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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달 May 19. 2016

웨이트리스 Waitress

뮤지컬 수입 기원 포스팅

이 글은 미드 및 영화 콘텐츠 플랫폼 테일러컨텐츠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보다 드라마를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가 몇 가지 있는데, 오늘은 그 중 하나인 [웨이트리스(Waitress, 2007)]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넷상에서는 '맛있는 파이짤'로 유명한 영화고, 파이만큼 달달한 로맨스도 담겨 있지만, 요즘에는 파이 한 조각 한 조각으로 성장해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더 와닿는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사진 출처 모두 텀블러)



Sweet - 영화 이야기


작은 남부 마을의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운 파이를 만드는 제나.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녀가 만드는 파이만큼 다채롭지도 달콤하지도 않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남편 얼은 제나를 끝없이 구속한다. 그는 제나가 혼자서 자립할 수 없도록 차도 운전하지 못하게 하고, 그녀가 하루종일 힘들게 번 돈도 모두 빼앗고, 그녀에게 원치 않은 섹스를 강요하며 억지로 사랑을 확인하려 한다. 그런 그를 견딜 수 없는 제나는 몰래 돈을 조금씩 모으며 남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때 확인한 임신. 제나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운명을 원망한다.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러 갔지만 아이를 가진 것에 기뻐하지 않는 제나. 코네티컷에서 이곳으로 오게 된 동네의 새 산부인과 의사 포마터는 그런 그녀에게 이끌리고, 제나 또한 포마터에게 끌림을 느낀다. "나는 임신했고, 선생님은 내 의사고, 나도 결혼했고, 선생님도 결혼했잖아요."라는 말로 겨우 마음을 달래보아도 포마터에게 끌리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던 제나는 결국 포마터와의 불륜을 시작한다. 제나가 지옥같은 결혼과 임신을 견디게 해준 건, 그저 섹스만 하는 사이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가장 어두운 모습까지 털어놓게 만드는 포마터와의 관계였다. 제나는 포마터와 함께 있으면 최소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배우자 몰래 사랑을 속삭인다.


임신 막달, 제나가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받은 팁을 조금씩 빼돌려가며 모은 돈을 얼이 찾아낸다. 제나가 자신을 떠날 것이라 생각한 얼은 제나를 때리고, 그녀 앞에서 울고불며 그녀를 잡는다. 제나가 얼을 떠나려고 오랜 시간 동안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고, 결국 그녀는 정기 검진 때문에 만난 포마터의 앞에서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이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포마터가 제나를 데리고 떠나려던 찰나 그녀의 양수가 터지고, 제나는 정신없이 분만실로 실려가 아기를 낳는다.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은 아기를 품에 안는 순간, 제나는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힘을 얻는다. 얼에게 "당신 이제 내 곁에만 오면 죽여버리겠어."라고 말하며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자신을 사랑해준 포마터에게도 "아내에게 돌아가라"고 말하며 그와 영원히 헤어진다. 제나는 식당의 단골 손님인 노인 조가 남겨준 돈으로 전국 파이 대회에서 우승을 한 후, 자신만의 파이 식당을 차리고 딸과 함께 살아간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일단 먹는 게 나온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괜히 파이를 만드는 움짤로 유명한 영화가 아니다. 파이의 색감이 정말 알록달록하다. 달콤하고 진한 초콜렛, 달콤한 커스터드 크림, 신선한 과일, 고소한 견과류... 갖가지 재료가 파이를 채우는 걸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그리고 '남편이 싫어', '사랑에 빠진 초콜릿 무스', '밤에 아기가 빽빽 울어대는 내 인생은 망했어' 파이 등 제나의 상황에 맞는 이름들이 등장하는 것들도 재미있다. 물론 제나의 상황에서는 모두 웃을 수 없는 일이지만 보고 있는 사람들은 안타까우면서도 웃음을 멈출 수가 없기도 하다.


암울한 제나의 인생에서 버팀목이 되어 준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존재도 사랑스럽다. 연애 한 번 못 할 정도로 수줍었지만 결국 자기만의 사랑을 찾은 던, 인생의 쓴맛을 먼저 봤지만 여전히 사랑을 꿈꾸는 베키, 옛날의 영광을 추억하면서도 제나에게 삶에 대해 엉뚱하면서도 날카로운 이야기를 해주고, 마지막에는 제나가 자립해서 살 수 있도록 도운 단골 손님 조.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모든 것들을 불행하게 여겼던 제나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던 포마터 등. 제나의 모든 것을 짓밟은 얼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녀를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 덕분에 제나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웃음과 함께 볼 수 있었다.


영화 '웨이트리스' 중 / 이미지출처=Fox Searchlight Pictures

그리고! 내배우 내남자 네이든 필리언이 '아마도' 처음으로 (그리고 지금까지 마지막으로) 주연으로 출연한 로맨틱 영화라는 거('캐슬'은 드라마니까 예외로...) 멀대같이 큰데 곰같이 푸근하고... 네, 암튼 그렇습니다. 임신한 제나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녀에게 서서히 빠져드는 포마터가 참 멋졌다. 결국 제나와 헤어지긴 했지만, 제나의 삶에 잠깐 동안 기쁨과 희망을 주었고, 제나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켜준 사람이었기 때문에, 홀로서기를 한 제나 또한 그를 평생 잊지 않을 것 같다.


