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룡음

2025 신작 중국 드라마 감상

by 겨울달

수룡음 (水龙吟, Whispers of Fate)

고장극, 무협, 판타지, 액션 | 라운희, 초순요, 방일륜, 오자일, 포상은, 진요, 임윤 등 | 40부작 | 모아


천하제일 무공의 고수 당려사(라운희)는 은둔 생활을 하던 중 옛 친우의 계략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무림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휘말리고, 신비한 무공 비급을 차지하려는 세력들을 쫓으며, 거대한 음모와 맞서 싸운다. 세상을 등지고 자신만의 신념만을 고집하던 그는 여러 인연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정, 의리에 대해 새로이 깨닫고, 마침내 무림의 미래를 짊어질 수호자로 거듭난다. - MOA <수룡음> 소개글


<백발왕비>, <향밀침침신여상>을 거쳐 <장월신명>, <안심기> 등으로 고장극에서 '믿고 보는 배우' 반열에 오른 라운희의 새 작품이다. <연화루>의 원작 소설인 <길상문연화루>를 쓴 등평 작가의 소설 <천겁미>가 원작이다. 천하제일의 무공 고수이지만 모든 게 비밀투성이인 존재 당려사가 자신을 노리는 음모를 파헤쳐 가며,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확실히 짚어두자면, <수룡음>은 일반적인 선협이 아니라 '외계인'이 등장하는 판타지 무협이다. 의상과 분장은 휘황찬란하고, 스케일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크며, 화려한 액션 신이 연달아 펼쳐져 눈이 즐겁다. 이야기는 후반부까지 긴장을 놓지 않으며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고, 각 캐릭터를 통해 인간 세상의 갖가지 감정과 관계를 보여주며 마침내 주인공이 맞이해야 하는 결말을 모두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초반에는 이야기 전개가 친절하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주인공이라는 인물은 세상만사에 달관한 듯 무심해 보이고, 주변 인물들이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는지, 등장인물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상황 파악이 쉽지 않다. 무언가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고 그것이 당려사를 노리는 음모인 건 맞는데,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조차 없다. 세상 무심하고 도도해 보이는 당려사가 왜 그토록 과거에 사로잡힌 듯 구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흐름이지만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 때, 인내가 필요하다. 초반 회차는 당려사가 어떤 존재인지, 그가 어떤 경험을 했으며 어떤 사건 때문에 그를 증오하게 된 '류연(방일륜)'과 대립하게 되었는지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다.


그 전말을 알고 나면 당려사가 왜 자기 몸을 깎아가며 사람들을 지키려 하는지, 왜 가장 어려운 짐은 항상 본인의 몫으로 남겨두는지, 그리고 왜 세상 무심한 듯하면서도 그토록 다정하고 상냥한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에 떨어진 그를 거두고 돌보며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가르쳐 준, 아버지이자 형제 같은 존재 '방주(장준녕)'를 살리기 위해 당려사가 했던 일들이 뒤늦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빌런 집단인 '풍류점'은 어떤 역할일까? 이들은 '성귀구심환'이라는 독약을 세상에 퍼뜨려 강호 사람들을 유혹하고 해치며 이익을 얻는 집단인데, 그 약의 정체는 처음에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당려사는 류연과 풍류점에 맞서기 위해 강호를 이끄는 '중원검회'에 합류하고자 한다. 당려사의 이력은 기이하고 출신은 의문투성이이며, 행동은 강호의 규칙 따위 가볍게 무시할 정도로 파격적이라 처음엔 배척당한다. 하지만 당려사는 당근과 채찍, 그리고 약간의 쇼를 적절히 활용해 중원검회를 설득(?)하고 끝내 그들의 일원이 된다.


중원검회와 풍류점의 충돌은 겉보기엔 정파와 사파의 대립 같지만, 사실 '착한 놈과 나쁜 놈'의 싸움이라기보다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대결에 가깝다. 금전과 권력, 명예 앞에서 한없이 이기적이고 나약해지는 자들이 어떻게 더 악한 자들을 이기겠다는 건지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나마 능력이 출중하고 대의를 생각하는 인물들이 발언권을 쥐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당려사를 노리는 음모와 그 뒤에 숨겨진 더 큰 계략도 흥미롭지만, 나는 당려사라는 인물이 이 여정을 통해 인간의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배우고 깨닫는 과정에 더 마음이 갔다. 완전히 백지상태로 세상에 내려와 부모 같은 인물을 만나 인간의 도리를 배웠지만, 사랑하는 사형을 잃고 형제들과 멀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되돌리려 강호에서 기행을 일삼고, 돈과 권력을 가까이하며 악명을 떨치는 존재가 되었다. 다행히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아끼고 존중하는 새 동료들을 만나 신뢰와 우정을 나누며 감정적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순간, 그는 아쉽지만 후련한 마음으로 자신의 선택을 내린다.


<수룡음>에서 사건의 흐름만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감정이다. 당려사뿐 아니라 각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에 집중한다. 인물이 많고 관계가 얽힌 만큼 그 안에 담긴 감정선의 결이 중요하다. 모든 장면이 완벽할 순 없지만, 적어도 당려사와 주요 인물들이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최대한 보여주려 노력한다. 이런 점 때문에 전개가 빠르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이라도 인물의 떨리는 눈빛과 갈등하는 표정을 비추며 시청자가 그 감정을 곱씹게 만드는 것이, 40회차라는 긴 호흡을 가진 드라마의 미덕이라 생각한다.


작품 속 인물들의 관계는 친구, 동료, 사제, 원수, 주종 등 매우 다채롭다. 이 관계들이 빚어내는 다양한 감정들이 큰 재미 포인트다. 권력이나 부에 대한 욕망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갈구와 애증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굳이 따지자면 시청자를 유혹할 만한 전형적인 '로맨스는 없다.' 당려사의 여정 속에서 오가는 사랑은 로맨스라는 틀에 한정되지 않는다. 아수(임윤)와 미묘한 기류는 있지만 크게 부각되지 않으며, 오히려 다른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상처, 집착을 통해 당려사가 새로운 감정을 배워나간다.


다 보고 나면, 이 드라마는 현란한 색상과 달콤한 향기로 유혹하지만 맛은 적당히 시큼하고 여운이 오래가는 캔디 같다. 처음엔 눈 돌아갈 만큼 화려한 화면을 쫓아가기 바쁘지만, 드라마의 호흡에 익숙해지면 인간 본성에 대한 태도와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음미할 수 있다. 가볍게 즐기기에도, 깊게 파고들기에도 충분하다. 여러 평가가 갈릴지라도, 직접 '찍먹'해 볼 만한 가치와 퀄리티를 갖춘 드라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수룡음>은 현재 모아(Moa)에서 시청 가능하며, 티빙이나 웨이브 등에 공개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듯하다.




ps. 다시 말하지만 로맨스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특히 중원검회의 동맹인 '보주 선생(양사택)'과 풍류점 서궁 궁주 '서방도(진요)'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극을 이끄는 중요한 축이다.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관계도 흥미로워서, 이런 사건들이 없는 평범한 세계였다면 마음 편히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ps 2. 등장인물 대다수가 진지하고 심각하지만 코미디 코드가 없는 건 아니다. 곳곳에 배치된 유머의 타율이 꽤 높다. 여러 캐릭터 중에서도 코믹 릴리프는 단연 '설선자(백주)'. 당려사와 채권-채무 관계로 얽혔지만 그의 여정을 돕는 마음 착한 선배님이다. 그와 웬수처럼 지내는 '수다파(아이미)'와의 티격태격하는 관계도 큰 웃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