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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스터 로봇 (Mr. Robot) 1시즌 스포일러를 '왕창' 담고 있습니다. 작품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드라마 감상의 재미를 저해할 수 있으니, 원하지 않으시면 뒤로를 눌러주세요.
며칠 전, 드디어 미뤄뒀던 미스터 로봇을 다 봤다.
그런데… 내가 뭘 본 거지?;;
이 혼란스러움을 감당할 수 없어 테컨의 크리에이터 여러분들께 도움을 요청했다
"저 방금 미스터 로봇을 다 봤는데 내용이 이해가 안 돼요."
그렇게 시작된 미스터 로봇에 대한 우리끼리의 이야기를 모아봤다. 테컨의 크리에이터들은 미스터 로봇을 어떻게 봤을까?
처음에는 잘 모르는 용어가 많이 나오니까, 내가 컴퓨터나 해킹에 대해 잘 모르니까 이 드라마의 내용을 이해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사물, 법정물, 정치물 보면서 한 번도 세부적인 내용 때문에 작품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 미드든 일드든 한드든 어려운 용어가 쏟아져 나와도 자막을 달든 한줄 정리를 하든 어떤 방식을 사용해서도 극의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게 한다. 그러니 해킹 드라마라고 다를 리가 없지.
게다가 미스터 로봇은 해킹을 다루는 드라마에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주인공의 활동 반경이 크고 액션이 많다. 아동포르노를 퍼뜨리는 인간을 신고할 때가 한 예. 경찰 기록을 해킹해서 확인해도 되는데 엘리엇은 굳이 체포하는 순간을 눈으로 확인했다. 이런 활동은 극이 전개되면서 더 잘 드러난다. 스틸 마운틴을 공격하기 위해서 직접 시설로 숨어들어갔고, 마약상 베라를 탈옥시킬 때도 감옥에서 베라와 직접 대면했다. 다크 아미와 접선할 때도 엘리엇은 장소에 '직접' 행차하기도 했다. 해킹에 대해서 하나도 몰라도, 엘리엇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다 보여주고 있는데, 왜 이해하기 힘들었을까?
테컨 크리에이터 여러분들은 작품이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집요하게 따라가고 있는데, 그 주인공의 정신 상태가 멀쩡한 것과는 억만 광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 현실과 환각이 뒤범벅되어 있는데, 어떤 것이 환상이고 현실인지 단순히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그냥 다 헝클어뜨린 느낌이라, 사건의 단서가 제시되거나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이 시청자에게 굉장히 불친절하게 보이고, 그래서 이정도의 혼란스러움을 이해하려면 주인공 엘리엇처럼 정신을 놓고 보는 게 좋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의 정신상태는 약을 좀 빨아봐야 이해할 수 있어요. (청우)
술이 떡이 된 상태로 보면 좀 이해가 감. 주인공과 정신상태가 비슷해지면 공감이 좀 될락말락해요. (Kidult)
지금까지 드라마를 본 분을 온라인/오프라인으로 몇 분을 뵈었는데, 그분들의 평은 하나같이 ‘뒤로 가면 갈수록 별로다’라는 것이었다.
6편까지 혼란스럽다가 그 이후 짜증나던데요. (과일장수)
그래도 6편까진 혼란스러워도 재미있었는데 7편부터는 그저 혼란스럽더라고요. (레몬라이먼)
6화 기점으로 극 전개가 조금 불친절해서 이해하는 데 애먹었어요. (tomato91)
기점은 6~7편, 즉 마약상 베라가 엘리엇을 협박해 탈옥을 기획한 에피소드다. 쉴라를 살리기 위해 엘리엇은 비상한 머리와 해킹 실력으로 베라의 탈옥을 돕는다. 베라의 동생이 형을 죽일 거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모든 걸 알고 있던 베라는 감옥을 나오자마자 동생을 죽인다. 쉴라 또한 이미 죽은 상태였다. 엘리엇이 자기 때문에 쉴라가 죽은 걸 알고 난 후 혼란을 겪는다. 이때부터 엘리엇의 멘탈 상태가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리고 있었던 것. 실제로 이 이후부터는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지 않으면 이야기, 특히 엘리엇의 스토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두번 세번 봐야 할 정도다.
그렇지만 이 불안한 정신 상태 때문에 이해가 어렵다고 해도…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7편을 두 번 봐도 이해 못하긴 하지만 이제 겨우 세 편 남았는데! 이 고비를 넘기고 볼 수 있다면 10편까지 달릴 수 있다. 그 뒤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2시즌에 다뤄질 떡밥도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그냥 '해킹 드라마'나 '해커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을 7편부터 보여주는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6편까지 깔아놓은 여러 단서들을 통해 여러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7편부터 생각해온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내가 미드를 너무 많이 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예상은 하면서도 내가 생각한 게 정답이 아니길, 좀 더 신선한 답을 제시해 주길 바랐는데, 막상 답은 예상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1시즌 10편으로 '엘리엇 앨더슨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2시즌에서는 조금 더 신선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단서를 제시해주지 않을까? 이 떡밥들이 망하지 않으려면 그래야만 할 텐데 ㅋㅋ
10화까지 열심히 봤는데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존재했다. 특히 타이렐에 대해서.
