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멜번에서 초짜 가이드로 살아남기
가이드는 믿음을 먹고산다. 실제로 그 지역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전문가'의 향기를 풍기는 가이드는 고객들의 믿음을 얻는다. 믿음을 얻은 가이드는 일정 내내 고객들의 반짝거리는 눈빛과 함께한다. 내 가장 첫 번째 투어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고객을 도와드렸다. 커피라곤 낫 놓고 원두 모양도 모르는 내가 그저 어디서 들은 플랫 화이트(Flat White)를 추천해 드렸는데, 아무리 여러 번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점원을 상대하다 결국 나를 소환하셨다. 단지 화이트를 '와이트'로 바꿔 말한 나에게 고객들은 탄성을 질렀다. 순식간에 거의 교포가 되어버린 것 같은 우쭐함이 느껴졌다. 겨우 '와이트' 한 마디가 화성에서 드론으로 농약을 뿌린대도 믿을 가이드로 만들어주었다.
회사 대표님을 따라 가이드 일을 배우러 갔을 때, 본인이 하는 70%가 거짓말이라는 아주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결국 아주 정확하고 학문적인 정보를 주는 것보다 고객들에게 흥미와 관심이 있을 소재로 스토리를 이어가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말씀이었다. 대체로 사실이다. 이동하는 2시간 동안 세계 2차 대전에 대해 천 마디를 떠들면 효과 좋은 수면제가 되지만 기념품을 추천할 때면 전에 없던 질문하는 학생이 생긴다. 실제로 내가 그 지역의 역사와 사회적인 이슈, 그리고 정치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아는지는 크게 궁금해하는 이가 없다. 고객들에게 한방의 믿음을 주면 그때부터 나는 고객들만의 네이버가 된다. 0.3초 스쳐 지나간 나무 이름을 내게 물어보는 산림학과 교수님도 있었고, 사돈의 팔촌이 언제 언급했던 호주의 소식을 묻는 고객도 있었다.
멜번 공항에 도착한 첫 발자국이 아직 지워지지도 않았는데, 가지각색의 질문들은 늘 나를 찔러댔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지만, 긴장하는 것보다는 여유를 가지는 게 도움이 되었다. 아는 것을 더 길게 설명하고 모르는 것은 아는 것으로 치환해 설명하는 능력이 생길 무렵, 멜번의 그레이트 오션로드 한복판에서 우리는 가시로 둘러싸인 동물을 발견한다. 어떠한 위트와 어떠한 재치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질문이었다. 가까스로 생각해 낸, "영어로는 동물 이름을 아는데, 자주 보이는 동물이 아니라 한국어는 기억이 안 나네요". 식은땀을 흘리며 서둘러 먼저 돌아와 폭풍 검색을 했다.
호주에서만 산다는 뾰족뾰족한 친구의 이름은 "가시두더지"였다. 영어로는 Echidna. 포유류인지 파충류인지 묻는 질문에, 포유류라고 대답한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실제로 호주에 머물던 2년간, 그 깡시골에서 머물렀던 시간까지 모두 다 포함해도 야생 Echidna를 본 건 세네 번에 지나지 않으니, 자주 보이지 않는 동물이라는 말도 틀린 건 아닌 셈이었다.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아는 척, 여유와 배짱을 가져야 하는 가이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결국 알아도 더 아는 척하는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준 어느 날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