히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1년간 열심히 본 것 정리해 본다.


국내외 OTT에 업데이트된 신작 위주로 보았기 때문에 대부분 신작이다. 현대극은 잘 안 보기 때문에 고장극/선협극에서 골랐다


드라마


선협의 벽을 넘게 한 #여봉행

고장극은 잘 봤지만 선협극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여봉행>으로 가뿐히 넘었다. 중드에서 개그 코드가 잘 맞다고 생각한 작품이 거의 없는데, <여봉행>은 처음부터 너무 재미있었다. 하필 티빙/웨이브에 풀리고 있을 때 이걸 발견하는 바람에 나머지를 보려고 생전 처음 모아 이용권 결제를 했다는 거...


강한 여자 주인공 + 세계관 최강자 남자 주인공 조합이 정말 좋았다. 조려영의 심리도 마음에 들었지만 임경신의 행지는 정말...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상고신의 냉정함과 관조를 넘어선 무심함이 멋지기도 하고,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으면 저럴까 속상하기도 했다. 그리 길지 않은 원작의 에피소드를 몽땅 가져와서 잘 구성한 점은 합격이지만 생각을 읊는 보이스오버가 너무 많은 건 불호였다(연출의 한계라고 본다.) 그래도 꽉꽉 채운 해피엔딩을 줘서 만족한다. 심리랑 행지는 이제 아기랑 같이 잘 살아-




알고 봐도, 아니 알고 보면 더 슬픈 #회수죽정

초반부터 스포하냐고? <회수죽정>은 <호요소홍랑> 시리즈 중 가장 앞선 이야기라 이미 제작 단계부터 결말이 나와 있는 작품이었다. 연인 중 한 사람이 결국은 죽는다는 걸 알고 보는데도, 더 슬프고 처절했다. 다 보고 난 내 정신이 피폐해질 만큼.


1화 귀요미 가면 뒤 검선생이 어떻게 부귀에게 모질게 구는 왕권홍업이라는 거지? 저 정의감 넘치는 검객은 어디로 가고? 그런데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백 번 천 번 이해한다. 세상이 홍업에게 이렇게 잔인해선 안 된다. 그저 회죽을 잃는 게 아니라 사랑하고 아끼는 동료와 친구들을 모두 다 잃었다. 홀로 살아남아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데, 천부적 능력을 가진 부귀를 강하게 키워야 하는 과제까지 떠안았다.


비극은 인물들이 정해진 운명 앞에서 몸부림치면서 결국은 그에 굴복하며 겪는 좌절과 슬픔에 공감하는 게 매력이다. 그러니 <회수죽정>을 보면서 실컷 슬퍼하고 펑펑 울자.




의외의 밥친구 #작작풍류

틀면 술술 넘어가는 내 밥친구 <작작풍류> 되시겠다. 여성의 관직 진출이 허용된 가상의 시대에서 꾀 많은 여성 관리와 진중한 왕야가 조심스럽게 사랑을 키워간다. 경첨과 풍소봉 등 출연진도 괜찮고 제작 퀄리티도 좋은 편인데 잔인한 장면이나 내용도 적고 이야기 전개도 적당히 긴장감 있는 편이다. 그런데 재미있게 봤다는 분이 많이 없어서 아쉽다.


이 드라마의 킥은 법률이 여성 관리의 혼인을 제약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선황의 하나뿐인 동생이고 현 황제의 숙부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정왕 유연은 나이 어린 연인 모작화의 '외실(외첩)'을 자처한다. 저 시대에 '첩'은 집안에 들인 가족이지만 외실은 그마저도 아닌, 진짜 숨겨진 연인이고 불륜 상대라는 뜻이다. 그저 옆에만 있을 수 있다면 혼서 따위 없어도 된다는 왕야의 사랑 정말 터프하고 감동적이다. 물론 나중엔 좋은 결말을 맺는다.


서브남주? 또는 사랑의 라이벌?격인 대황자(유연의 조카) 역으로 주익연이 출연한다. 처음 봤을 때 "어머, 귀엽게 잘생긴 청년이네!"라고 망태기에 넣을 뻔했는데 너무 어려서 탈락 ㅋㅋㅋㅋ 그리고 이 드라마엔 <창란결>, <몽화록> 등에서 망(한)사(랑) 전문 배우로 명성을 쌓은 서해교가 모작화의 동료 심경홍으로 등장, 왕려곤이 연기한 유가공주와 진한 망사를 말아준다.




