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굶주린 듯 그렸다. 연필로, 물감으로, 목탄, 펜, 아크릴 손에 잡히는 대로, 스케치북이나 신문용지, 수채화 용지, 캔버스 할 것 없이 그려댔다.
4월에 동네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그림 한 점을 걸게 되었는데 그 일이 계기가 되었다. 별 기대 없이 보낸 그림이 벽에 걸리게 되고, 작은 상도 하나 탔다. 1, 2, 3등이 아니라 색채상(?)이라는, 신인상, 인기상, 리얼리즘 상 등 몇몇 상 중 하나인 입선쯤 되는 상이다. 그 작은 상에 나는 날아갈 듯 기뻤다. 동네방네 자랑도 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으로도 소중하고 기쁘지만 전문가에게 인정을 받으니까 자신감이 생겼다. 여기에서 소정의 상금을 받았고 그림을 부탁받아 그려서 사례비를 받았는데 이 돈으로 스케치북과 미술재료를 더 마련했다. 재료비에 절절매는 형편은 아니지만 기분이 사뭇 다르다.
4월에 그린 연필 드로잉과 수채화 중에서 하나씩 밑에 올렸다. 연필로 그린 악어는 커뮤니티 칼리지 드로잉 중급반 온라인 코스 숙제로 그린 그림이다. 제목은 악어가 다쳤을 때라고 붙였다. 사진은 작게 나왔지만 14x17인치 종이에 그린 제법 큰 그림이다. 다친 악어로 변신시킬 수 있는 지친 악어 사진을 찾는 일부터가 난관이었고, 하얀 종이 배경에 하얀 꽃과 솜털을 표현하는 일도 쉽지 않아서 수십 번을 지우고 고쳐야 했다. 사진 찍기도 어려웠다. 몇 번 찍었지만 그림 원본에 그린 수백 개의 섬세한 연필 자국은 나오지 않았다. 레몬 그림은 이번 달에 여러 장 그렸는데 그중에 이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든다.
입만 열면 그림 얘기가 튀어나올까 봐 조심하느라 답답했었다. 나는 갈대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이발사처럼 브런치에서 그림 얘기를 실컷 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