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민낯
지난 봄 학기에 커뮤니티 칼리지 중급 드로잉 수업 시간에 제출한 과제물이다. 이전 과제로 아티스트 트레이딩 카드(Artist Trading Cards)라는 작업을 하였다. 이 과제가 나에게는 매우 생소했는데, 미국에서 자란 젊은 학생들은 어릴 때 많이 했던 프로젝트라고 했다. 2.5x3.5인치 크기 카드에 자신의 예술적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도록 다양한 미디엄을 이용하여 장식하는 작업이며 카드 교환 행사가 매년 열리고 아티스트들이 행사에 실제 참여하여 카드를 교환한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로 교환 행사는 잠시 중단된 상황이라고 한다. 아래는 구글에서 <Artist Trading Cards>라는 키워드로 이미지 검색을 했을 때 나오는 이미지들이다.
아티스트 트레이딩 카드를 제작하는 데 재료나 기법의 제한은 없다. 단 어떻게 결과물에 도달하였는지 재료와 과정을 정직하게 밝혀야 하고 크기는 정확히 지켜야 한다. 이 생소한 과제는 사진이나 실물을 보고 그리는 그림 밖으로 나가서 다양한 주제와 기법을 탐색하고 확산하는 기회가 되었다. 아래 첫 줄은 관심 있었던 "달(Moon)"을 모티브로 "달 교체하기", "달 낚시하기", "나뭇가지에 걸린 달", "손톱 깎을 때마다 자라나는 달", "조각난 달"을 탐색한 작품이고, 둘째 줄은 창살을 통해 보는 여러 사물, 풍경, 내면의 이미지를 탐색해 본 것이며, 마지막 줄은 전에 그린 수채를 그냥 트레이딩 카드 크기로 잘라낸 것이다. 내가 그린 수채화에 가위질을 하여 조각난 그림을 보자 날카로운 슬픔이 느껴져 카드 구석에 "Yet Liked"라는 말을 적어 보았다. 지금은 보관하고 싶은 그림으로 선택 받지 못하여 잘려나갔지만 언젠가는 이 잘려나간 그림들이 사랑받는 그림의 모티브가 되라는 소망을 담은 작은 애정표시였다.
학기말 프로젝트는 재료, 기법, 크기의 제한 없이 그림이면 되었다. 아티스트 트레이딩 카드로 새로운 시도를 해 본 후, 내친 김에 내 감정에 알량한 울타리를 두르지 않은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내가 겪은 일, 지금의 나의 쌩얼을 표현해 보기로 무모한 용기를 내었다.
그림의 아이디어
3년 반 전, 아들을 잃었을 때 나의 세상이 계속 존재하리라는 상상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존재하며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결코 내 세상에 뚫린 구멍을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천명하고자 했다. 내 세상에 뚫린 구멍은 종이 위에 그려진 구멍이 아닌 실제로 뻥 뚫린 구멍이니까. 한편 생살을 도려낸, 마음이 떨어져나간 아픔이지만 가능한 담담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실제로 담담히 살아가고 있으므로. 그러면 뻥 뚫린 구멍을 남겨놓고 사라진 달은 어디 갔을까? 달은 내 세상 이곳저곳에서 여리고 섬세한 불빛을 발산하고 있다. 그 작은 불빛을 어디에서나 볼 것 같다.
미디엄과 과정
14x17인치(약 35x43cm) 브리스톨 종이에 크레파스와 수채화를 주 미디엄으로 하여 그렸다. 여전히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동화같은 세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잃어버린 달은 종이를 뜯어내어 표현했다. 즉, 종이에는 실제로 구멍이 있어서 그 뒤에 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저 구멍 뒤에는 내가 그림을 그릴 때 대고 그리는 하얀 판자가 보인다. 구멍이 얼마나 확실한 현실인가에 대한 나의 인정이며 저 구멍 뒤에 무엇이나 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나의 아찔한 인식이다. 끝으로 부서진 달은 매니큐어 위에 뿌리는 반짝이로 칠했다. 그 어떤 소재, 그 어떤 색 위에서도 반짝이도록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