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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달 Apr 28. 2016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이 싸움 뒤에 남은 것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딱 지금 내 심정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드디어 원하던, 그리고 원하지 않았던 [시빌 워]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혼란스러웠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라는 생각을 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시리즈의 거의 모든 영화를(헐크 영화 제외) 챙겨봤는데, 액션이 지나고 난 자리에서 이렇게 갈피를 못 잡는 내 모습이 놀라울 뿐입니다. 그 정도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오랜 시간 동안 시간과 감정을 투자했던 사람들이, 영화에 참여한 분들의 이름이 하나둘 보일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려 한다.



눈물나는 액션씬

일단 기대했던 액션씬은 다 괜찮았다. 캐릭터의 특징과 강점이 잘 드러난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어벤저스2] 이후 능력치가 많이 상승한 스칼렛 위치. 그 외에는 뭐… 액션에 있어서는 믿고 보는 마블 영화니까, 게다가 루소 형제가 작업한 거니까, 마음에 안 들기가 어렵다.

 

이미지출처=Marvel.com

인상적인 건 [윈터솔저]에서 육탄전에 재미를 붙였는지 루소 형제답게 거의 모든 캐릭터에게 육탄전을 부여한 점입니다. 영화로 아이언맨을 몇 번이나 봤는데 토니 스타크가 이렇게 몸을 많이 쓴 걸 본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ㅎㅎ 예고편의 공항전투씬도 정말 마음에 들었지만, 규모나 캐릭터별 액션 스타일도 좋았지만 특정한 순간 이후에 그 재미가 배가 되었다는 사실! (이건 좀 있다 이야기할게요.)


그러나 [시빌 워]의 액션씬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액션씬이 나올 때 시간이 멈춘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한데, 치고박고 난리가 나는 그 와중에도 이야기가 한발짝씩 나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전투씬에서든 서로의 감정이 부딪히면서 이야기가 진전되고 있었습니다. 쟤네들 싸운다! 우와! 이런 수준으로 끝나지 않는데다가, 서로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그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게 눈에 보이니까... 마지막에는 결국 '하지마...'라는 말까지 되뇌게 되더군요.ㅠㅠ



스토리와 사건의 교차

[시빌 워]가 또 한 가지 마음에 들었던 점은 바로 스토리와 사건을 굉장히 잘 교차하게 쓰고, 각각의 스토리는 MCU의 여러 영화를 통해 불거진 문제점을 짚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단 가장 먼저 거론된 '소코비아 협정'은 결국,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그에 대한 책임 의식과 행위가 미흡한 슈퍼히어로들은 악당과 다를 바 없다는 두려움의 발현입니다. 이는 뉴욕에서, 워싱턴DC의 쉴드 본부에서, 남아프리카와 소코비아에서 있었던 수많은 사건들의 결과죠. 그래서 어벤저스를 전 세계의 연합 조직의 감독 아래 둔다는 것인데, 이를 토니와 캡틴은 다르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미지출처=Marvel.com
이미지출처=Marvel Studio/Disney