너무나 강렬하게 등장했고 충격적인 장면에는 전부 다 등장했던 E Corp의 임원 타이렐. 얘도 멘탈이 불안정한 건 엘리엇이랑 비슷한 것 같았다. 엘리엇이 약물과 fsociety와 해킹자경단 활동으로 중구난방 멘탈을 붙잡아 왔던 반면, 타이렐은 출세에 대한 욕망과 본인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부인 요아나에게 의지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 하지만 경쟁자에게 밀려서 회사에서 쫓겨나고, 요아나에게 "최후 통첩"까지 받은 그는 마지막 기회를 붙잡는 심정으로 엘리엇을 찾아간다. 그게 9화. 10화에는 타이렐이 등장하지 않는다. 분명 아케이드까지 데려가 fsociety에 대해 말해주기도 했는데, 왜 시즌 피날레에서는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을까?
테컨 크리에이터 여러분들의 예측은 엘리엇이 타이렐을 살해했다는 것. 소수만 알아야 하는 비밀을 그렇게 쉽게 알려줄 수도 없고, 게다가 E Corp에서 쫓겨난 후 요아나에게 "바로잡으라"는 말까지 들은 상황이니까, 타이렐이라면 E Corp를 위협하는 사건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타이렐과 미스터 로봇이 이전에도 동료 비스무리한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그렇다고 그를 믿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fsociety의 존재 자체가 달려있는 일에 타이렐을 갑자기 끼워넣진 않았을 것. 물론, 답을 시원하게 알려주지 않는 작품답게 타이렐의 운명은 물음표다.
엘리엇이 시즌 내내 원맨쇼를 하다가 9화에서 진실을 알고 타이렐과 공모하는데, 자기가 타이렐을 죽인 건지 아닌 건지 애매모호한 상황이 된 거죠. (청우)
특히 엘리엇이 3일 동안의 기억을 잃었다는 것이 이 예측의 신빙성을 더해준다. 그 3일간 타이렐은 실종되고, fsociety가 계획했던 일은 이미 실행되었으니까. 엘리엇이 타이렐을 죽인 후 그 여파를 받아 오랫동안 세심하게 계획했던 일을 무모하게 실행하고 정신을 잃었다? 나쁘지 않은 전개다.
그런데 지금까지 타이렐이 죽었을 것이라 열심히 떠들었는데, 막상 2시즌에 타이렐이 나온다면? 그에 대해서는 엘리엇이 타이렐의 인격을 가져갔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시즌 2에 타이렐이 나오면 아마도 1인 3역의 상태가 아닐까요? (청우)
위기 속에서 사람을 죽이고 그 인격을 흡수한 셈. 다중인격이 나온 영화나 드라마는 주로 이미 만들어진 다중인격이 활동하거나 인격들이 흡수되는 과정을 주로 다뤄왔고, 인격을 새롭게 생성하는 건 자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건 콜렉터인가... 일단 1시즌은 이렇게 끝났는데 2시즌에는 어떻게 될까? 엘리엇은 또 누군가를 죽이고 그 인격을 흡수해 갈까?
미스터 로봇은 파일럿이 웹으로 공개되면서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굉장히 강렬하고 낯선 스타일의 드라마는 일단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특히 해킹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중에서 가장 그럴듯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집필 전에 철저히 조사해서 방대한 자료를 구축해 놨다는 걸 증명한 것.
반면 캐릭터는 전개에 비해서 많이 독특한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드라마를 보는 순간 바로 연상되는 작품들이 있어서, 캐릭터의 기시감은 큰 편이다.
대놓고 오마쥬를 하고 있어요. 엘리엇은 파이트 클럽, 타이렐은 아메리칸 사이코. (kilroy)
그래도 연기는 잘 하니까… 잘한다 잘한다 소문만 났던 라미 말릭은 마치 제 옷을 입은 양 엘리엇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특히 동그랗고 큰 눈이 흔들릴 때마다 엘리엇의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그 어느 장치보다 스토리보다 와 닿는데, 저 눈만으로도 캐스팅 하나는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찬 슬레이터도 본인의 이미지에 해킹 기술만 살짝 얹은 듯한 거칠고 파괴적인 미스터 로봇에 잘 어울린다. 타이렐을 맡은 마틴 월스트룀의 창백한 피부와 금발 머리 또한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고 있다.
스토리나 분위기 같은 건 전체적으로 싸늘하면서도 공허하면서도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느낌? 특히 분노라는 감정이 작품 전체에 넘실대는 느낌이다. 엘리엇이 해킹을 하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겠지만, 결국 그 해킹의 창끝은 '못 가진 자들'을 착취하는 '가진 자들'에 겨눠져 있다. 미스터 로봇의 한쪽에서는 엘리엇이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면 다른 한쪽은 fsociety로 대변되는 엘리엇의 원칙과 도덕이 가진 자들을 어떻게 처단하는가를 그리고 있다. 물론 반전은 (예상 가능했지만) 엘리엇과 수많은 못 가진 자들의 분노와 반란이 가진 자들의 몰락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크래치 하나 내지 못한 채로, 오히려 기술과 자본이 만남으로써 2시즌에서는 ‘못 가진 자들’의 족쇄를 푸는 게 더 힘들어질 것 같다.
미스터 로봇이 스타일, 스토리, 캐릭터 등 여러 면에서 호불호가 갈릴 것은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시즌에 최고는 아니더라도 신작 중에서는 3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미스터 로봇을 방송하는 USA에 대한 인식도 호감으로 돌아서는 상황.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적으면서 2시즌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진다. 흠… 최소한 지금 가진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2시즌을 확인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