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태어나자마자 불공평하다. 누군가는 근육이 잘 붙는 체질로 태어나고, 누군가는 뼈가 튼튼한 몸을 타고난다. 그래서 그들은 어린 시절에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비교적 건강하게 지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차이는 조금씩 평평해진다. 약하게 태어났더라도 꾸준히 몸을 가꾸는 법을 터득한 사람은 점점 더 건강해지며, 강하게 태어났더라도 몸을 방치하다 보면 점점 망가지지만 스스로 돌보는 법을 알지 못한다. 인생은 나이가 들수록 참으로 공평해진다. 갈고닦지 않은 재능은 물거품처럼 서서히 사라지는 법이니 말이다.
운이 좋게도 어린 시절의 나는 몸은 약했지만 연습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아이였다. 아마 타고난 천진난만함과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풍족한 출발선에 서 있었다 해도, 그 힘은 가만히 두자 줄어들었다. 우울증과 함께 20대를 건너오며, 나를 사랑하는 힘은 바닥보다도 더 아래에 닿아 있었다. 자책은 모든 순간 나의 머리를 점령했다. 나는 나를 원망했고, 비난했고, 미워했고, 으스러뜨렸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종일 잠만 자다니. 정말 한심해.’
‘바보같이 사람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다니.’
‘남편은 이렇게까지 애쓰는데, 넌 짐밖에 안 되는구나. 차라리 없어지는 쪽이 더 낫겠다’
나는 스스로의 가장 잔인한 악플러였다. 그럴수록 몸과 마음은 더 아파졌고, 어느 순간에는 나를 파괴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예전처럼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알고 싶었다. 묻고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다시 나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끈질기게 질문을 던져 그때 내가 찾은 한 가지 방법은, 나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나의 천성과 특성, 그리고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 그렇게 해야만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아주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천성이란 태어날 때부터 지닌 바탕이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이미 몸과 마음에 배어 있는 결로, 바꾸기 어렵고 무의식적으로 드러난다. 나의 경우로 예를 들면 섬세한 공감 능력, 평균보다 떨어지는 기억력, 잠이 많은 기질, 허약한 몸, 풍부한 상상력 같은 것들이 있다. 계획형보다는 즉흥형에 가깝고, 욕심이 쉽게 생기는 성향도 여기에 속한다. 반면 특성은 살아오며 만들어진 성향과 습관이다. 환경과 경험, 선택이 겹겹이 쌓여 형성되기에 변화의 여지가 있다. 일에 대한 책임감,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 짧지만 강력한 집중력, 운동하려는 마음, 잘 참아내는 습관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우울이 길게 이어지던 시기의 나는 무엇보다 현재의 나를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몸과 마음에 기운이 없어 온몸이 아려올 때까지 누워만 있으니 식욕은 사라졌고, 목소리는 작아지고 말끝은 흐려졌다. '나'라는 사람이 아득히 찾을 수 없도록 흐려졌다.
그런 나를 되찾으려 지그시 바라보며 기다리자 힌트가 보였다. '아기 때부터 잠이 많았던 나의 천성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풀 줄 몰라 잠으로 도망치던 나의 특성이 더해져 몸이 자꾸 눕고 싶어 했던 거구나.' 그제야 자책 대신 이해가 시작됐다. 그렇게 나를 이해하고 탐구하는 연습을 한 발씩 해나갔다. 상태가 조금 좋아져 다짐한 아침 기상을 하루 만에 실패했을 때도 예전처럼 무조건 비난하지 않았다. ‘너무 급하게 바꾸려 했나 봐. 하루 걸러 하루씩 해보자.’ 내 천성과 특성에 맞게 방법을 유연하게 조정해 나갔다. 꾸준히 운동을 해도 여전히 허약한 몸을 마주할 때면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분명 나아졌잖아. 그게 중요하지.’ 밖에서 기어들어가는 말투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날에는, ‘목소리를 작게 냈다고 해서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아니야. 내 안에 중심만 바로 서있다면, 목소리가 작던 크던, 말끝을 흐리던 상관없어. 그래 보이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마. 사람이 늘 에너지 넘치게 말할 순 없어. 정말 너의 말을 전해야 하는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중심을 잡고 또박또박 잘 전달하잖아. 그걸로 된 거야’ 그렇게 나를 다독였다. 질책 대신 이해를, 방치 대신 구체적으로 진실을 정리하여, 나에게 맞는 솔루션을 찾아 조금씩 나를 사랑하는 힘을 키워갔다.
고백하자면, 요즘 나는 내가 꽤 마음에 든다. 무엇이 극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사랑할 수 있는 속도로 나와 대화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쉽게 자라나는 욕심이 욕심으로만 남지 않도록 정직한 성장을 위해 애써보고, 지키지 못할 무리한 약속으로 나를 괴롭히지 않으며, 해낼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한다. 기준을 남이 아닌 나에게 두고,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안성맞춤 돌봄을 해주는 셈이다.
이제는 안다. 나를 사랑하는 힘은 타고나는 성질이 아니라, 계속 써야 유지되는 근력이라는 것을. 사랑은 부지런해야 성장한다. 하루 쉬면 줄어들고, 돌보면 다시 샘솟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천천히 단련한다. 나를 포기하지 않는 힘을, 나를 선명히 만날 수 있는 힘을, 나를 사랑하는 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