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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Jul 11. 2020

마음이 술렁이고 지친 날

점심 먹고 한창 번역 중인데 한 에이전시에서 이메일이 왔다.


"마감 시간이 지났는데 언제 보낼 예정인지 알려줄래요?"


앗, 그걸 내가 안 보냈나? 어젯밤에 보내려다가 내일 아침 맑은 눈으로 한 번 더 보고 보내야지 했던 게 기억났다. 큰 프로젝트 뒤에 급하게 추가된 한 장짜리 일이었다.

'고작 한장 짜리에 무슨 틀린 게 있으려고. 에이, 늦었는데 그냥 보내지 뭐'

얼른 보내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아까 하던 다른 프로젝트로 돌아갔다. 잠시 후 이메일 공지가 또 떴다.  

뭐 틀린 게 있나?


그랬다. 웹주소 부분이 이상하다고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부분에서 큼지막한 실수가 있었는데 모르고 보낸 게 눈에 확 띄었다. 고쳐서 보냈다. 그리고 또, 그리고 또... 한국어를 모르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모르는 에러도 두세 군데가 있었다. 수정하면 자취가 남는다. 에이전시도, 클라이언트도 우리말을 모르는 사람들이니 슬쩍 넘어갈까 했지만 그 문서를 읽는 사람들은 알겠지. 모두 고쳐서 보냈다. 수정 자취가 남으니 내 번역 신뢰성은 곤두박질치겠지.


몇 줄 안 되는 한 장 짜리 문서를 몇 번을 고쳐서 보내고 기운이 쭉 빠졌다. 타고난 성격이 꼼꼼하지 않아 번역 납품 전에는 잔뜩 긴장하고 여러 번 보는데 오늘은 왜 그랬나 모르겠다.


어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박원순 시장 자살은 나를 하루종일 괴롭혔다. 너무 화가 났는데 화를 낼 수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뉴스만 검색했다. 캘리포니아 시간으로 저녁쯤 유서가 공개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는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가족과 지지자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을 여직원에게는 한마디 없다니. 잘못을 인정하는 죽음이 아니라 인정을 회피하는 죽음이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 때도 난 화가 많이 났다. 살아서 밝혀야지 그런 무책임한 일이 어디있냐고.


어제의 분노는 온갖 잡다한 다른 감정에 버무려졌다. 아들을 향해야 하는 분노였다.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 한 구석에 화난 마음도 있다. 물론 모든 자살이 같지 않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갔냐고 슬프고 가슴 아프다. 그런데 난 세상을 등진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삶을 꾸역꾸역 사는데 삶에서 도망친 그들이 얄미운 걸까? 모르겠다.


어제 하루종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한 일은 엉망진창이었다는 걸 오늘 알았다. 이제 롤러코스에서 내려온 것  같은데 코스 중간에 억지로 뛰어내렸나 보다. 아직도 마음이 술렁대고 기운이 쭉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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