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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Nov 24. 2022

이야기로 변한 그림

수채 물감으로 세밀화를 그려보았다. 자연을 소재로 정하고 나자 자주 걷는 스티븐스 크릭 트레일이 떠올랐다. 그동안 찍은 사진을 넘기면서 아이디어를 모았다. 저장 및 검색 기능이 부실한 머릿속 대신 컴퓨터가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바닥에 수북이 쌓인 각종 낙엽, 거대한 삼나무 숲, 바닥에 쓰러져서 또 하나의 생태 공간으로 태어난 나무,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면 다른 구멍에서도 머리를 쏙쏙 내미는 땅다람쥐들, 언젠가 딸이 도로에서 수풀로 옮겨주었던 아기 도룡뇽 등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사람의 눈을 피해 야생 생물들의 잔치가 벌어질 것 같은 공간이 떠올랐다. 먼저 주요 등장 인물을 캐스팅하여 도화지 위에 배치한 뒤 머릿속에 있던 공간을 완성해갔다. 등장 인물을 배치하면서 이야기가 자꾸 생겨났다. 


이 다람쥐들이 뭘 보고 있다고 할까?

방금 떨어진 도토리 송이가 좋겠어.

그 밑에 도룡뇽 한 마리를 숨겨둬야지.

도룡뇽이 외출 나왔다가 갑자기 떨어진 도토리에 놀라서 꼼짝 못하게 된 거야.

다람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이겠지.

도룡뇽 때문에 도토리가 움직일 테니까.

둘러선 다람쥐들 때문에 꼼짝 못하게 된 도룡뇽을 친구들이 구하려 왔다고 해야지.

쓰러진 나무 밑에는 겁쟁이 도룡뇽 한 마리가 있고, 다람쥐 근처까지 전진한 용감한 도룡뇽도 있고.


며칠을 꼬박 그린 끝에 마침내 완성했다. 

<노던 캘리포니아의 숲속> 22 x 18, 수채화, BFK Rives 판화용지

아마 윤여림 작가님의 <상상하는 어른>(호호아)을 재미있게 읽은 탓이 큰 것 같다. 윤여림 작가님은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 읽는 동안 그 풍부한 상상력의 DNA를 부러워했으며, 하루아침에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배우게 되었다. 그런 열망이 내 마음에도 슬며시 전염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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