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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Aug 04. 2020

이 시국에 자동차 여행

샌디에이고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3월부터 계속된 단조로운 생활이 지겹기도 하고 이대로 여름을 보내기도 아쉬워서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이 시국에 조금 무모하지만 콧바람을 쐬고 오기로 했다. 여행의 콘셉트는 로드 트립(Road Trip), 즉 자동차를 몰고 오래 달리는 것이다. 목적지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중간에 바뀌어도 상관없다. 자동차로 하염없이 달릴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자동차 여행지가 될 수 있다. 단, 샌디에이고가 남쪽으로는 멕시코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태평양에 접한 도시이어서 동쪽으로 가거나 북쪽으로 가는 방향만 있다. 내륙 쪽인 동쪽으로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바이러스뿐 아니라 사회 정치적으로도 불안한 시국임을 감안하여 조금이라도 익숙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샌프란시스코로 가보자고 생각했다. 베이 지역에 살 때 여러 번 가 보았지만 다시 보고 싶은, 그리운 곳이기도 하다.


딸은 자동차 여행을 자기도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셋이서 여행하면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듯, 친구를 데리고 가자고 했다.

- 딸아, 캘리포니아 확진자 수가 50만 명을 넘은 시국에 누가 선뜻 아이를 보내겠니?

- 알아볼게.

고맙게도 딸 친구 중 한 명이 부모님의 허락을 구해왔다. 그리하여 말만 나오고 사라질 뻔한 여행 이야기는 샌프란시스코 여행 계획으로 승격했고, 지난 금요일 오후 틴 에이저 두 명을 모시고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했다. 말이 여행 계획이지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에는 구글에 나오는 상점 영업시간 정보도 정확하지 않고, 예고 없이 문 닫은 곳도 많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붐비거나 바이러스 관련 대책을 세워놓지 않은 곳은 들어가지 않을 예정이므로 별로 세울 계획도 없었다. 출발 시점까지 정해진 것은 5번 고속도로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방향으로 간다, 예약해둔 호텔에서 잔다, 문 연 곳을 찾아서 밥을 먹는다, 앞으로 문 연 곳이 없을까 봐 문 연 곳이 나오면 먹을 것을 좀 넉넉히 사둔다, 다시 샌디에이고로 내려온다, 이것이 전부였다.


남가주와 북가주를 연결하는 도로는 5번 고속도로, 101번 고속도로, 해안 도로가 있다. 해안 도로와 101번 고속도로는 몬트레이, 페블 비치, 빅써(Big Sur) 등 미국 서해안의 절경을 두루 거치는 대신 2~3시간 정도 더 소요되며 길이 꼬불꼬불하여 운전이 서툴거나 멀미가 심한 사람에게는 어려운 길이다. 5번 고속도로는 캘리포니아 내륙을 가로지르는 직선에 가까운 도로이므로 샌디에이고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가장 빨리 갈 수 있다. 효율적인 이동을 목적으로 건설된 도로를 달리면 좋은 점도 있지만, 화물 운송량이 많아서 트레일러들이 종종 시야를 가리고, 창밖으로는 마른 풀이 덮인 넓은 구릉과 구릉 위에서 풀 듣는 소떼, 끝이 없는 농경지만 보인다는 단점도 있다.


이번 여행길에는 도로 위에 유난히 눈에 띄는 트럭들이 있었다. 석탄을 싣고 갈 만한 컨테이너에 주먹만 한 물건을 수북이 싣고 지나가는 트럭이었다. 몇 대가 지나가고 얼마쯤 있다가 그런 트럭이 또 보이곤 했다.

- 저게 뭐지? 감자인가?

- 응, 저거 토마토야.

2년 전 이 무렵, 아들이 대학 가기 전에 부자가 단 둘이 여행을 가고 싶다며 남편과 아들이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때도 이런 트럭이 계속 지나다녔다고. 그때 어느 트럭에서 토마토 한 개가 툭 떨어졌단다. 우리가 아는 토마토라면 달리는 차 안에서 떨어지면 툭 터져서 길에서 빨갛게 뭉개지겠지. 그런데 5번 고속도로를 달리는 토마토 운반 트럭에서 떨어진 토마토는 탱탱볼처럼 길에서 통통 튀어서 길가로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지더란다. 넓은 나라에서 긴 유통과정을 견디도록 육질이 단단하게 조작되었기 때문이다. 겉모습이 빨갛게 익은 것처럼 보이지만, 기계를 이용하여 컨테이너에 석탄처럼 실어도 터지지 않을 만큼, 달리는 차 안에서 떨어져도 탱탱볼처럼 튀어 다닐 만큼 육질이 단단한 토마토. 그때 남편과 아들은 슈퍼마켓에서 파는 맛없고 단단한 토마토에 대해 얘기했다고 한다. 고속도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한 없이 달렸을 테니 앞으로는 정말 깨끗이 씻어서 먹어야지.

