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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May 25. 2022

이해할 수 없는 미국, 스냅샷 몇 장면

2020-2022

#1

한국 뉴스에서도 보도되었겠지만 오늘 2022년 5월 24일, 텍사스 주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또 발생했다. 뉴욕 버팔로에서 총격 사격이 발생한지 열흘,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스무 명의 아이들이 죽은 지 십 년 만이다. 오늘 사건의 총기 난사범은 열여덟 살 청소년이었으며 현장에서 경찰에게 사살되었다. 아직 자세한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듯 하지만 범인은 먼저 인근에 있는 집에서 자기 할머니를 죽인 후 군사용 총기 두 자루를 들고 학교로 진입하여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총기를 난사하여 2-4학년 사이의 어린이 열여섯 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스무 명의 희생자를 냈다. 위중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할 때 최종 희생자는 스무 명을 넘을 수도 있다. 사고 직후 학부모들은 학교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지 못하고 인근 시민회관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뉴스에는 자기 아이의 생사를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는 학부모의 얼굴이 방영되었다.


사고가 난 지역은 텍사스 주 유벨디라는 인구 1만 6천 명 규모의 소도시 주거 지구이다. 텍사스는 전통적으로 보수당이 주도하는 지역이지만 총기 문제는 보수당 주도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영리기관인 총기 폭력 자료 보관소(Gun Violence Archive, https://www.gunviolencearchive.org/)에 의하면 2013년 이후 총기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총 17,116명이다. 전쟁 사상자 숫자가 아니며, 부상을 제외한 사망자만 포함한 숫자이다. 모든 각급 학교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화생방 훈련을 하듯이 총기 난사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목숨을 보존해야 하는지 훈련을 한다. 몇 년 전 학교에 배포하는 총기 난사 대비 교육 자료를 번역한 적이 있다. 일단 그 무시무시한 자료의 독자가 어린 학생이라는 사실을 대상으로 친절하게 쓰여 있어서 섬뜩했고, 또 교육 자료에 나오는 여러 단어들이 우리말로는 접해본 적이 없는 단어들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아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전쟁 중 교전 상태가 아닐 때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단어가 필요한 곳은 없을 것이다. 이 교육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은 이 자료가 우리 한인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지역 학교에도 배포된다는 뜻이다. 미국 동부와 서부, 북부와 남부, 부촌이나 서민 거주 지구를 아울러서 총기 난사에서 자유로운 지역은 어느 곳도 없다. 딸이 다니던 학교에서도 물론 그런 훈련을 했으며 총격 위협으로 수업 시간 중 학교가 폐쇄되어 하교 시간이 늦어진 적도 있다. 우리가 살던 지역은 우범지역이 아니었으며 평균 학력과 소득이 중간을 훨씬 넘는 중산층 거주지였다.


#2

요즘 미국의 분유 문제는 심각하다. 지역사회 별로 정보를 교환하는 넥스트 도어(NextDoor.com)에는 분유를 구하기 어려워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들의 글이 가득하다. 분유를 희석해서 먹이거나 마음대로 조제해서 먹이면 안 된다는 경고 자료와 함께 분유를 구할 수 있는 출처에 대한 정보까지 오갔다. 병원에 전화해서 샘플 분유 여유분이 있는지 물어보기, 모유 은행에 연락하기, 각 분유 제조사 핫라인까지 소개되어 있다. 아래는 일주일 전쯤 집 주변의 한 약국에 갔다가 기가 막혀서 찍은 사진이다. 분유 선반이 텅텅 빈 정도가 아니라 규제 물질을 판매하도록 자물쇠가 달린 유리 캐비닛 안에 보관되어 있다. 물론 분유를 이 선반에 배정할 때만 해도 선반이 다 차있었던 듯, 세 칸 중 한 칸만 분유가 좀 남아있고 나머지 두 칸은 썰렁하다. 이곳은 시골이나 소도시가 아니라 실리콘밸리 한복판에 있는 주택가이며, 이 약국만 이런 것은 아니고 주변 모든 약국이 비슷한 상황이다.



