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 집이 사라진다. 특히나 몇 달, 몇 년의 긴 여행을 한다면 특정한 계획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당장 오늘 묵을 숙소를 오늘 정하곤 한다. 돈 없고 패기 넘치는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향하는 장소는 호스텔이다. 한국에 있는 내 방만한 곳에 침대가 8개씩 꽉꽉 채워져 있다. 바닥은 펼쳐놓은 캐리어로 가득하고, 침대 프레임에는 수건이며 입었던 옷들이 널려있다. 비접지 멀티탭이 맞는지는 궁금하지도 않고, 그저 내 휴대폰을 충전할 콘센트가 있기를 바란다. 호스텔마다 꼭 하나씩 있는 공용공간으로 내려가면 누가 봐도 10년 지기인데 이틀 전에 만났다는 이들이 가득하다. 한구석에서는 컨츄리 펍이 흘러나오고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은 카드게임을 즐기고 있다.
숙박비를 아끼려 12시간 야간버스를 타고 도착한 아들레이드에서 나는 28인치 빨간색 캐리어와 함께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제 막 봄이 오기 시작한 3월 초였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큰 프린지 페스티벌인 아들레이드 프린지 페스티벌 기간이었다. 평소에는 평화롭다 못해 심심한 아들레이드지만 이때가 되면 전 호주, 전 세계에서 이 축제를 위해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당연히 숙박비 또한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이탈리아에서 온 수염이 덥수룩한 친구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자야 하는 호스텔 또한 피해 갈 수 없다. 내 짐을 침대 밑에 욱여넣고, 그저 내 몸뚱이 하나 수납할 수 있는 침대가 1박에 100달러(약 9만 원)가 넘곤 한다. 돌아갈 곳을 두고 그저 며칠 여행 온 게 아니라 내 모든 짐을 들고 그래, 이사를 한 나에게 너무나도 큰 금액이었다. 그렇게 차마 예약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하루하루 미루다가 결국 아들레이드에 도착해서도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버스터미널에 앉아서 '이제 뭐 하지..?'를 생각하다 배가 고파오는 것을 느꼈다. 전쟁 중에도 밥은 먹어야 하기에 우선 아침을 먹으러 28인치 내 집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낯선 도시에 카페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는 나는 터미널을 따라 우선 걸었다. 2분쯤 걸었을까? Backpacker's라고 적혀있는 색 바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저절로 몸이 움직여 안으로 들어갔고, 운영 중인 게 맞나 의심스러운 어두컴컴한 오피스에는 푸짐한 인상의 할아버지 두 분이 계셨다. 오늘 당장 묵을 침대가 있냐는 나의 질문에 Pete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그렇다고 했다. 심지어 가격은 일주일에 160달러(약 15만 원), 파격적이었다! 사실 호스텔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무너져 내릴듯한 고동색 벽돌집이 못내 찝찝했지만, 집도 절도 없는 나는 일단 Yes를 외치며 일주일치를 결제했고, 빨래를 하려 지나가던 영국 여자애가 거대한 내 짐짝을 함께 위층으로 옮겨주었다. 이렇게 아들레이드 버스터미널 옆 호스텔 6번 방, 문을 열고 들어가 오른쪽 아래 침대가 4개월간 나의 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