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도 자주 참다 보면 쌓이고 쌓여 커진다. 참는 습관이 몸에 배면, 자신이 지금 참고 있는 건지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지나가버리는 순간들이 많아진다. 나 역시 최근에서야 평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뱉지 못하고 삼키며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돌아보니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자잘한 것부터 뱉지 못하고 있었다.
수영 초기,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오는데 선생님께서 자세 교정을 해주려 나를 불러 세웠다. 수영하다 갑자기 몸을 일으켜 세운 나는 입에 물을 머금고 있었다. 선생님은 설명을 하고 있는데 입안에는 물이 가득 차 불편했다. 뱉고 싶었지만, 괜히 설명을 끊고 물을 뱉으러 가는 게 실례라는 생각에 그대로 참고 있었다. "이해되셨어요?" 묻는 선생님께 "네."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입에 물이 있어서 "에."라고 웅얼거렸다. 그런 나를 보고 선생님은 "입에 물을 왜 머금고 계세요? 얼른 뱉고 오세요."라며 조금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그제야 물을 뱉고 왔다. 참지 않아도 될 것조차 참고 있었던 나 자신이 어이없고 민망했다.
집에 와서 지난날들을 돌아보다 뱉지 못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나를 마주했다. 입 안의 물처럼 작고 사소한 것부터, 가슴속 깊이 삼켜버린 말들까지. '왜 이렇게 뱉지 못하지?'라고 자문해 보니, '나만 삼키면 귀찮은 일이 안 생기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경험들이 겹치고 겹쳐,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자잘한 것까지도 참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사람은 타인과 교류하면서 자신을 조금씩 잃어간다. 그렇기에 서로 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다른 사람 또한 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나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배려하지 못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들이 나를 자신에 맞춰 바꾸려 했을 때, 처음엔 "나는 그게 싫어요. 나는 어려워요"라고 뱉어냈지만 나의 말이 번번이 거부당하는 순간들을 마주하며, 점점 무력감에 잠겼다. '용기를 내어 의견을 뱉어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구나. 괜히 나의 목소리를 내면 공격과 비난을 당할 뿐이구나. 그냥 나만 삼키면 조용히 넘어가겠구나.' 이렇게 뱉지 못하는 버릇이 몸속 깊이 새겨졌다.
동시에 상대의 기분과 감정을 배려하지 않고 말을 함부로 뱉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던 기억들도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선한 의도의 다짐들이 어느새 '참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변질되었다. 배려와 참는 것, 솔직함과 무례함 사이의 경계가 어지러이 뒤섞이며 점점 더 흐릿해졌다. 살아오며 여러 사람에게 빌려온 가치와 기준들이 내 안에 뒤죽박죽 섞여 혼란스러웠다.
자아가 흐릿해진 나에게 명확한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연습이 필요했다. 근래 뱉지 못하고 삼켜버린 것들을 노트에 적었다. 그리고 왜 뱉지 못했는지 이유를 적었다. 정말 삼켜야 할 상황이었는지 한 발 떨어져 넓게 들여다봤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삼켜버린 것이라면, 다음부터는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뱉어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나만의 기준을 한 줄 한 줄 적어갔다.
여전히 몸속 어딘가에 뱉지 못한 것들이 고여 있다. 입 안에 머금은 물처럼, 목구멍 어딘가에 걸려 있는 말들, 가슴속에 가라앉은 감정들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들을 알아챈다. 뱉지 못하고 삼키는 것만이 배려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솔직하게 뱉어내는 것이 나와 상대 모두를 위한 진짜 배려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스스로 알아차리고 기준을 만들어 나가고 있으니, 언젠가는 속에 것들이 고이지 않도록 자연스럽고 기분 좋게 뱉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뱉어야 할 것과 삼켜야 할 것을 구분하는 법을, 여전히 어렵지만 한 걸음씩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