문제는 예견되어 있었다. 미국 분유 시장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시밀락이 지난 2월 분유 제조 공정 상 감염 문제로 공장 폐쇄에 들어간 것이 발단이었다. 분유처럼 안정적인 수요 예측이 가능한 품목에 과잉 재고가 있을 리 없고 코로나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예민한 부모들이 분유 사재기를 한 것이다. 이런 예측 가능한 사태를 정부가 막지 못한 덕에 젊은 부모들이 애를 태우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정부에서는 일단 모유 수유를 강화하라고 하지만 끊었던 모유가 갑자기 분비되지는 않고 공공 행정이란 막무가내로 서두를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므로 사태가 쉽게 진정될 것 같지는 않다.


#3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품목으로 가솔린과 육류가 대표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솔린은 캘리포니아 기준으로 1년 전까지 계절 별로 등락이 있었지만 갤런 당 $2~4를 유지했다. 캘리포니아는 환경 관련 세금 등이 붙어서 다소 비싼 편이고 다른 지역은 좀 더 저렴하다. 오랫동안 상승 압력을 견디던 기름값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갤런 당 $6을 넘겼다. 이것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 상승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기보다 정부가 기름값 인상을 허용하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다. 미국에서 자동차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주거지와 상업지구는 모든 성인에게 차가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내 히스패닉들을 위한 비영리 기관 중에 이민 여성들에게 운전을 가르치고 자동차 구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을 목격하는 데 그만큼 자동차는 생계에 직결되는 수단이다. 중고차 구입은 더욱 참혹한 수준이어서 3만 불 전후하던 소형 차량의 중고차 가격이 4만 불에 거래되기도 한다. 생계가 다급한 사람들은 새 차가 나오기를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곳 실리콘밸리에서도 코스트코에 가면 기름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코스트코에서 주유하기 위해 끝없이 늘어선 차량들과 나오자마자 동이 나는 $5 짜리 통닭을 사기 위해 달리는 사람들, 한 번에 한 판씩만 파는 $10짜리 피자를 가족이 돌아가며 사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소고기는 지난 10년 간 가격이 꾸준히 올랐다. 2008년도에 일반 등심 정도 되는 부위는 파운드 당 $5 전후에 구입하다가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기 전에는 $8 수준이던 것이, 2020년에는 한대 $25까지 치솟았고 지금은 다소 진정되어 등락은 있지만 $12 수준이다.


요즘 미국에서 자신의 혈액 내 혈장을 판매하여 생활비를 마련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뉴스는 놀랍지 않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혈장 수출국이라고 한다.


#4

최근 일은 아니지만 생각난 김에 덧붙이는 스냅 샷 하나.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에 블로그에 썼던 내용이다.  쿨해 보이는 미국인들의 애국심이 얼마나 맹목적인지 깨닫게 된 일이 있었다. 코로나 발발 무렵이었는데 전투기가 우리 동네 위를 며칠 동안 밤낮없이 날아다녔다. 심지어 자정을 넘어까지 땅을 뒤흔드는 소음을 내며 주택가 바로 위를 날아다녔다. 창문을 다 닫아놓아도 TV 소리도 제대로 안 들릴 지경이었고, 우리 집 강아지 두 마리도 전투기 소리가 날 때마다 짖어댔다. 요약하면, 시끄러워 미칠 것 같았다. 화도 나고 궁금하기도 하여 NextDoor 앱을 열어보았다. 제트기 소음에 대해 벌써 두세 개의 글이 올라오고 그중 하나에는 200개가 넘는 답글이 달려있었다. 처음 올라온 글은 간단했다.


지금 제트기 소리 들리세요?
제가 지금 불평하는 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무슨 일 있나요?


나는 그 답글을 읽다가 기가 막혀서 호흡곤란이 올 뻔했다.