여기서 버키의 문제가 터집니다. 이전 작품들을 통해 버키가 스티브에게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면 지금 버키를 감싸고 도는 스티브의 모습이 집착에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버키에 대해서라면 스티브는 그의 입으로 직접 "16살짜리 어린애"처럼 굴게 된다고 말했으니까요. 스티브에게 버키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라, 캡틴은 지금 옆에 있는 수많은 친구와 동료들, 그리고 자신을 영웅시하는 세상에 크나큰 충격을 안기면서도 버키를 감싸안는 걸 선택합니다. 그러니 어벤저스를 지키려 하는 토니는 버키를 보호하기 위해 어벤저스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스티브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하워드 스타크 부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드러났을 때, 토니는 부모님을 죽인 원수 버키도 그렇지만 그 사실을 감추고 있었던 캡틴에게 큰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토니는 버키를 공격하고, 버키는 살기 위해 토니를 공격하고, 스티브는 버키를 지키기 위해 토니를 공격하고, 토니는 자신을 배신한 스티브에게 충격을 받으며 공격하고... 마지막 액션씬은 사실 가장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가장 처절합니다. 액션씬을 보며 처절하고 짠하고 하지말라고 소리치고 싶고... 별별 감정을 다 느끼게 되더군요. 결국 배신감과 충격, 절망 등으로 뒤범벅된 토니가 캡에게 "방패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했을 때, 스티브는 미련 없이 방패를 버립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 토니는 한번 더 배신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캡틴을 돌려주세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여러 감상을 봤을 때 가장 큰 불만은 '캡틴'의 캐릭터가 붕괴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캡틴은 바른생활사나이, 원리원칙주의자, 선하고 착한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게 되었다는 겁니다. 저도 사실 처음에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럼로우를 잡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를 낸 완다에게 캡틴이 '모두를 지킬 수는 없다'라는 말을 했을 때, 사실 '저 할배가 미쳤나' 싶었거든요. 물론 완다를 위로하는 말이었다지만 '어... 생각보다 저 말을 쉽게 하네?'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거기에다가 소코비아 협정에 서명을 거부하며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천명할 때는 '캡이 원하니까'라고 생각했지만, 버키의 문제로 연결되니까 캡은 이성을 반쯤 잃은 듯 행동했고 그에 따라 저도 이성을 반쯤 잃고 '저 할배가 왜 저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지 출처=Marvel.com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미 캡은 조직이라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고, 자신을 구속하는 그 어떤 조직도 거부하려는 움직임을 강하게 보여온 것 같습니다. 어떤 조직에 대한 신뢰는 [어벤저스]에서 아이언맨이 원폭을 짊어지고 차원의 문을 통과했을 때 금이 갔고, [윈터솔저]의 헬리캐리어 3대와 함께 산산히 부숴졌습니다. 그래서 소코비아의 협정을 믿지 못했고, 버키를 잡으려 하는 공권력을 믿지 못했던 겁니다. 준법정신 투철하고 애국심이 흘러넘쳤던 1940년대의 청년은, 2010년대에는 조직도 국가도 믿지 않는 노병이 된 겁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는 캡틴의 감정선은 참 따라가기 어려웠어요. 영화가 딱히 불친절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동안 내가 봐왔던 영화를 떠올리지 않으면 쉽게 이해되지 않더라고요. 2차 관람 때는 이 부분에 집중해서 감상할 예정입니다.(2차?ㅋㅋ)



이 싸움이 남긴 것

어벤저스들이 반으로 갈라져 서로 싸우다. 보기에는 신날지 몰라도 이것이 가져온 결과는 어마어마합니다. 어벤저스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졌습니다. 팀은 완전히 와해가 되었고, 토니는 캡틴과 다른 어벤저스들이 떠나고 남은 자리를 쓸쓸히 지켜야 합니다. 반면 버키를 데리고 탈출한 스티브는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향했는데요, 다른 어벤저스들이 그에게 합류할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결국 모두가 다시 어벤저스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 버렸는데, 이들이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날지 걱정반 기대반입니다. 이런 때 앞으로 나올 영화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심이 되는 거죠. 이들이 다시 한 팀으로 활동하게 될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가 나올 때까지 5편을 더 봐야 한다는 게 정말 씐납니다!!



캐릭터의 매력

기존의 캐릭터들은 업그레이드되고, 새로운 캐릭터들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 [시빌 워], 주요 캐릭터들에 대한 감상을 간단하게 정리해 봤습니다.

이미지출처=Marvel.com

블랙 팬서

아, 섹시한 퓨마 오빠... 잘생기고, 피지컬 좋고, 똑똑하고(!), 왕이고(!!), 게다가 토니 스타크보다 부자라니! 토니 스타크도 아무 걱정없이 어벤저스도 운영하고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팍팍 쏘는데, 그것보다 더 부자인 캐릭터가 존재했다니! 그랬다니!!!!

사실 이 영화에서 슈퍼히어로들이 어제까지 친구이자 동료였던 사람들을 공격하는 걸 주저하는 데 반해, 블랙 팬서는 버키를 죽이기 위해 미친듯이 뛰어다닙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살벌하게 뛰어다니는데 거기에 두뇌와 재력을 더하면 [시빌 워]에서의 블랙 팬서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더군요. 그렇지만 티칠라는 모든 진실을 알고 난 후 가장 먼저 복수의 악순환을 끊은 사람이었고, 가장 먼저 이성을 찾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단독영화가 더 기대됩니다. 이를 악물고 감정을 다스리는 냉정함과 현명함까지 갖춘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윈터 솔저 & 팔콘