공개 안 됐으면 어쩔 뻔 #무우도

<무우도>가 기습 방영될 때만 해도 심드렁했는데 (사실이다, 그때 방영하는 다른 신작 고장극이 있었다면 이걸 봤을까 싶다) 지금 생각하면 공개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중드가 할 수 있고 가장 잘 하는 '중국식 판타지', 또는 '동북아st 판타지'를 수준 높은 제작 퀄리티로 빚어냈다. 각본, 연기, 프로덕션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을 보여주는 수작인데, 이는 '연출'의 힘이 정말 크다. 한국의 중드 팬들에게도 사랑받은 <삼생삼세 십리도화>, <신석연> 등을 연출한 임옥분 감독은 장면마다 몽글몽글한 감정이 피어오르는 서정적인 요괴 판타지를 선사한다.


정말 기대감 없이 시작했는데 이렇게 여운이 오래갈 줄은 몰랐다. 몰입해서 볼 줄 몰랐는데 패스트트랙으로 최종화까지 한꺼번에 풀린 날 드라마가 끝났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이제 감독님과 배우들의 차기작만 기다리고 있다. 시즌 2 논의가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 제발 사실이면 좋겠다.




가장 아쉬운 뒷심 부족 #방상가서

반면 초반엔 엄청나게 재미있다가 후반부에 푸시식 식어버린 작품으로 <방상가서>를 꼽고 싶다. 명서의 마음을 처음엔 거절했던 육상이 기억을 잃은 명서가(가짜) 여동생이 되자 사랑을 느끼며 속앓이하는 부분은 정말 재미있다. 육상의 감정이 점점 커지다 보니 명서의 부업인 사설탐정 이야기도 육상의 속이 타들어가는 재미로 볼 만했고, 명서에게 첫눈에 반한 청소의 감정도 '육상도 쟤도 언젠가는 정신 차리겠지'라는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사건이 일단락되고 인물 간 감정과 관계가 정리되는 30회 이후에는 재미가 없었다. 사실 드라마를 끌어가는 동력 자체가 사라진 셈이다. 그렇다면 해결되지 않은 사안들로 나머지 10회차를 채우든가, 이야기를 쫀쫀하게 만들어서 빠르게 마무리해야 했다. 그런데 복수 이야기는 도돌이표처럼 계속되고, 명서는 갑자기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육상은 명서를 쫓아가 그를 속인 잘못을 빌지만 복수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초반의 귀염 뽀짝 하고 아기자기한 러브스토리가 이어지지 못하자 내 기대와 애정도 사라졌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아쉽다.




기대 1도 없었는데 내 취향을 저격한 #곡주부인

아주 잠깐 신작 고장극이 가뭄이던 시기에 구작을 몇 편 보았다. 그중 <곡주부인>은 프리퀄 격인 <몽화정>이 촬영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 보기 시작했는데, 내 취향을 의심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중국 판타지 소설 작가들이 구축한 구주 세계관에 바탕한 <곡주부인>은 저국 황제의 심복 방감명과 그의 제자로 인연을 맺은 엽해시가 음모를 함께 분쇄하며 감정의 줄다리기를 한 끝에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선 서브커플인 황제 제욱-후궁 제란의 인기도 많았지만 나는 해시와 감명이 더 좋았다.


사실 매 순간 "방감명 저 XX!"라 욕하면서 봤기 때문에 재미있었을 것이다. 감명이 사제지간 이상의 감정으로 해시에게 온갖 애정과 정성은 다 쏟아부으면서 정작 사부를 열렬히 사랑하는 해시의 마음은 받아주지 않았다. 해시가 울 때마다 나도 같이 속 터질 뻔. 그런데 마음을 받아주고 서로 사랑하는 감정까지 확인했는데도 가장 중요한 순간엔 감명은 해시와 자신보다는 나라를 위한 선택을 하더라. 솔직히 이쯤 되면 해시가 생보살이라 할 만하지만, 해시 또한 감명처럼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커서 스승이자 연인의 뜻을 이어받는다. 그래서 결국 끝까지 "아유 저 천생연분..." 이러면서 봤더랬다.