데이브) 언제나 그렇지만 미국에 사는 게 얼마나 행운이지 몰라요. 다른 나라에서 이런 소리가 났으면 죽음을 알리는 소리였을 거예요.
줄리아) 미라마 공군기지는 카멜 밸리(우리 동네)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어요. 우리에게 조금 불편을 주더라도 원래 하던 훈련은 계속할 거예요. 다행히 어젯밤 비행 훈련은 예외에 해당한 거 같네요.
애미) 이건 자유의 소리지요! 자기 목숨을 걸고 우리를 지켜주는 그분들에게 감사드려요. (다음 문장은 잘렸지만 대략 이런 내용) 그분들이 있어서 우리가 안락한 생활을 즐기는 거니까 가끔 있는 조그만 불편쯤은 참도록 해요.
데비) 자유의 소리!
제니스) 전투기가 매일 날아다니던 시절이 그립군요.
매리) 오늘 밤 전투기가 계속 날아다니네요! 우리를 보호하는 소리인데 뭐가 무서워요? 이 소리가 안 들려야 무섭죠.
발레리) 그 자유의 소리가 좀 시끄럽기는 하죠. 소리가 날 때마다 한 잔씩 마셔요. 밤이 무르익으면 다 행복해질 테니까.


참고로, 카멜 밸리는 샌디에이고 시에서 서북 해안 쪽에 위치했으며, 공군 기지와 차로 10분 거리 정도 떨어졌다. 인구는 약 4만 2천 명 정도 되니까 서울시 강동구보다 약간 작은 동네이다. 한편, 샌디에이고는 보통 관광지이자 국경 도시로 유명하지만 샌디에이고의 가장 흔한 직업은 군인이고 외곽을 제외한 시내만 해도 공군기지 3곳과 해군기지 3곳이 있다. 이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하룻밤에 달린 2백 개의 댓글 중에 미군 만만세를 외치며 제트기 소음에 불평하는 사람을 꾸짖는 댓글이 대부분이라니, 집단 밀덕 증후군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많은 댓글에는 "나라를 지킨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라는 표현이 많았다. 지킨다는 것은 쳐들어 오는 적군이 있어야 지키는 것인데 미국에 누가 쳐들어 온 적이 있었나? 또는 "우리를 위해" 싸운다고 생각하는데 그 "우리"가 누구일까? 전투기를 만들어 파는 산업에 관련된 사람들? 남의 나라 일에 끼어들어 명분 없는 전쟁에 귀한 젊은이들을 내보낼 때는 철저한 세뇌가 필요했었다고 이해하기로 했다.


공군기지에서는 F-35 제트기가 종전의 F-18 전투기보다 이착륙 시 소음이 크고, 신입 조종사에게 야간에 항공모함에 제트기를 착륙시키는 훈련을 시키느라 평상시보다 늦은 시간까지 훈련했다고 해명했다. 야간 훈련을 자정이 넘어서 해야 했는지, 항공모함은 바다에 있는데 주택가로 낮게 비행할 필요가 있었는지 등등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5

이곳에 사는 이민자들은 고국의 이름이 뉴스에 오르내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코로나가 시작할 때는 동네 중국인들이 나서서 구하기 어려운 마스크를 자비로 대량 구입하여 동네 약국 앞에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다. 이 행사를 안내하는 포스트를 본 보수적인 타인종 주민들은 마스크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데 얼마나 비효과적인지 터무니없는 데이터를 들이대며 중국인 이웃을 비웃었다. 또 당시 미국에는 병원의 의료진조차 마스크를 못 구하는 상황이었으니 병원에나 기부하라면서 비아냥대었다.


요즘은 러시아 커뮤니티에서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해 모금을 하러 나선 행사들을 종종 본다. 여기에 사는 러시아 인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남의 나라에 이민자로 산다는 게 이유이다. 빨강이 빨강 나라에 살 때는 자신이 빨강인 줄 모르다가 빨강이 노랑 나라로 가면 자신이 빨강임을 보게 되는 거다.


정치적 양극화, 빈부격차 심화, 과도한 인플레이션 등 케케묵은 문제들이 목까지 차오른 미국에서 이민자들은 마음 한구석에 출신국의 정체성을 조심스럽게 품고 조금은 더 마음을 졸이면서 그렇게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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