샌디에이고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동안 고속도로 통행량은 전과 비교하여 큰 변화가 없었다. 휴가 차량이나 RV카(캠핑카)도 많이 보였고, 트럭도 많이 지나다녔다. LA와 5번에서 실리콘밸리로 들어가는 길로이(Gilroy) 등 주요 도시 부근은 확실히 정체가 덜했다. 덕분에 구글에서 예측한 대로 7시간이 조금 넘자 익숙한 북가주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두 소녀는 출발해서부터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한숨도 자지 않고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참으로 당찬 두 소녀의 대화는 귀담아듣지 않아도 신선하게 들렸다. 딸의 친구는 배구팀 에이스 선수이면서 공부도 아주 잘하는 소녀이다. 배구 연습 때마다 매번 부모가 모두 와서 지켜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대화는 참견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잠깐 끌려 들어갔다.

- 아줌마는 어느 편이죠?

- 나는 아무 편도 아닌데 약간 민주당 쪽으로 기울었다고 할 수 있겠다(Non-partisan, but slightly lean toward the Democratic).

소녀에 의하면, 자신이 자가 채점한 척도에서 1점이 민주당, 10점이 공화당, 중립이 5점일 때, 자신은 3.5점이니까 자신도 민주당 쪽으로 기울었다고 했다. 확고한 공화당 편인 아빠에게 그동안 세뇌를 당해서 민주당의 나쁜 점과 공화당의 좋은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었는데, 요즘 나름대로 연구를 해본 결과 자신은 민주당 쪽으로 약간 기울게 되었다고. 딸은 그러면 자기는 1점짜리 민주당이란다. 두 소녀는 서로 친구로 지내기 위해 모든 문제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고 동의하면서도 동성연애, 인종문제 등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민감한 정보에 대해서 끊임없이 탐색하고 의견을 교환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백인이고, 아버지는 중국인인 줄 알았는데 필리핀인이라고 했다. 필리핀계 1.5세로 12세 때부터 신문배달 등 돈을 벌기 시작했고, 대학에 가지 않았지만, 지금의 비즈니스를 일구게 되었다고 했다. 소녀는 아버지와 의견이 맞지 않아 언제나 힘들다고 하면서도 목소리에는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소녀의 당찬 면이 아버지를 닮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8시쯤, 샌디에이고는 벌써 해가 졌을 시간이지만 샌프란에는 아직 여명이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북가주와 남가주에서 낮의 길이가 다르다는 사실은 캘리포니아가 얼마나 기다란 영토인지 늘 실감하게 한다. 골든 아워즈라는 이름이 딱 맞는, 자연의 여명과 인공 불빛이 빚어내는 오묘한 조명이 향수와 감성을 일깨우는 이 시간은 고요하고 아름답다. 특히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는 이 시간의 도시는 곧 다가올 적막을 앞당겨 느끼게 하여 더욱 외로워 보인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랬다.

금요일, 나는 이렇게 컴컴하고 적막한 샌프란의 도심을 처음 보았다. 대공황 이래 가장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었다는 2008년에도 이 시간에 불 꺼진 샌프란 거리는 상상할 수 없었다. 지난 십수 년 간, 상점이 트렌드에 맞춰 망하거나 새로 생겨나고, 홈리스 수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했지만, 석양이 지는 시간이 되면 전등이 하나둘 켜지면서 도시가 깨어나는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사무실이 문을 닫는 주말에도 불을 모두 켜 두기 때문에 도심에 호텔을 잡으면 날씨가 허락하는 이상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이제까지 내가 알던 샌프란시스코의 얼굴이 아니어서 낯설고 서운한 한편, 내가 실감하는 것보다 경제가 훨씬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용하지 않는 건물에 불을 꺼놓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껏 야경을 위해 불을 켜놓을 여유쯤은 있었던 회사들인데, 이제는 이 빽빽한 빌딩 숲 한 구석을 차지한 회사들이 경비절감에 나서야 하는 모양이구나. 그도 아니면 이미 사무실을 닫았거나. 대부분 재택근무를 해서 그런지 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컨벤션 센터가 있는 메리어트 호텔이었는데 숙박료가 평소 가격의 반값도 되지 않았다. 리모델링한 지 얼마 안 되어 단정하고 세련된 호텔 로비는 너무 한산하여 더욱 쓸쓸해 보였다. 엘리베이터에도 늘 우리만 타고 있었으니 물리적 거리두기를 굳이 신경 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점은 장점이랄까.

좌측은 7/31 10:40PM. Marriott 24층에서 촬영. 건물에 조명이 이 빠진 듯 드문드문 켜있다. 우측은 Pixel.com에서 가져온 야경 사진.

