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모래성

by 더여린

요즘 들어 니체의 말이 자주 떠오른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누구와도 발걸음을 맞출 필요가 없다.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완성하는 즐거움이 곧 '초인(Übermensch)'으로 향하는 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미디어는 끊임없이 우리를 하나의 틀 안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 24시간을 '수익'이나 '자기계발'로 채워야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며, 네트워크가 곧 자산이니 모임에 빠지거나 혼자 있는 것을 '사회성 결여'라며, 특정 직업을 가지면 그에 걸맞은 품위, 말투, 소비 습관을 갖춰야 한다며 세뇌한다. 그들에게 편한 답안지를 만들어 보이며 사람들에게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들어가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 틀을 벗어나면 스스로 낙오자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면서 말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게임이 인생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데"라고 말할 것이며,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등산을 해야 돼, 사람은"이라며 등산의 좋은 점을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을, 독서하는 사람은 독서를, 주식하는 사람은 재테크를.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인생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걸 신나서 떠들 뿐이다. 세상에 정답만을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 그들의 의견에 너무 심오하게 빠져 생각할 필요 없다. 그럴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람들의 말에 이끌려 다니면 내 삶을 살 시간은 정작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 목소리들에 현혹되지 않으려 한다. 동시에 내가 진짜 재미를 느끼는 것에 집중하는 연습을 한다.


최근에는 유튜브 그림 방송을 다시 시작했다. 누군가는 화가의 이미지가 깎이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소통하는 것에 굉장한 재미를 느낀다. 요즈음 혼자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점점 고독함이 스며들어 붓이 안 잡혔다. 그래서 라이브를 켜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그림을 그리면, 나에게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거라 판단했다. 동시에 사람들과도 소통하며 가까워질 수 있으니 용기를 내어 라이브 방송을 켰다.


만약 구독자 수와 조회수에 의미를 두거나, 사람들의 시선, 유튜브 수익에 중점을 뒀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일이다. 하지만 나만의 작은 성취감, 작은 기쁨을 위해서는 가능해진다. 그러니까 누군가 나에게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왜 하냐고 묻는다면 "그냥이요"라고 답할 수 있겠다. 그냥 좋고, 좋으니까 그냥 하는 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좋으니까 놀이처럼 할 수 있는 일들만을 선택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거창한 사회적 성공은 누군가 만들어낸 기준일 뿐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내가 원하는 모습에 다가가며 그 과정에서 작은 즐거움을 느끼는 것, 그것이 진짜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은 나만의 삶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 다 비슷비슷한 인생이다. 그러니 남들에게 나의 일이 의미 있게 보일까를 따지기보단, 자기만족이 커야 현재의 내가 즐겁다. 현재의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연습을 해야 인생이 전반적으로 즐거워질 수 있다.


아이가 모래성을 쌓을 때를 떠올려 본다. 그 아이는 타인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는다. 파도가 곧 그 모래성을 무너뜨릴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모래를 쌓고 다지는 행위 자체에 몰입한다. 그 순수한 집중, 그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이야말로 삶의 본질이 아닐까.


니체가 말한 초인은 멀리 있지 않다. 거창한 성공을 이룬 사람도, 모두에게 인정받는 사람도 아니다. 자신만의 가치를 세우고,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으며, 작은 성취에서 진짜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어가는 사람. 반복된 작은 성취가 쌓아 올린 그것이 바로 초인이다.


나는 오늘도 나만의 모래성을 쌓는다. 누군가에게는 하찮아 보일지 모르는 이 작은 성취들이 한 줌씩 모여, 언젠가는 단단한 성이 될 것이다. 파도가 와도 무너지지 않는,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라는 성이. 저마다 자신의 성을 쌓아가는 우리들이, 멀리서 보면 저마다의 빛깔로 서 있는 모래성들이기를 바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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