윈터 솔저는 윈터 솔저고, 팔콘은 언제나 믿음직한 팔콘이었죠. 버키의 이야기는 앞에 많이 했으니까 생략하고 샘은 언제나 캡틴을 믿으니까 그렇다고 하고... 재미있던 건 이 둘의 관계입니다. 친구의 친구는... 놀릴 만한 대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거든요. 정말 안 어울리는 이 둘이 보여준 아주 짧은 콤비플레이 덕분에 극장 안 사람들이 전부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둘이 서로를 죽이려고 한 사이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아마 스티브를 놀려먹는 재미로 베프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스티브가 키스하는데 왜 너네 둘이 좋아하는건데!!!! 인터뷰에서 한 기자가 윈터 솔저와 팔콘이 언제 로드트립 영화를 찍을 거냐는 질문을 하던데, 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파이더맨

아구 귀여워라! 끝까지 귀엽고 재미있고!! 특히 자신의 우상 같은 토니 스타크를 만났을 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귀여운 표정을 지을 때나, 토니에게 잘 보여야 한다면서 깐족대면서 캡틴 팀을 공격할 때나, 마지막 몸개그까지 저어언부 다 귀여웠어요. 토니와 피터의 합이 정말 좋았어요.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으로서의 합도 좋았고요. 로다주와 톰 홀랜드를 세워놓으니까 귀여움이 터지더군요. 단독 영화가 정말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앤트맨

스파이더맨이 재미있다고 해서 코믹 요소는 스파이더맨에 몰아주는 줄 알았는데, 역시 복병은 앤트맨이었습니다. 아... 앤트맨 보면 진짜 껄껄(깔깔도 아니고 껄껄) 웃게 되는데 웃으면서도 가끔 자존심이 상하는 거에요! 내가 다른 것도 아니고 크기를 가지고 치는 개그에 이렇게 목청이 보일 정도로 웃다니! 이건 아니야!!!! 하지만 이번에도 앤트맨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크기'로 웃음을 주었습니다. 바로 그 문제의 공항 전투씬에서 말이죠. 저는 그 씬이 한없이 심각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코미디를 여기다가 집어넣었습니다. 그것도 앤트맨의 크기 코미디를!!!! 작가님과 감독님은 천재고 저는 등신입니다. 네, 저는 또 그렇게 껄껄 웃어대고 또 자존심 상하고를 반복하였습니다.


스칼렛 위치 & 비전

원작에 이미 공식커플인 두 사람은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질까 궁금했었어요. 아직도 편견에 사로잡힌 저는 둘 사이에서 비전이 조금 더 발언권이 셀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정작 두 사람의 관계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비전은 다른 어벤져스 앞에서는 가장 객관적이고 가장 순수한 자일지 몰라도, 완다 앞에서는 진짜 어린애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거의 '내 누나는 내가 지킨다' 포스로 있더군요. [어벤저스 2]에서 완다가 비전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본 반면, [시빌 워]에서는 자기를 너무 좋아해서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는 남동생을 걷어키운다는 느낌이었어요. 특히 이 둘의 관계에서 찰나의 순간이 콕 와닿았는데요. 완다가 스티브에게 위로를 받을 때 비전이 방 벽을 통과해 들어옵니다. 그때 완다가 비전에게 '비즈(Vis)!'라고 애칭으로 불렀어요. 거기서 혼자서 속으로 물개박수를 쳤드랬습니다.

블랙 위도우 & 호크아이

아... 이 두 사람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존재감이 없었어요. 그동안 일당백 하던 블랙 위도우가 제대로 안 그려져서 많이 슬펐습니다. 우리 나타샤 언니는 이런 대접을 받을 캐릭터가 아니거든요!!!!!! 다음번에는 이 두 사람에 좀 더 집중해서 봐야겠어요.


지모 남작

마블 시리즈뿐 아니라 어느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도 이렇게 짠한 빌런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나약한 인간으로서 슈퍼히어로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서로에게 의심과 불신의 싹을 심는 작업을 몇 년간이나 해왔다니...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렇게 해서라도 복수를 하고 싶었던 마음에 어쩔 수 없이 안타까움을 가지게 됩니다. 게다가 대니얼 브륄의 불쌍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마음이 더 드는 게...


기타 재잘재잘


1. 음... 그럼 이제 페퍼는 안 나오는 거에요? 개인적으로 페퍼는 정말 좋아했는데... 설사 로다주가 마음을 바꿔서 [아이언맨 4]가 나와도 페퍼는 아니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슬퍼집니다.


2. 캡아의 공식 연인(?)이 된 샤론을 환영합니다. 슈퍼히어로의 연인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을 선택하신 점에서 일단 심심한 위로를 드리니다.


3.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사태는 닉 퓨리와 마리아 힐이 있었다면 안 일어났을 것 같기도 하고....


4. 아, 이 난리와 별개로... 하이드라의 운명에 대해서는 [에이전트 오브 쉴드]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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