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봄을 좋아하는데 올봄 우리 마당은 더 예뻐 보인다. 꼭 1년 전 가지치기한 나뭇가지에서 다시 새눈이 나고 잎이 돋았고, 수국도 싱그러운 잎과 꽃대를 힘껏 올리고 있다. 제라늄은 1년 새 믿기지 않을 만큼 무성하게 자라서 탐스러운 꽃을 쉼 없이 피운다. 혹시나 해서 심은 썩은 감자에서는 잎이 무성하게 올라오고 있다. 아마 땅속에서는 강낭콩만 한 감자가 졸래졸래 크고 있을 거다. 역시 혹시나 해서 화분에 묻어 놓은 깨진 아보카도 씨앗에서도 건강한 줄기가 비죽이 나왔다. 아보카도 씨앗이 있다고 것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화분에서 뭐가 올라와서 뽑아 봤더니 깨진 아보카도 씨앗이 보였다. 다시 묻어도 줄기가 시들어서 안타까웠는데 시든 줄기에서 다시 순이 나왔다. 마당에 나와 화초에 물을 주다가 이 녀석들을 보고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 눈에는 그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서 두고 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 물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유지해주려고 손톱 밑에 까만 흙이 끼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흙을 살살 헤쳐서 꽂아 촉촉한지 말랐는지 확인하며 키우던 애들인데... 두고 가려니까 몹시 서운하다. 2주 후면 이 집에 개 한 마리를 키우는 노부부가 들어와 살게 된다. 썩은 감자에서 난 감자 잎과 잘린 가지에서 기를 쓰고 생명을 틔운 볼품없는 어린 나무를 이 노부부가 과연 사랑해 줄까? 샌디에이고에서 산호세까지는 서울에서 부산 거리의 2배 정도 되는 거리이니 화분을 가져갈 수도 없다. 요즘 물을 줄 때마다 눈물을 참기 어렵다.
이삿짐 싸는 건 본래 착잡하고 허전한 일이고 수도 없이 한 일이지만, 이번에는 마음의 기분과 무게가 그대로 느껴진다. 이제야 오래 살 집을 찾은 줄 알고 아무런 방어 없이 정을 준 집이어서 그런 걸까? 아들 물건과 사진첩, 우리 가족의 기억을 모아둔 방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오늘 겨우 장식품부터 싸기 시작했다. 장식품은 이사할 때 가장 먼저 싸는 물건이다. 당장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니까. 재작년 월에 이 집에 이사를 들어온 후 장식품을 풀어놓은 건 3개월이 지나서였다. 부엌살림하고 생필품만 풀고 지쳐버려서 장식품 박스는 풀 생각도 못하고 있던 때였다. 부근을 지나는 길이라면서 한 엄마가 커피를 사서 들렀다가 박스를 보더니 냅다 박스를 열어서 장식품을 보기 좋게 꺼내 주고 갔다. 장식품들은 그대로 집에 앉아 있다가 지난 크리스마스 장식할 때가 되어서야 자리를 조금 옮겼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나는 과감하게 버리는 편인데, 사용처가 불분명하면서도 매번 살생부를 통과해서 우리 집에 남은 물건에는 대개 버리지 못한 이유가 있다. 어떤 것은 꼭 마음에 들어서, 어떤 것은 그 물건을 고를 때 아이들과 함께 즐거웠던 기억이 진하게 남아 있어서 간직하는 것도 있다. 장식품 중에는 조금만 흠집이 생겨도 장식할 수 없는 물건이 많아서 박스에 담기 전에 랩으로 꼼꼼하게 감싸는데 마치 기억을 함께 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히 미국에 와서 첫 집을 장만하고 들여왔던 물건은 예사롭게 지나칠 수 없었다. 그때는 온 가족이 들떠서 왁자지껄 짐을 쌌고, 짐을 풀고, 물건을 고르러 다녔다. 당시 세 들어 살던 집에서 이삿짐을 싸는 동안에도 틈틈이 새 집에 가서 함께 페인트도 칠하고 마루도 깔면서 피곤할 줄도 모르고 마냥 기뻤는데...... 그런 집에서 이사 나올 때 감정에 휩싸일 틈을 주지 않으려고 얼마나 정신없이 짐을 싸서 나왔는지.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꿈만 같다.
사실을 말하면 내 이성은 해야 할 일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고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다는 것도 안다. 이삿짐 싸는 건 이사 준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니까.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에 고쳐놓아야 하는 곳이 많고, 열어놓은 비즈니스도 수습해야 하고, 고등학생 딸의 전학 준비 목록은 계속 늘어나는 것 같다. 게다가 같은 캘리포니아이면서도 교과과정이 다르니 딸이 뭘 배우고 뭘 안 배웠는지 몰라서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랩으로 예쁜 접시 칭칭 감으면서 눈물 찔끔거리다 말고, 코 흥흥 풀고 이메일 쓰고 텍스트 답장하고 멀쩡하게 전화받고. 요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