장면, 그 외

드라마는 완주 못 했는데 클립은 백 번 본

#촉금인가 24화 웨딩크레셔 양정란

드라마는 재미없재미없으로 봤는데 24-26화까지 주야장천 돌려보는 <촉금인가>. 자신을 습격한 군인들과 싸우면서 큰 부상을 입은 양정란은 사랑하는 계영영이 둘째 형의 첩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양부로 쳐들어간다. 혼인이 취소되면 영영의 명성에 큰 해가 갈 것이란 말을 듣자, 정란은 "어차피 늑대 소굴에 들어갈 거라면 신랑을 바꾸는 게 어떻겠소?"라며, 자신의 정실부인이 되어 달라고 말한다. 대낮에 일가친척이 모두 보는 앞에서 신랑 바꾸기를 주장할 만큼 정란의 사랑은 너무 깊어 ㅠㅠ 좋아하지만 마음은 확인 못한 정란과 영영은 이렇게 부부가 된다. 지금까진 정란의 짝사랑이나 썸이었지만, 결혼으로 둘의 연애는 진짜 시작됐다.




드라마는 한 번 보고 OST는 백 번 듣는#구중자 久念

드라마를 좋아하고 OST를 좋아하는 건 많다. <대몽귀리>는 가창 OST는 버릴 게 없고, <류주기>도 그랬다. <천타도화일세개>와 <선태유수>도 드라마만큼 OST를 좋아했고, 최근엔 <무우도>와 <절요>의 삽입곡을 즐겨 들었다.


그런데 드라마는 좀 심드렁하게 봤는데 OST를 백 번 넘게 들은 경우도 있다. <구중자>는 맹자의, 이윤예 주연 로맨스 고장극으로 현지 방영 당시 인기가 많았다는데, 나는 엄청 재미있게 보진 않았다(왜일까...) 그런데 이 드라마 삽입곡인 시안즈(현자, 弦子)의 '久念(오랜 그리움)'은 정말 거짓말 없이 백 번 이상은 들었던 것 같다. 얼핏 들으면 고장극 OST 스타일을 그대로 담은, 딱 그만큼의 노래라고 할 수 있겠지만, 피아노로 시작되는 도입과 시안즈의 담담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보컬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요즘도 하루에 한 번은 듣는 듯.




고백의 모범 답안을 보여준

#류주기 31화 '회양왕의 반성문'


작년 한 해 가장 많이 보고 또 본 드라마 <류주기>는 전반, 중반, 후반 분위기가 다 달라서 어느 부분이든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31화인데 에피소드 전체에서 초반 5분 정도 제외한 모든 분량이 행주면당 커플의 마지막 갈등을 해소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중 늦은 밤 면당의 방 앞에서 행주가 독백하듯 말하는 이 고백 장면이 압권이다. 헤어진 시간 동안 치열하게 생각하며 면당을 이해하고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결심까지 꼭꼭 씹어서 읊는다. 이게 반성문이지 뭐.


떠난 면당을 쫓아온 것이며, 면당에게 온갖 방식으로 매달리는 것도 행주답지만, 이렇게 확고하게 감정을 내뱉으며 면당과 자신의 현실을 이해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가장 행주답다고 생각한다. 반성과 깨달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원칙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 내재하는 거, 아무리 사랑해도 쉽지 않다. 행주가 잘못한 게 많아도 면당도 시청자도 결국 용서하는 이유.




사랑에 미친 자 중 1등은

#여봉행 24화 바다를 얼린 상고신

무릇 선협의 재미란 사랑 앞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는 거 아니겠어요? 환생과 윤회를 믿고 목숨을 버리는 것도 빅재미이지만, 사랑 앞에서 이성을 잃고 힘을 휘두르는 것만큼 짜릿하고 위험한 게 있을까?<여봉행>에서 단 하나 남은 상고신 행지는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잊어버릴 만큼 긴 자신의 삶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준 여인 심리를 동해에서 잃어버렸다. 그걸 안 순간 어떻게 했을까?행지는 심리의 시신이라도 찾겠다며 바다를 꽁꽁 얼렸고(!), 결국 동해 용왕이 옥황상제에게 쫓아와 하소연하게 만들었다. 결국 하늘이 내린 뇌겁도 맞고 옥황상제가 보낸 불용군의 설득을 받아들여 사태가 일단락되긴 했지만.


큰 힘을 가진 사람에겐 큰 책임이 따르고, 사소한 존재에게 마음을 쏟지 않아야 만물을 공평하게 아낄 수 있다...라는 개소리가 지금 행지 귀에 들리겠냐고. 다행히 심리가 다시 행지 앞에 나타났고, 행지는 그때부터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임경신이 사랑에 미친 상고신을 정말 맛깔나게 연기해서 이 장면 보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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