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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yellowruby Jun 09. 2024

그들과 같은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

나의 첫 조성진 그리고 정명훈 지휘자님

2024년 5월 7일. 화. 서울 예술의 전당
조성진,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cond. 정명훈)


가장 나다운 버킷리스트, 조성진

매년 새로운 해가 떠오르면 습관처럼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곤 한다. 지키지도 못할 목록을 적어서 뭐 하나 싶지만, 그래도 왠지 항상 적게 되는 건 분명 바보 같은 습관을 가진채 희망을 그리는 바보 같은 나의 성격 탓이다. 올해에는 작년 말쯤 책에서 읽어서 기억에 남았던 버킷리스트로 빙고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친한 언니와 버킷리스트 빙고 내기를 하기로 약속도 해서, 3x3 총 9가지의 리스트를 작성했고 그중 나의 온전한 취향이 담긴 리스트는 단연코 조성진 공연 관람이었다. (나의 버킷리스트엔 으레 멋져 보여서 하고픈 일들이 포함되곤 하니까 ㅎ)  


 그렇게 한국에서 몇 없는 공연의 티켓팅을 다 실패했지만(익산, 고양 등등),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정명훈 지휘자님의 도쿄필과의 협주 공연은 성공했다. 이 역시 내가 말고 친구가 ^^. 전쟁 같은 티켓팅들을 치르고 나니 피아노를 치는 손이 잘 보이는 자리에 대한 열망은 완전히 전소되고, 그저 한 표를 구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감사했다. 그렇게 근 두 달을 기다린 날이 오늘이었다.


영광이자 감사의 조성진

조성진이 입장하는데 왕자님이 따로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감성이 아직 채워지지 않았던 나는(T) 역시 한국의 메이크업이 세계 최고다… 머리 스타일링을 저렇게 하니 정말 왕자님이 따로 없구나… 클래식을 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도 고급져 보일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N). 하지만 성진초가 자리에 앉고 나서 정명훈 지휘자님의 준비 사인이 끝난 후 바로 시작하는 그 순간은 찰나의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쓸데없는 생각으로부터 완벽히 격리될 수 있었다.


실은 공연을 보면서는 이제까지 내가 유튜브로 그렇게 돌려보던 23년 11월의 슈만 공연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자각을 빨리 할 수 없었다. 클래식을 테크닉적으로 깊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점도 있지만 이미 공연장을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울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연주자들과 조성진, 정명훈 님이 입장하고 연주가 시작하기까지 벅차오름을 참으려는 노력뿐이었다. 나는 입장하는 조성진과 정명훈 지휘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 현실은 말 그대로 눈물이 앞을 가려 시야가 흐려지고 나는 그저 연주가 시작도 하기 전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쟨 왜 시작도 안 했는데 울어?라고 생각할 것만 같았기 때문에!)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나는 왜 공연장에서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표출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썼을까? 이마저도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배운 사회적 학습일까? 아니면 공공장소에서 (누구도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겠지만) 눈물을 흘리는 것에 대해 창피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이유가 뭐가 됐든 그로 인해 나는 1악장 중반까지 시야를 확보하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1악장 중반부터 요동쳤던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피아노가 오보에와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부분에서부터 정신이 차려졌던 것 같다. 그 이후부터 오른손의 트릴, 왼손의 멜로디가 나오는 부분까지가 원래도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었고(카덴자 부분이다), 내가 즐겨보던 23년의 공연에 비해 조성진이 좀 더 기쁘고 사랑에 가득 차고 확신에 든 느낌으로 연주하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부분이다. 즐거워 보이는 그의 손가락이 가볍게 건반을 만지고 있었고, 하지만 그에 반해 너무나도 또랑 또랑하고 맑은 소리가 나는 이 순간에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나는 생각보다 훨씬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었고, 결국 한 달 전부터는 없어지는 모든 감정을 살려놓기 위해 약도 먹어가며 노력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우울하다는 생각조차 없었는데, 모든 욕구도 사라지고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던 상태가 계속되었다. 자고 싶은 생각도 목이 마른 욕구조차 없었던걸 생각하면 얼핏 무섭기도 하다. 그게 바로 우울증 초기 증상이란다^_ㅠ 회사야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 동시에 무언가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고 있지 않았는데, 그들의 무대는 그 모든 걸 한 순간에 치유해 주었다. 정말 이 시간에 내가 존재함에 너무 감사드리고 행복했다. 얼마 만에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복인가!


정명훈 지휘자와 베토벤 운명 교향곡

아직까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의 연주를 듣지 못해서였을까, 나는 지휘자의 존재의 가치는 공연을 보고 어림풋이 알거나 머리로만 인지하는 수준이었다. 부끄럽게도 이번 공연 역시 조성진 피아니스트를 보기 위함이었지, 정명훈 지휘자님에 대한 큰 궁금증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곡이 시작되자마자 나의 무식함과 오만함에 대하여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정명훈 지휘자님은 감독이자 연출이 되어 모든 악기들의 소리를 컨트롤하고 계셨고 이들은 말 그대로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영화 같았다.


어쩌면 아이언맨이 닥터 스트레인지와 같은 성격과 사고를 가지고 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을 본다면(MBTI NNNN..ㅎㅎ..)  오늘의 정명훈 선생님 같았을까? 연륜에서 나온 강인함 속에 겸손함이 묻어 나오시고, 최대한 곡에 충실하지만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담은 지휘를 하시는 모습에서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조성진 피아니스트도 꼭 저렇게 청중의 마음을 다 빼앗을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되길 기원했다. 뒷모습에서부터 모든 음을 최상의 하모니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단호함이 보였고, 단원들도 그에 응하고 있는 모습들이 너무 벅찼다.


그리고 마지막 3악장은 나에게 꽤 충격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때 중 하나가 초등학교 오케스트라 시절인데, 그때 다 같이 합주 mt 같은 것을 가서 협주곡을 연습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3학년이었나 4학년인 내가 1st violin이었고 앞에서 세 번째 오른편에 앉았다는 사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그때 음악에 푹 빠져 연주하는 삶을 그렸던 첫 계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곡의 멜로디는 아직도 생생하고 지판을 누르는 왼손도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곡이었다. 하지만 항상 그 곡의 이름은 모른 채 살아갔는데, 운명교향곡 3악장의 주제가 나오자마자 나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보편적이고 나에게 이젠 너무 익숙해서 멋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교향곡이어서 듣지 않았었는데, 알고 보니 운명교향곡 3악장이 그 곡이었다니…


순간 많은 생각과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워하던 행복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고, 심지어 나 자신이 관심조차 주지 않고 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 공연은 눈을 가린 채 무언가에 대해 열망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주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일상에서 행복하고 싶다는 꿈은 멀리 있지 않고 있는 그대로 피하지 않고 좋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것.


이번 공연은 나에게 여러모로 많은 의미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언젠가는 클래식 공연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어렵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메시지를 받는 경험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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