영화의 말미, 얼을 떠나고 포마터와도 헤어진 제나는 파이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딸 루루와 함께 알록달록 보기도 아까운 파이를 만들며,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아간다. 예전에는 잘 몰랐던 느낌,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간 제나의 여정, 억압받는 여성이 자신의 힘을 찾아가는 이야기에 이제는 너무나 깊이 공감할 수 있다.



Bittersweet - 영화 바깥의 이야기


[웨이트리스]는 영화뿐 아니라 제작과 관련된 이야기도 흥미를 끄는데, 감독이자 이 영화에서 '던'으로 출연한 애드리언 셸리의 사연이 정말 안타깝기 때문이다. 투자를 받기 굉장히 어려웠던 이 작품은 그녀가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2007년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받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영화제에 갈 수 없었다. 영화제 초청이 결정되기 얼마 전, 뉴욕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 겸 숙소에서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인이 자살로 결론이 났으나, 그녀의 남편이 이를 믿지 않고 끊임없이 재수사 청원운동을 했다. 결국 얼마 후, 그녀의 작업실 건물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그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범인은 잡혔지만, 선댄스 영화제에 간 배우들과 다른 제작자들은 영화가 빛을 본 것도 보지 못한 채 떠난 그녀를 생각하며 슬퍼했다.


The Late Adrienne Shelly / 이미지출처=Fox Searchlight Pictures


영화의 화제성과 애드리언 셸리의 비극적인 이야기 때문에 선댄스에서 화제작이었던 [웨이트리스]는 폭스 서치라이트 픽쳐스에 제작비 1.5백만 달러의 3배 정도 가격인 4~5백만 달러에 판매되었고, 개봉 후에는 총 2천2백만 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린 흥행작이 되었다. 특히 케리 러셀은 '펠리시티'로 각인된 청춘물 주인공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뮤지컬 '웨이트리스' 포스터 / © 2016 WAITRESS: A NEW MUSICAL


With Sweet Music - 뮤지컬 이야기


[웨이트리스]는 영화가 개봉된 2007년 이미 뮤지컬 판권이 팔렸지만,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각색 작업에 들어간다. 사전제작 초기부터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송라이터 사라 배럴리스가 음악을 담당하는 것으로 큰 화제를 일으켰는데, 이에 대해 우려가 없진 않았다. 팝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녀의 송라이팅 실력은 이미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인정받았지만, 뮤지컬을 모두 쓴다는 건 모험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릴 적부터 합창단과 뮤지컬 극단 경험을 한 것들을 살려서 정말 아름다운 음악을 써냈다.


뮤지컬에는 또 한 사람의 든든한 지원군이 등장했다. 바로 주연인 제나 역에 캐스팅된 제시 뮬러다. 요즘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핫한 배우인 그녀는 2015년 뮤지컬 '뷰티풀'로 토니상 뮤지컬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제시 뮬러가 합류한 '웨이트리스'의 2015년 8월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이 호평을 받고, 이어서 2016년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도 비평 및 흥행 모두 성공했다. 현재 절찬리 공연중인 뮤지컬은 2016년 토니상 뮤지컬 작품상, 여우주연상, 음악상 등 주요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이번 시즌 공연하는 뮤지컬들 중에서 '해밀튼' 다음으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뮤지컬을도 아는 '해밀튼'이다.)


뮤지컬 '웨이트리스'의 특징은 크리에이티브 팀이 모두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여성이 주인공이고, 사라 배럴리스가 21세기 대표적인 여성 아티스트라는 것뿐 아니라, 대본을 쓴 제시 넬슨, 연출 다이앤 파울러스, 안무 로린 라타로 등 주요 크리에이티브 직책을 모두 여성이 맡고 있다. 이뿐 아니라 의상 디자인과 음악 연출 또한 여성 감독의 지휘 아래 움직이고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여성이 크리에이티브 팀과 크루팀 일부에서 주요 직책을 맡는 경우는 최초(!)라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DDqIxGk9pg

뮤지컬 '웨이트리스' 중 'She Used To Be Mine' (공연: 제시 뮬러)

이미 사라 배럴리스의 목소리로 뮤지컬 음악의 일부가 녹음되어 앨범으로 공개되었고, 현재 뮤지컬 캐스트들의 레코딩이 발매될 예정이다. 음악만 듣고 있어도 이 뮤지컬에 대한 기대가 샘솟는데! 비평도 정말 좋은 데다가 관객 후기도 재미있었다는 감상이 정말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라이센스 공연을 해줄 곳이 있을까...? 어느 회사든 가져와서 잘만 만들어 주시면 뮤덕이 아닌 저도 회전문을 돌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수입해 주소서ㅠㅠ

 

사라 배럴리스 'She Used To Be 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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