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헤엄치는 밤

by 더여린

깊이 가라앉았다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나의 행복을 위한 선택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매 순간 작은 물장구를 치듯 즐겁게 성장할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제법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 삶 위로 떠오를 수 있게 되었다. 숨이 조금 편안해져 주위를 둘러보니, 여전히 물속에서 꾹 참고 잠수하며 헤매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긴 시간 숨을 참아 편히 호흡하는 법을 잊어버린 엄마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몹시 낯설어했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혹여 나만 편히 숨 쉬는 건 아닐까, 이기적인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엄마를 물속에 붙들고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 물었다. 배우고 싶은 것이나 해보고 싶은 게 있느냐고. 엄마는 어렴풋하게 "수영?"이라고 답했다.


엄마도 나도 수영을 못했다. 나는 살면서 수영 배우기를 세 번 시도했지만 모두 한 달 만에 물을 삼키고 포기했다. 그러다 보니 내 인생에 이제 수영 배울 일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엄마가 내게 "같이 수영 배울래?"라고 물었다. 당황한 나는 "좀 생각해 볼게."라며 망설였다. '엄마가 처음으로 하고 싶다고 말한 건데, 내가 함께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엄마도 물에 들어갈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점점 지쳐가는 엄마에게 숨 쉴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번에야말로 그녀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다. 일주일 정도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그래. 같이 해보자.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배워볼게."


그리하여 시작된 엄마와 함께하는 밤 수영. 엄마는 회사 퇴근 후 수영복을 챙겨 평일 내내 나와 함께 수영장으로 향했다. 엄마도 나도 물을 무서워해서 처음엔 둘 다 수면 앞에 무척이나 얼어 있었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어찌어찌 수업을 마치고, 수영 선생님 주변에 둥글게 모여 다 같이 손을 잡고 화이팅을 외쳤다.


"하나, 둘, 셋, 화이팅!"


화이팅을 외치는 사람 중 유독 힘찬 목소리가 물 위로 튀어 올랐다. 바로 엄마의 목소리였다. 희망을 품은 눈망울은 물방울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얼굴에는 눈부신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우리는 온몸이 뜨끈해질 정도로 매일 밤 헤엄쳤다. 각자 이름 붙일 수 없는 케케묵은 감정들을 물속에 하나둘 던져내며 발버둥 쳤다. 엄마는 수영 초반 내내 "난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라고 중얼거렸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장점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며 나 역시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물살을 가르며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자신감 없던 모든 말들이 점점 긍정의 언어로 변화하고 있었다.


엄마는 씩씩하고 용감했다.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졌고, 더디게 수영 실력이 늘어도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꾸준히 물에 들어왔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매일 안도감에 집으로 돌아와 푹 잘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구나. 내가 엄마를 너무 물에 잠긴 축축한 사람으로 봤구나. 걱정을 과하게 했구나.' 이런 깨달음의 시간들이 그간 엄마를 향해 쌓인 나의 불안을 안정시켰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오직 수영 실력을 위해 아등바등 이를 악물고 물과 싸우듯 배우는 나와 달리, 엄마는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물에 몸을 맡기며 수영을 배웠다. 그런 엄마를 보며 '아, 나도 엄마처럼 물의 흐름을 따르는 법을 배워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천천히 자신의 속도로 꾸준히 물장구치는 엄마의 모습을,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는 엄마의 모습을, 물 위에서 해맑게 웃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날이 밝은 에너지가 물결처럼 차올랐다.


그리고 지금, 물에도 뜨지 못하던 우리가 접영을 배운다. 고요한 물에 온몸을 맡기며 서로의 성장을 바라보고 응원하고 기뻐한다. 서로를 위해 낸 용기가 서로를 물 위로 띄워 올렸다. 엄마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첫발을 내디딘 수영. 매일 밤 헤엄치며 오늘의 행복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연습을 한 그녀는 이제 안다. 하루하루 자신의 행복에 다가서는 법을,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고 깊고 편안한 숨을 쉬며 유영하는 법을.


숨이 차오를 때 잠시 멈춰 수면 위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다시 힘을 내어 물살을 가르고, 가끔은 등을 대고 하늘을 보며 물이 데려다주는 곳까지 둥둥 떠 있는다. 인생도 이렇게 헤엄치듯 가벼이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물은 우리의 두려움을 감싸안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조금씩 물결이 되어갔다. 때로는 거칠게 발버둥 치고, 때로는 유유히 떠오르며, 각자만의 물보라를 일으켜 함께 나아간다. 언제 끝나버릴지 모르는 삶이라는 깊고 넓은 물속에서 엄마와 함께 물장구칠 수 있음에 감사한 나날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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