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당일기

뿌리에게 흙을 주며

엉터리 꺽꽂이 일지

by 글벗

3월에 이 나무 가지를 쳐냈을 때는 걱정을 많이 했다. 가지치기하고 서너 주 동안 나무가 죽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충격을 받아 갑자기 움츠려 든 나무도, 보송보송 눈을 내다가 잘려나간 가지들도 모두 안타까웠다. 그래도 봄내음 물씬 나는 모양이 예쁘기도 하여 마당에 널브러진 가지들을 모아 세탁 바구니에 물을 받아 꽂아두었었다.

다행히 가지치기 이후 비가 내리고 나무는 예전의 생명력을 회복했다. 요즘은 가지를 쳐낸 자리에서 잔가지가 너무 많이 올라와 다시 잔가지를 제거해야 할 정도이다.


잘려나간 가지들의 생명력도 대단했다. 솜방울 모양의 눈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지에서 초록 잎이 하나둘 나오더니 어느새 버킷 가득 뿌리를 내고 무성한 잎을 키웠다. 물에서는 뿌리가 쉬이 무르고 영양도 공급하기 어려워서 땅에 옮겨 심던가 그냥 없애던가 해야 했다. 넓지 않은 마당에는 이미 다른 화초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아직 싱싱한 푸른 잎을 달고 있는 가지들을 버리는 것도, 뿌리를 무성히 내고 살려고 하는 가지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다른 집에 분양을 보내고 싶었지만 락다운 기간에 그 일도 쉽지가 않아 결국 화분에 심기로 했다.



남편이 홈디포에 줄을 서고 들어가서 화분과 흙을 사다 주었다. 사실 절화용 가지로 묘목을 기를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일단 절화용으로 길게 자른 나뭇가지는 꺽꽂이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꺽꽂로 묘목을 기르려면 나뭇가지를 훨씬 짧게 잘라서 잎이 나기 전에, 아니면 잎을 떼어내고 심어야 한다. 가지에서 흙에 묻히는 눈에서는 뿌리가 나오고 흙 위에 있는 눈에서는 잎이 나는데, 가지가 길고 이미 잎이 나있으면 어린 뿌리의 힘으로는 지탱하기 어렵다. 가지 양쪽 끝을 잘라줄까 잠깐 고민하다가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 하나하나를 묘목으로 기를 목적도 아니고 그럴 자리도 없으니까.


화분에 흙을 좀 넣고 나뭇가지를 뭉텅이로 꽂은 뒤 흙삽으로 흙을 가지 사이사이에 채워 넣었다. 잔뿌리가 다칠까 봐 나중에는 손으로 채웠더니 손톱 밑에 흙이 까맣게 끼었다. 윤재가 있을 때는 매년 봄 흙갈이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커다란 함지박 같은 팬에 피트모스 흙, 싸구려 흙, 펄라이트, 말똥 등을 쏟아붓고 삽으로 섞은 뒤 덩어리는 손으로 비벼서 부드럽게 만들곤 했다.

"윤재야, 흙 더럽지 않아? 장갑 끼고 해"

"뭐가 더러워요. 손 씻으면 되지"


그렇게 정성 들여 준비한 흙에 별걸 다 길렀었는데. 마지막으로 기른 바질은 꽃이 지고 꽃대가 마를 때까지 두었다가 그 집을 팔 때 나뭇가지처럼 바싹 마른 꽃대를 잘라내어 꽃병에 꽂았는데 2년이 흐름 지금도 아직 희미한 바질 냄새가 남아있다. 맴도는 생각에 젖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모두 화분에 심었다. 물에서 붙잡을 것 없이 흐느적대던 뿌리들은 이제 보드랍게 자기를 감싸줄 흙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물을 듬뿍 주었다. 윤재는 옮겨심기를 마치면 화분 하나 당 물 4갤런을 버킷에 길어서 부었었다. 나는 4갤런을 부을 힘은 없고 그냥 화분 밑으로 물이 충분히 흐른다 싶을 만큼 물을 주었다. 이왕 물을 주는 김에 다른 화초들에게도 물을 주었다. 물이 부족해서 갈색 줄기가 가늘어지고 잎이 작아지는 민트에도, 잎 가장자리가 늘어져 보이는 다른 화초들에게도 골고루 물을 주었다.


화창한 5월 햇살 아래 물을 실컷 마신 마당이 활기차 보인다.



http://m.blog.naver.com/wordpal/221859586376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