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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화

by 사아

도망칠 구멍이 필요했어. 사람들은 그걸 꿈이라고 부르더라.
중학교 3학년. 가수를 꿈꿨어. 춤추고 노래하는 게 좋았던 것도 맞고, 7평짜리 현실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던 것도 맞아.
“너보다 잘난 놈들도 다 나가떨어져. 헛소리 말고 공부나 해.”
아버지는 구멍부터 막으려 들었지. 지원 같은 건 기대도 안 했어.
빈 공터에서 춤 연습했어. 새벽엔 빈 건물 화장실에 숨어 노래했고. 몇 달 뒤엔 엄마 덕에 보컬 학원을 다닐 수 있었지. 2년쯤 버티니, 내가 가고 싶던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어. 1차 오디션에 붙었다고.
최종 오디션, 일요일 아침. 엄마가 밥을 해줬어. 식탁에 이것저것 차려놨지. 밥솥에서는 김이 올랐고, 국도 아직 끓고 있었고.
“성적표 가져와.”
식탁에 앉자마자 아버지 목소리가 김부터 눌러 꺼버렸어. 구겨진 성적표를 펼치고 날 노려보더라.
“이딴 식으로 할 거면 노래고 뭐고 다 때려치워.”
엄마를 돌아보며 말했어.
“당장 학원비 끊어.”
나도 참지 않았어.
“그럼 학교도 때려치우지, 뭐.”
둔탁한 소리가 났어. 얼굴이 얼얼했지. 물병이었어. 아버지가 던진 게.
물 비린내가 밥 냄새를 덮었어. 빈 통이 접시를 밀어 떨어뜨렸고. 깨지는 소리가 벽을 긁더라. 엄마가 울었어.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왔어. 목적지도 없이 떠돌다가 시간 맞춰 오디션장에 들어갔지. 결과는 별거 없었고. 근데 더 큰 문제가 있었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


고등학교 2학년, 처음 연습생이 됐어. 바라던 기획사는 아니었지만, 공짜로 노래랑 춤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출근과 동시에 핸드폰은 뺏겼어. CCTV가 하루 종일 내려다봤지. 휴일은 한 달에 두 번.
오후 다섯 시부터 자정까지 노래. 자정부터 새벽 다섯 시까지 춤. 끝나면 젖은 솜처럼 늘어진 몸을 첫차에 태웠어. 샤워만 하고 다시 학교로 갔지.
반년쯤 됐을 때 실장이 연습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어.
“넌 노래 못 해. 재능 없어. 랩이나 해.”
멍하니 쳐다봤어.
“대답 안 해? 이 씨발새끼가. 나 무시하냐? 앞으로 네 노랫소리 내 귀에 한 번만 더 들리면 죽여 버린다.”
결국 1년도 못 채웠어. 내 발로 도망쳤거든.
매니저는 다른 식이었지.
“너는 왜 그렇게 매사가 불만이고 부정적이냐? 다른 애들처럼 좀 시키는 대로 해.”
학교도 다르지 않았어. “니가 성공하면 내가 자살을 한다.” 수학 선생 입에서 나왔지. 수업 중에. 국어 선생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놈이래. 역시 수업 중에.
나는 ‘싫어요’를 삼켰어. 목소리를 못 내는 건 아니었지만.
성인이 되고 아이돌 데뷔팀으로 2년간 있었던 기획사에서도 다를 건 없었고.
집에 틀어박혀 6개월 동안 작사, 작곡, 편곡을 혼자 배웠어. 그렇게 스물셋에 첫 싱글을 냈지. 축하 문자가 왔어. 딱 한 시간이더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 그 뒤로 친구들한테 습관처럼 말했어.
“가수로 성공 못 하면 자살할 거야.”
성공하지 못한 내가 다음 날도 멀쩡히 살아 있는 그림. 그땐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거든.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