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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Apr 29. 2020

유럽 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2016년 6월 25-26일

2주간 매일 6~10 마일씩 걸으며 강행군했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이다. 비행기 타본 사람은 누구나 아는 과정. 그런데 이날 예상치 못했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까지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또다시 택시 기사에게 바가지 쓰지 않으려고 호텔을 통해 택시를 예약했고, 택시 기사가 100km로 차를 몰며 텍스트를 쳐서 아슬아슬 했지만 그래도 공항까지 무사히 갔다. 지나면서 로마 근교에 신도시도 보고. 참, 로마 근교 신도시 아파트도 샌디에고에 새로지은 아파트의 컬러블록 외관과 매우 비슷했다.


로마 다빈치 공항은 공항 이용객들이 3점 미만의 별점을 주는 공항인데, 정말 복잡하고 배치가 엉망진창인 공항이었다. 어렵사리 우리가 예약한 브리티쉬 에어웨이 데스크를 찾아가서 줄을 섰다. 그런데 줄은 체크인 승객, 미체크인 승객, 비즈니스 클래스 이상 승객 등 3줄이었는데 매우 천천히 줄었다. 줄 서 있던 승객들이 목을 쭉 빼고, 발을 동동 구르고 난리가 났다. 그 와중에 발권을 하던 직원이 자기 쉬프트가 끝났다며 일어나서 가버렸다. 승객들은 모두 황당해 하며 폭발 직전이었다. 얼마 후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자리에서 떠났던 직원을 다시 데려왔다.  


12시가 좀 못 되어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12:55분 탑승이니 보안 검색이 늦어지면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다. 그런데 체크인 직원은 뜻밖의 통보를 했다. 우리가 탈 비행기가 3시간 연착이란다. 익스피디아웹에도, 공항 전광판에도, 항공사 홈페이지 어디에도 연착이라는 통보는 없었는데 뭔 소리야? 혹시 다른 비행기 얘기하는 거 아니야? 내 셀폰 앱을 보여주며 재확인했지만 자기네 시스템에는 연착으로 뜬다고 했다. 그래서 줄이 이렇게 천천히 줄었군. 크게 당황스러웠지만 3시간이야 어떻게 버텨보지 뭐. 우리가 탄 비행기는 로마에서 런던을 거쳐 LA로 가게 되어 있어서 짐은 LA로 부쳐야 하지만 연결편을 놓칠 게 거의 확실하여 런던까지만 보내준다고 했다. 공항에서 점심을 먹으라고 15유로짜리 스낵 바우처 4개를 주었다. 이렇게 공항에서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보안 검색을 거쳐 게이트 근처에 가자 탑승 시간이 5:40PM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니, 그럼 몇 시간을 기다려야 되는 거야? 기다리는 시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대기실에서 충전하는 곳과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앉았다. 같은 항공편의 다른 승객들은 무얼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점심을 해결한 뒤 공항을 돌아보았다. 그때쯤 탑승 시간은 7:00PM으로  바뀌어 있었다. 브리티쉬 에어웨이 부쓰가 보였다. 거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다른 소식이 있냐고 물어보자 다른 소식은 없고 그 부쓰 직원이 저녁 식사 바우쳐를 나누어주고 있다고 했다. 왜 연착이 되는지도, 진짜 7시에는 탑승할 수 있는지도 분명치 않았다. 줄이 길지는 않았지만 불안한 승객들이 직원을 붙잡고 따지느라 30분도 훨씬 넘게 줄을 섰던 것 같다. JAL이나 다른 비행기들은 제시간에 런던으로 잘도 뜨는 걸 보니 더욱 화가 났다.  


그 사이 남편은 180도로 젖혀지는 라운지 체어가 있는 대기실을 찾아냈다. 나는 저녁 바우처를 받아서 그쪽으로 갔는데, 짜증난 승객 사이에 가벼운 시비도 붙는 눈치였다. 아이들이 자칫 소란을 피우다가는 불똥이 튀기에 딱 좋은 분위기였다. 편안한 라운지 체어에서 눈좀 붙이고 싶었지만 잠은 오지 않고, 누워 있는 것도 지겨울 때쯤 저녁을 먹었다. 정말 맛(대가리)가 없는 공항 밥이었다. 나는 다시 부쓰에 가서 줄을 섰다. 탑승 시간이 이제는 9시란다. 비행기가 보잉에서 에어버스로 바뀌었고 새로운 탑승 시간과 좌석 번호가 찍힌 티켓을 인쇄해주었다. 물론 1시간 동안 줄서서 받았다.  


결국 우리는 10:50PM이 되어 탑승했다. 비행기에 오른 승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이런 단순한 인간들 보았나.. 기장이 객실에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자신은 어제도 비행 시간이 연착되어 오늘 새벽 1시에 비행을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갔단다. 파리 항공 관제사들이 파업을 한 데다가 런던 공항에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비행 스케줄이 차질이 벌어졌다며 사과했다. 다행히 자기가 눈을 좀 붙이고 런던에서부터 이 비행기를 몰고 왔다면서 원래는 거의 3시간 걸리는 거리이지만 자기가 힘껏 밟아서 1시간 50분 이내에 런던에 도착하도록 하겠단다. 사람들은 휘파람 불고 난리였다. 아, 비행기도 과속을 할 수 있구나. 좋을 걸 배웠다.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잔 비행사가 과속을 하겠다니 등골이 좀 오싹하기도 했다.  


 런던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정말 1시간 50분 만에 도착했다). 항공사 창구에서 호텔 숙박권과 아침 식사 바우처를 받았다. 그리고 LA로 가는 연결편은 내일 아침에 수속해 주겠다는 공항 직원에게 우리는 월요일에 출근해야 해서 꼭 내일 떠나야 한다고 사정하여 LA행 티켓을 쥔 시간은 새벽 2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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