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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미 Dec 24. 2019

내 인생의 파티는 언제쯤.


오늘은 파티가 있는 날이다.

  다른 날, 다른 시간, 하지만 같은 엄마의 배속에 태어난 하나뿐인 언니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오늘은 파티가 있는 날이다. 반차를 내고 집에 오는 길 주문했던 케이크를 손에 들고선 헐레벌떡 장소에 도착해, 저 테이블에 오늘 나의 숨이 필요한 풍선들을 보는 순간 심호흡을 크게 할 수밖에 없었다. 저걸 언제 다 분담. 분홍색, 노란색, 흰색 풍선을 저마다 하나씩 천천히 있는 힘껏 풍선을 불었지만 한눈파는 사이 금세 바람이 픽하고 빠져버렸다. 그 순간 이만큼 크게 불기까지 내 모습이 떠올랐다. 숨을 천천히, 하지만 깊게 내뱉으며 흐물거리던 풍선이 조금씩 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고 이 변화를 재깍재깍 보는 내가 좋아하던 모습이. 동시에 이 과정을 몇 번만 더 하면 곧 마무리될 것이라는 부푼 기대까지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한눈파는 사이 이를 말짱 도루묵으로 만들다니. 순간 풍선 안에 가득했던 내 숨이 한순간에 다 빠지는데, 허탈했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내 파티도 아닌데.’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그땐 친구의 고민 상담을 했을 때였다. 당시 친구는 만나던 남자친구(그는 연상이었고 미모가 수려했다. 그리고 키가 꽤 컸다.)와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유는 자신만 놓으면 끝나는 관계인 것 같다는 것. 이 주장의 근거로는 첫 번째, 연락이 불성실하다는 것이다. 연락하면 분명 1은 사라졌는데 답이 없다거나 아니면 단답형으로 끝나며 그가 가장 답장이 빠를 때는 무언가를 부탁할 때였다고 했다. 당시 나는 첫 번째 근거부터 몹시 불쾌했지만, 친구의 낯빛이 퍽 울적하여 더 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두 번째, 잠자리가 너무 잦다는 것이다. 키가 크고 미모도 수려한 그에겐 주변에 끊이질 않는 지인들이 많았고 더불어 술자리도 많았다. 종종 술에 취해 친구에게 연락하여 만나면 항상 그 끝은 어느 골목길의 모텔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고 친구는 그에게 이 부분에 대한 말을 해보았으나 알겠다는 답변과 함께 그 뒤부터 더욱 소원해졌다는 것이 친구의 말이었다. 그 뒤로 부가적인 근거들은 많았지만 일단 그 두 가지만으로도 너무도 끝이 보이는 연애였기에 나는 목청에 핏대를 세워가며 그와 만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수만 가지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우리는 밤새 이야기했고 이따금 친구는 울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안타깝다가도 그에게 너무도 화가 났다. 나는 친구를 꼭 안아주며 그와 관계를 끝낸다는 약속을 받은 후에 우리는 헤어졌다. 다음 날 친구는 그와 화해했고 나는 친구와 연을 끊었다.


  제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친다 한들 결국 제자리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의 삶에 대해, 그리고 내가 속한 관계에 대해 제아무리 노력해도 매번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 그런 걸까?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현재를 성찰하고 과거를 반성했다, 끊임없이. 그 누가 뭐라 하든 내 삶의 각본과 감독은 나이며 그 안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로 성장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곧을수록 조금씩 비틀어지는 균열 속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한 번씩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내 삶에 대한 회의감은 나를 곧잘 우울감에 빠지도록 했으니까.

 

  적지만 그리 적지 않은 나이로 살아본 결과 깨달은 순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 대부분은 자의든 타의든 그게 무엇이 되었든 쉽게 망가지거나 부식되어 결국엔 사라지고 만다는 점이다. 허나 사라졌다 하여 이와 감정까지 모두 그리되는 것은 아니기에 남겨진 감정과 기억을 감당해야 할 몫은 온전히 나였다. 이 애석한 깨달음은 먼저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고 후엔 어쩔 수 없다는 일종의 체념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체념이 마치 하나의 회피형으로 보일 수는 있겠으나 결론은 내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 하늘의 하나님은 이 같은 순리를 바꿀 수 있을진 몰라도, 적어도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나로서는 내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나이로 살아본 결과 깨달은 또 다른 순리는 저 보이지 않는 심연 속에 존재하는 무언가는 천천히,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무언가는 아마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보며 사는 나에게 하늘이 주신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데 깨달은 가장 중요하고도 최고의 방법은 바로 순간을 최선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 알기까지 다수의 관계를 잃고 새롭게 맺기도 하고 하루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꽉 채워 보내기도 했다. 그리곤 이내 새벽에 엉엉 울기도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점은 행복했으나 아쉬웠고 기뻤으나 슬픈 그 모든 순간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낸 하루는 결코 후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숨이 빠져 다시 흐물거리는 풍선을 멍하니 바라볼 것이 아니라 나는 다시금 천천히, 그러나 깊게 숨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눈파는 사이 금세 숨은 빠져버렸으나 이는 다시 시도할 수 있는, 다시 최선을 다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니 말이다.


" 인생을 위한 파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어쩌면 지금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분명한 것은  인생은 내가 알든 모르든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고 나는  안에 감독으로서,  배우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파티를 즐기기 위한  번째 자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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