아침을 먹으려고 브런치 식당을 찾아 돌아다녔는데 웹사이트와 달리 영업을 임시로 중간한 곳이 많아서 찾기 어려웠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소녀가 채식주의자여서 햄버거 가게는 갈 수 없어서 아직 취침 중인 노숙자를 이리저리 피해 아침 먹을 곳을 찾아다녔다. 숫자로만 본다면 샌디에이고가 미국에서 인구 당 노숙자 숫자가 가장 높은데, 샌프란시스코 노숙자와는 사뭇 다르다. 샌디에이고 노숙자의 다수는 전쟁에 참전한 뒤 PTSD로 인해 일상으로 재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다. 샌프란시스코 노숙자들은 차림새가 훨씬 과격해 보이고, 약물 중독이나 정신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지나가면서 욕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두 아가씨가 놀랄까 봐 계속 걱정되었다. 게다가 소녀는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왔다고 했다. 다행히 호텔 부근에 영업하는 곳이 있었다. 테이크 아웃을 주문을 하여 호텔로 돌아와 느지막이 아침을 먹었다.


두 소녀가 근처에 있는 쇼핑몰로 쇼핑을 가겠다고 했을 때, 잠깐 망설였지만 둘이 돌아다니게 해 주었다. 그토록 갈구하던 자율을 거머쥐고서 딸은 계속 텍스트를 해댔다.

"이 바지랑 재킷 어때?"

"$35이면 너무 비싼 거 아닌가?"

딸의 텍스트를 은근히 즐기면서 최대한 의견을 자제하고 짧게 답을 해줬다.

"잘 골랐네. 좋으면 사."

아이들이 쇼핑하는 내내 마음을 졸였지만, 아이들은 약속한 시간에 돌아왔다.

"여기 사람들이 무섭지 않았니?"

"상관 안 하면 되지."

참 씩씩한 아이들이다.


쇼핑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곧장 차이나타운으로 갔다. 차이나타운은 어느 나라에나 어느 도시에나 있겠지만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규모와 활기 면에서 다른 지역에 크게 앞선다. 중국인들이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들은 이 땅이 싫어하는 온갖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을 것이다. 뉴욕 엘리스 섬이 유럽에서 건너오는 사람들의 관문이었다면, 동양에서 건너오는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가 이들을 처음 맞는 관문이었다. Thousand Pieces of Gold 등 당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보면 중국 초기 이민자들이 미국 땅에서 겪은 삶에 대해 잘 묘사되어 있다. 중국인이 나오지 않는 소설에도 샌프란시스코에서 값싼 물건과 서비스를 대표하는 말에는 항상, "중국인이 운영하는"이 붙어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본 차이나타운은 값싼 물건을 팔지만 미국 본토인들이 업신여길 만한 동네가 아니었다. 거리는 샌프란시스코 어느 거리 못지않게 깨끗했으며, 노숙인도 없었으며, 거리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보였다. 바이러스로 이곳도 심한 타격을 입었겠지만 다른 곳보다는 꿋꿋이 견디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조금 더 안심하고 아이들이 돌아다니게 해 주었다.


오후 4시쯤 되어 금문교로 향했다. 금문교는 여러 번 봤지만 언제나 내가 기억하는 위용보다 더 크고 당당하다. 이건 기억력이 나빠서 그렇다고 치고, 조상 중에 금문교 짓다가 죽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다리를 보고 내가 왜 감격하는지 모르겠다. 전후에 배 타고 이민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어서 그런가? 두 소녀도 금문교 보면서 사진과 비디오를 연신 찍어댔다. 딸아, 넌 지금 이 다리를 몇 번째 보는지 아느냐? 다행히 바람이 금문교 치고는 온화한 편이어서 다리 중간까지 쉽게 걸어갔다 올 수 있었다.


마지막 행선지는 피어 39이었다. 피어 39는 샌프란시스코의 여러 부두 가운데 민자 자본으로 개발된 곳으로 식당과 상점 등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곳은 놀랍게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샌디에이고도 해변에는 사람들이 많은데 샌프란시스코에도 유원지에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은 마스크를 썼지만 마스크를 안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피하게 되는데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 근처에 얼씬거리다가 봉변을 당할까 바이러스보다 사람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아서 돌아갈까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사람들을 보며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안전수칙을 다시 한번 당부하고, 아이들끼리 돌아다니게 해 주고 나는 남편과 돌아다녔다. 식당은 내부를 모두 폐쇄하고 거리에 식탁과 의자를 내놓고 영업을 해서 자리가 부족해 오래 기다려야 했다. 나름대로 위생 수칙을 실천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얼마나 예방될까 싶었다. 그냥 수시로 손 씻고, 기회 있을 때마다 손 세정제를 사용했다. 저녁을 먹고 석양을 드리우는 항구를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지었다.

올라올 때는 5번에서 길로이와 산타클라라 카운티 쪽으로  난 도로로 올라왔는데 갈 때는 오클랜드 쪽으로 가서 바로 5번을 타고 다시 7시간 차를 타고 샌디에이고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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