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넓또만!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 호스텔은 그 넓은 세상 또라이들의 집합소다. 사실 하루이틀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 호스텔이다. 하지만 백패커들의 대부분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머물기 때문인지 유독 호주에는 호스텔에 장기투숙하는 사람들이 많다. 좋게 말하면 가족 같고, 나쁘게 말하면 가 X 같은 사람들을 매일 봐야 하는 곳이다. 별별 또라이들을 다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몇 년째 호스텔에 머무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호스텔의 터줏대감들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우선 호스텔을 관리하는 P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푸짐한 풍채에 살짝 안경을 추켜올리는 할아버지다. 매일 아침 오피스를 지나가면 늘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인사를 해주고, 일자리는 구했는지, 주변은 좀 돌아봤는지 안부를 건네주는 다정한 어른. 하지만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호스텔의 규칙을 어기거나 새벽까지 동네가 떠나가라 노래를 트는 이들에게는 얄짤없다. 동네 할아버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에게 신기한 면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맥주와 없는 P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피스에서 그를 찾을 수 없다면 주로 호스텔 뒤편 횡단보도 옆 펍에서 맥주 한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동네 호텔(보통 호텔을 함께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상 펍이다)에 모여 음식을 먹으며 한잔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처음엔 어울리지 않는 그림처럼 보였다. 그리고 P는 전동킥보드를 타고 동네를 누빈다. 조심스레 말하자면 그의 체구에 전동킥보드는 다소 버거워 보인다. 이해할 수 없는 고집을 가지고 있는 P는 거대한 체구와 아픈 무릎을 가지고 있음에도 높이 치솟은 2층 침대를 고집한다. 언젠가 자다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팔이 골절된 적이 있는데도 꾸역꾸역 2층으로 올라가는 P는 아마 본인의 젊음에 대한 현실과 이상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 같다고, 누군가는 말하더라.
P와 함께 그의 단짝 B 또한 신기한 사람이다. 청소와 빨래등의 일을 하기엔 너무 몸이 둔하고, 다리가 좋지 않은 P는 2층으로 걸어갈 수 없기 때문에 호스텔에는 그런 관리를 도우며 무료로 숙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된 호스텔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겸 오랜만에 호스텔에 들른 B는, 하필이면 그때 P의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스스로 발을 묶었다. 그때부터 호스텔 청소와 관리를 도맡은 그는 내가 호스텔을 다시 찾은 1년 뒤까지도 P의 곁에 남아있었다. B는 사실상 언제나 나의 문지기 역할을 해주었다. 늘 무언가를 깜박하는 나는 열쇠마저도 항상 펼쳐놓은 캐리어 어딘가에 처박혀있었다. 보통 호스텔 앞 벤치에 앉아 담배를 수도 없이 태우고 있는 B가 멋쩍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곤 했다. 슬쩍 보기엔 도깨비를 닮은 것 같기도 한 꽤나 무서운 인상을 가졌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B다. 안 좋은 일이 있어 우울한 날, 어설픈 냄비밥을 하다 바닥이 다 눌어붙은 냄비를 몰래 씻어두고는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뻔뻔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절대 사진을 안 찍는다더니 마지막이라고 한 번만 같이 찍자는 말에 팔 한쪽을 프레임 안으로 구겨 넣는 사람이다. 작별 선물로 준 감자칩 한 박스를 소중한 눈길로 바라보던 사람이다. 생각해 보니 담배와 커피, 그리고 호스텔 자판기의 감자칩을 제외하고 B의 입에 무언가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역시 이상한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타이완에서 온 W를 빼놓을 수는 없다. 늘 목 늘어난 티셔츠에 백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뒷문으로 드나드는 그녀는 3년째 호스텔에 살고 있다. 스스로 부끄럼을 많이 탄다고 말하는 W와는 처음 한 달 동안 말을 섞은 적이 없다. 잠깐 공용공간에 있다가는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가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말을 걸었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물꼬를 트자 방안 가득 단어와 문장들이 넘나들었다. W는 요리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저렴한 가격 때문에 호스텔에서 몇 년을 살고 있었다. 일주일에 서너 일 잠깐씩 파트타임 쿡으로 일하고 한 번씩 봉사활동을 하는 W는 버는 돈이 없는 만큼 쓰는 돈도 없었다. 외식을 하지 않고 봉사활동 하는 곳에서 음식재료를 나눔 받기 때문에 일주일에 160불(약 15만 원) 초저가 호스텔이 그녀에게는 가장 큰 소비였다. 학교를 졸업했을 지금쯤, 시골 어딘가 레스토랑에서 영주권을 준비하고 있을지, 아니면 결국엔 타이완으로 돌아갔을지. W의 소식이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