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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Dec 24. 2022

아름다운 것의 가격

아름다워서 내 눈길을 잡고 내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에는 대개 가격이 없다. 플로리스트가 만들어 놓은 꽃다발의 아름다움에 황홀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길가에 핀 민들레 꽃이나 나뭇잎에 맺힌 이슬도 내 시선을 오래 붙잡아 둘 만큼 아름답다. 풍경도 그렇다. 돈을 많이 들여서 떠난 여행에서 보는 광경에만 감탄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집 주위를 걷거나 운전할 때 보이는 풍경도 내 마음을 뛰게 하니까. 어디 아름다운 것뿐일까. 내 삶의 수많은 것들을 나는 거저 누리며 산다. 햇빛, 구름, 비, 생명을 품고 자라게 하는 흙, 거기서 자라는 생명 그리고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얻을 만큼 나는 노력을 하거나 값을 치른 적이 없다. 그림을 시작한 뒤 좋은 것, 아름다운 것과 내 삶을 붙잡아 주는 것을 더 또렷이 느끼고 알아보게 되었으며 그 사실에 더욱 감사하게 되었다. 그 이면에 약간의 단점이 있다면 나의 능력이 이런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따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꼭 일 년 전이다. 집에서 가까운 산책길에서 잎이 클로버와 닮았지만 노란 꽃이 피는 잡초 더미를 만났다. 작은 잎이 소담스럽게 모여서 보여주는 생명의 모습이 얼마나 싱그럽던지 그 모습을 꼭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수채화 초보자 실력으로는 몇 번을 그려도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 차게 표현해낼 수 없었다. 완성해서 사진을 찍어둔 것만 다섯 장이니까 정말 많은 스케치를 해보았다. 사진을 그대로 그리려고 노력해도, 사진을 떠나서 아름답게 그리려고 노력해도, 자연스럽게 그리려고 노력해도 그림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사실과 달랐으며, 도대체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기에 내 그림에 표현되지 않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냥 내 실력으로는 그릴 수 없는 장면이라고, 이 아름다움을 내 손으로 화폭에 담는 걸 거의 포기했었다.  

그리고 며칠 ,  식물과  마주쳤다. 나의 그림에 담기기 거부하는   만났구나.  번만  카메라에 담아도 되겠니? 다시  장의 스케치를  끝에 이번에는 내가 전하고 싶은 장면과 비슷하게 그린  같다. 클로버를 닮은 작은 잎들이 아름답지만 잎의 모양을 정확히 그리는 것도 정답이 아니었다.  잎은 자유로운 느낌이어야 했다. 자유로운 잎들이 어떤 부분은  촘촘하게 어떤 부분은  느슨하게 모여있어야 했다. 꽃을 올린 꽃대는 꼿꼿이 고개를 들고 있어야 했다. 꼿꼿하다고 해서 똑바로 서있으면  되었던 거다. 꼿꼿하지만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솟아 있어야 했다. 잎과 꽃의 색은 애기똥풀을 닮았고, 잎의 모양은 클로버를 닮은  아름다운 식물의 이름이 뭔지 궁금하다. 햇빛과 그늘이 얼룩덜룩  곳에 피어 있어서 그늘을 좋아하는지, 햇빛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래 두 그림도 사람이 기르지 않는 자연의 모습이다. 왼쪽은 패션 플라워(Passion Flower)인데 한국에서는 시계꽃이라고 불린다. 작년에 산호세에 이사 와서 동네에서 처음 보았다. 꽃잎이 굉장히 화려하고 노란 열매를 맺는데 열매는 달착지근한 맛이 난다. 야생성이 강한 식물이어서 잘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일부러 조성해주기는 어렵다. 대신 적당한 장소에 씨가 떨어져서 번식하기 시작하면 돌보지 않아도 잘 죽지 않는다. 꽃이나 열매를 보려면 몇 년이 걸린다. 작년에 딸이 주워온 열매를 심었더니 거의 모든 씨앗에서 싹이 났다. 화단에 옮겨 심어서 자라고는 있지만 적당한 자리가 아니었는지 덩굴만 길게 웃자랄 뿐 잎도 작고 줄기도 가늘다.

오른쪽 그림어디에서나   있는 담쟁이넝쿨이다. 사람이 보건 말건 기어오르고, 늙은 잎이 마르면   잎이 나와 계속 기어오르는 담쟁이넝쿨.


공짜로 누리는 아름다움을 공짜로 화폭에 담을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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