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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레이드에서 건설잡 '노가다' 일자리 구하기에 도전하다

by 떠돌이 야생마

아들레이드로 터를 옮겨간 나에게 처음으로 필요한 것은 집이었다. 얼렁뚱땅 짐 두고 몸 둘 수 있는 호스텔 침대를 구하고 나니 앞으로 뭘 해야 하지에 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또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이 생각났는데, 나는 불안정한 외부인이다. 호주를 좀 더 여행해야지 마음먹었지만 그러려면 신분이 필요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비자가 필요했다. 나의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어느덧 약 4개월가량이 남았고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나는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이다. 엉엉울며 수갑에 채워져 쫓겨나는 내 모습이 슬 스쳐지났다.

호주에서 워홀을 1년 더 연장하려면 특정 분야, 특정 지역에서 88일간 일해야 한다. 한국인들이 딸기를 따러 유독 많이 가는 이유다. 또 워홀 비자로 있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 흔한 스몰톡 중 하나가 "Have you done your 88 days?(너 88일 끝냈어?)"이다. 첫 번째 비자 만료기간 4개월을 남겨두고 88일을 채워야 하는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했다. 다행인 건 내가 여행자들로 가득한 호스텔에 있었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정보의 바다였다. 생각도 못해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많았고 뭐가 필요한지, 어떻게 지원하는지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아들레이드가 있는 남호주는 전역이 특정 지역으로 분류된다. 덕분에 시티 안에서도 농업, 공업, 건설업 일이 모두 인정된다.


곧장 건설업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화이트카드 수업을 신청했다. 단 몇 시간 만에 '자격'을 획득했고 용기를 주는 강사님의 응원에 어깨가 올라갔다. 이력서를 30장가량 뽑아 들고 도시 전역을 돌아다녔다. 형광색 작업복(hi-vis)이 보이는 곳이면 다가가 이력서를 건넸다. "너 뭐 할 줄 알아? 잭해머 다룰 수 있어?"라고 묻는 관계자의 말에 그냥 할 수 있다고 대답하며 서로 쳐다보다 빵 하고 웃음이 터졌다. 나의 모습은 누가 봐도 공사장에서 일할 것 같은, 일을 구할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사실 아직도 잭해머가 뭔지 잘 모른다. 뽑아놓은 이력서가 동나도록 별 소득이 없자 모른 건설업 회사와 에이전시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pardon을 수없이 외쳐야 하는 호주 악센트는 전화상으로 그저 외계어였다. 상대의 반응을 보며 추측이라도 해야 하는데, 전화는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연결된 선이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영어로 필요한 말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해야 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나의 영원한 친구 챗 지피티가 써준 대본을 읽고 또 읽으며 무지성으로 전화를 걸었다. 괜히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생각해 보면 일을 구하면 좋은 거고 아니면 현직에 있는 사람과 영어로 대화를 한 거다. 10분 통화에 얼마씩 돈을 내야 하는 전화영어도 있는데, 나는 이미 돈을 벌고 있었다. 기계처럼 공짜 전화영어를 하다 보니, 이 정도면 내가 외계인이 된 건지 그들의 언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언제 뿌려두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이력서들이 펄럭펄럭 날아다니다 어딘가 진드기가 되어 붙었나 보다. 슬슬 전화가 걸려오고, 문자가 오기도 했다. 경력 없는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없었지만 그래도 면접을 보면서부터는 이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연락해 본 에이전시에서 일을 시작한 호스텔 친구의 한번 더 연락해 보라는 조언을 따랐다. 면접 일정이 잡혔고, 무조건 힘세고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며칠 뒤 이른 새벽, 당장 일할 수 있냐는 문자를 받고 하이비스를 입을 사람들에 드디어 동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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