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슈 섞어서 그리기

by 글벗

갑자기 글을 많이 올리는 이유는?

지난주 금요일 밤에 딸이 코로나 검사 양성이 나왔고 일상생활이 거의 정지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까지 분명히 멀쩡했다. 단, 아침에 목은 좀 쉬어 있었다. 그건 전날 학교 간 대항으로 하는 고교 남자 배구 경기를 보러 갔다 와서 응원하느라 목청껏 소리 질러서 그렇다고 딸아이는 말했다. 오후에 목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게 좀 정도껏 놀러 다니지... 저녁을 같이 먹다가 생각하니 혹시 코로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님아, 혹시 입맛이 없지는 않니?

아니, 맛있는데

그래도 걱정되니까 넌 다이닝룸에 가서 먹어.

그날 메뉴는 불낙전골이었다. 전골냄비에서 좀 덜어서 다이닝룸으로 옮겨줬다. 따님은 발을 쾅쾅 구르면서도 그릇을 받아 들고 다이닝룸으로 가서 싹싹 비웠다. 저녁 먹자마자 코로나 테스트를 했다. 양성이다. 이런이런... 열을 재봤다. 37.4도이다. 아이는 멀쩡하다고 우기지만 격리에 돌입시켰다. 그리고 불과 한두 시간 후, 아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얼굴이 시뻘겋게 부어 보였고 눈을 잘 뜨지 못했다. 체온이 39.5도였다. 응급실에 가야 하나? 딸아이 주치의가 있지만 그 병원에 응급실은 없는데 어디로 가야 하지? 호흡은 괜찮으니까 일단 지켜보자. 애드빌을 줘도 되나? 모르겠네. 계속 체온을 체크했는데 39.5도 이상 오르지 않았다. 정신 차려 보니 우리 집은 코로나 예방책에는 열심을 냈으나 걸렸을 경우 행동 대책은 전혀 없었다. 산호세는 한 달 전만 해도 코로나 사태가 끝난 것 같아서 예방책마저 느슨해졌던 터였다. 2주 전부터 다시 증가한다는 소문이 들렸지만 우리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다. 딸은 다음 날부터 고열이 미열 수준으로 내리고 기침을 시작했다.

그리고 월요일, 남편이 몸이 안 좋다고 했다. 역시 양성이었다.


나의 일상생활은 딸아이 운전해주는 활동으로 골격이 짜인 시간표에 번역일이 굵직하게 들어가고 틈틈이 그림 그리는 시간과 집안일하는 시간이 쪼개어 들어간다. 이 일상은 지난 주 금요일 밤, 즉 토요일 부로 완전히 멈추었고 간병인 일상 모드로 바뀌었다. 아침에 기계적으로 모든 창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해서 체온과 산소포화도를 재고, 아침 준비해서 두 사람이 머무는 곳으로 배달하고, 빈 그릇 치우고, 또 점심 준비해서 배달하고, 빈 그릇 치우고, 간식 배달하고 치우고, 저녁 준비하고 배달하고 치우고. 소독하고. 한눈팔면 방에서 나와서 부엌으로 돌진하는 두 사람을 저지해야 한다. 이왕 서비스하는 김에 확실하게 하는 중이어서 예쁜 접시에 예쁘게 담아서 준다.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간편식을 완전히 피하고 매번 식단에 무척 신경 쓴다. 두 사람 모두 입맛과 식욕이 좋은 것은 다행이다. 온종일 유튜브에 매달려 있는 두 사람을 달래서 하루 두 번 마당을 걷게 한다.


그래도 일을 안 하니까 시간은 아주 많다. 브런치 서랍에 있던 글을 꺼내서 정리했고, 언젠가 그리려고 찍어두었던 사진을 참고하여 그림을 그렸다. 지난 한 달은 바빠서 스케치북에 작은 그림밖에 그릴 수 없었는데 모처럼 큰 종이를 잘라서 그렸다. 사놓고 잘 쓰지 않던 과슈 물감을 오랜만에 꺼냈다.


나는 야생화가 가득 핀 들판을 참 좋아한다. 장미나 모란도 아름답지만 야생화의 매력은 다른 분류에 속한다. 이 그림의 참고 사진은 한 달 전 모건힐에 있는 야생화 보호구역에서 찍은 사진이다. 동네 수채화협회 사생화 모임이 있는 날이었는데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다. 대개는 취소가 되는데 지도부에서 이날은 강행한다고 게시했다. 이 지역은 산호세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40분쯤 달려야 하는 모건힐이라는 도시에 있는데 거기에서 다시 산으로 꼬불꼬불 들어가서 가는 데 1시간쯤 걸린다. 망설여졌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한 상태라 무작정 나섰다. 서툰 운전으로 꼬불꼬불한 산길 운전이 쉽지는 않았지만 흐릿한 하늘 아래 형광빛으로 보이는 야생화 들판은 정말 아름다웠다. 햇빛이 쨍쨍한 날의 들판은 꽃이 활짝 피지만 나무는 목말라 보인다. 비오기 전 습기를 머금은 나무, 수줍게 움츠린 작은 꽃들이 그리는 생명력이 풍성한 장면을 나는 더 사랑한다. 그림은 뒷전이고 축축한 공기와 야생화의 숨결을 들이마시며 걸어 다니고 사진 찍기에 바빴다. 이곳저곳 다 아름다워서 그림 그릴 장소를 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돌고 있는데 빗방울이 뚝뚝 떨기 시작했다. 들판으로 깊숙이 산기슭까지 들어와서 차까지는 한참 걸어야 했기 때문에 일단 큰 나무 밑에서 비를 피했다. 잠시 비가 잦아들었을 때 차까지 갔지만 이미 온몸은 흠뻑 젖었다. 차 안에서 아쉬운 대로 물감을 꺼내 잠시 끄적이다가 다시 1시간 넘게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 그림은 그때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이다.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어서 감히 그릴 생각을 못하다가 이번에 용기를 내봤다.


그릴수록 수채화 물감이 한계가 많은 미디엄이라는 걸 느낀다. 가장 큰 한계는 짙은 색 위에 옅은 색을 표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또 종이 표면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가장 비싼 종이를 사용하더라도 어느 이상은 종이가 버티지 못한다. 그런데 끝없이 많이 피어있는 꽃을 그릴 때는 끝없이 많은 붓질이 필요하다. 어차피 종이는 2차원이니까 다른 색으로 한 겹만 칠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그런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갖가지 색의 물감이 수십 번 지나가서 완성된 색감과 여러 색을 한 번에 조합하여 그린 그림은 깊이감이 다르다. 여러 고민 끝에 이 그림은 과슈, 즉 불투명 수채화 물감과 섞어서 그리기로 했다. 먼저 수채화로 전반적인 톤으로 잡고 과슈로 풀잎을 하나하나 그리고, 다시 수채화로 톤을 잡고, 다시 과슈로 풀잎을 하나하나 그렸다.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어떤 모습의 그림이 될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구도도 사진에는 지평선이 끊어져 있지 않고 나무의 앞뒤가 잘 구분되지 않은 걸 바꿔 본 것이다. 멀리 있는 숲과 앞에 있는 숲 사이에 다른 공간을 암시해 주어서 그 사이에 길목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원근법을 깐깐하게 따진다면 두 숲 사이에 공간이 저렇게 넓을 수 없다. 그러려면 가장 앞에 있는 풀의 높이도 달라져야 하는데, 그림이 뭐 과학도 아니고. 어색하지 않게 표현된 것 같다.


다음 주에는 내가 격리 신세가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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