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넷째 주 개화 일기
명색이 꽃을 피우는 화초라면 5월에는 꽃이 안 피고 배길 수 없다. 꽃을 피우는 줄 몰랐던 식물까지 꽃을 탐스럽게 피워 마당이 울긋불긋해졌다. 양지에 있는 장미는 일찌감치 꽃이 피었다 지고 옆에 꽃대가 또 올라오는데, 그늘에 있는 장미는 아직 꽃망울조차 맺지 않는다. 자리를 움직일 수 없는 식물에게는 목을 잘 잡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양지에 있어도 여름에 개화하는 식물은 꽃을 피울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봄에 핀 꽃들이 아름다움을 다할 때 뒤늦게 마당에 채색을 입혀줄 녀석들이다.
제라늄은 곰팡이와 병충해로 땅에서 2센티 정도만 남기고 바싹 잘랐었다. 크는 게 신통치 않았고 아직 한 마디 정도밖에 자라지 않았는데 벌써 꽃봉오리가 맺혔다. 이제 살짝 꽃잎이 보이는데 하얀색이다. 생명력이 강한 제라늄과 청초한 하얀 꽃은 뭔가 안 어울리는 궁합이지만 그래서 더 특별할 거라고, 은근 기대가 된다. 게다가 이제 잎이 한 마디 올라온 어린 난쟁이 제라늄에서 꽃이 피다니 살기 정말 어려웠다는 이야기인가? 예전에 아들이 그랬다.
"엄마 꽃은 언제 많이 피는지 알아요?"
- 언제 많이 피는데?
"꽃은 환경이 어려울 때 많이 피는 거래요. 꽃은 Reproduction Organ(생식기관)이잖아요. 그러니까 영양도 조금 불충분하고, 물도 조금 불충분할 때 죽기 전에 번식을 많이 하려고 더 많이 핀대요."
비가 일정 강수량이 내려야 사막에 꽃이 피는 것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지만 나름 일리는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제라늄을 보니 또 생각이 나네.
이 장미 그루는 벌써 두 번째 꽃대를 올린다. 한 꽃대에서 봉오리가 서너 개씩 맺혀서 메두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꺼번에 꽃이 피면 무거워서 가지가 휠 것 같다. 이른 봄에 가지를 더 짧게 쳐주었어야 했는데 소심하게 조금만 잘라주었더니 이렇게 싱겁게 웃자라버렸다. 내년 봄에는 확 쳐주어서 더 실하게 자라도록 해 줘야겠다. 이 장미나무에서 피는 꽃은 모란만큼 큼직하고 상스러울 정도로 붉지만 봉오리는 참 새침해 보인다. 빨간 꽃잎을 감추고 다리를 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다 보인다, 다 보여.
물 먹는 하마 수국. 난 이 수국 꽃이 참 좋다. 오글오글한 봉오리가 올라오나 보다 했더니 어느새 꽃망울이 열려 탐스러운 수국 송이들이 되었다. 한송이에 여러 개의 작은 꽃이 피는 수국은 봉오리들이 한꺼번에 벌어지지 않고 얼마의 기간 동안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다. 그래서 처음에 봉오리가 열릴 때는 듬성듬성 털이 난 동물처럼 볼품이 없어 보인다. 그러다가 봉오리가 다 벌어지면 흔히 알고 있는 찐빵처럼 동그란 모양의 수국이 된다.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는 죽은 나무처럼 가지만 있고, 이른 봄에 뾰족한 순을 틔우고, 잎에 무성해지고, 오글오글한 봉오리를 피우고, 늦봄에서 늦가을까지 숨 가쁘게 꽃을 피운 뒤에는 다시 잎을 떨구고 휴식에 들어가서 사계절 내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수국. 물이 모자라면 바로 잎을 축 늘어뜨리고 목마르다고 아우성친다. 이제 7년을 함께했으니 수국의 말을 알아듣고 기분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