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마지막 편
이 어처구니 없이 당한 것 같은 사건에 약간의 반전이 있다. 런던 히드로 공항 소피텔 시설은 나무랄 데 없이 좋았고, 아침 식사는 토스트와 베이컨이 나오는 공짜 식사가 아닌 매우 맘에 드는 풀 뷔페였다. 그날 점심 바우처까지 나와서 히드로 공항에서 회전초밥을 먹었다. 그다지 맛있진 않았지만 공짜면 다 용서되니까. 돌아오는 비행기도 원래 타기로 한 비행기보다 좌석이 훨씬 넓고 서비스가 좋았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다. EU존에서 출발하거나 도착하는 비행기가 연착하는 경우, 항공사는 이유를 불문하고 승객의 식사와 숙소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비행 거리별로 차이가 있으나 일정 시간 이상 예고 없이 연착한 경우 일정 금액 보상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재지변 또는 전면 파업 등 항공사가 어쩔 수 없었던 경우에는 해당이 안 된다. 물론 우리는 신청했고, 총 여행 경비에 약간은 보탬이 되는 금액을 준다는 대답을 받았다. 브리티쉬 에어웨이가 생각보다 쿨했다.
왜 브리티쉬 에어웨이가 유독 크게 영향을 받았는지도 알았다. 브리티쉬 에어웨이는 사실 영국 회사가 아니라 이베리아 항공과 같은 계열의 스페인 회사이다. 이틀 전 브렉시트 결정으로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직원들 모두 불안한 상태여서 비상사태에 원활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파리 관제사가 파업하고 런던 날씨가 나쁘긴 했지만 다른 항공사들은 이런 사태까지는 초래하지 않았으니까. 브리티쉬 에어웨이는 이 항공편 말고도 수십 편의 연착 및 결항 사태를 일으켰다.
이 일을 겪으면서 막연히 느끼던 EU가 확 와닿는 느낌이었다. 유럽 여행 전에는 EU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아들이 여행하면서 계속 브렉시트 뉴스를 검색하는 걸 보고 신기했는데, 이번 비행기 연착 사건을 겪은 후부터 유럽 기사를 꼭 챙겨 읽는다. 비행기 연착으로 우리 가족은 정말 많은 불편을 겪었다. 보름 간 여행 후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을 정도로 지친 몸으로 공항에서 13시간을 기다린 것은 물론, 남편은 일요일 한밤중에 집에 들어와 몇 시간 눈도 못 붙이고 출근해야 했고, LA 공항에 예약해 놓았던 택시도 취소하고 다시 예약 잡는 번잡함에, 강아지도 하루 더 맡기는 등 열거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EU라는 경제 블록을 실감하는 더없는 기회가 되었다.
2016 여름 우리 가족 유럽 여행기를 드디어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