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신화
2020년 10월, 알바에서 잘렸어. 오전, 오후 나눠서 하던 거 다. 예상은 했지. 알바 시간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거든. 구인 공고 새로고침을 10분마다 반복했어. 이력서는 끝내 다음 목적지를 못 찾았지.
모은 돈으로 버텼어. 12월, 한계였지. 며칠 뒤 월세로 60만 원이 빠져나가면 남는 건 40만 원. 그걸로 서울에서 겨울을 난다?
육체노동은 피하려 했어. 가수로 성공하겠다는 희망 못 버렸으니까.
신년 나흘 전이었어. 오토바이에 오른 게. 그마저도 새 걸로 샀지. 250만 원짜리, 6개월 할부로. 중고 살 현금도 없어서.
핸드폰 배터리는 수시로 죽었어. 빙판길에선 바퀴가 헛돌아 아스팔트에 처박혔지. 손발은 동상에 걸렸지만 참을 만했어. 눈빛으로 오는 게 더 차가웠거든. 혀 차는 소리도 왔지. 운트였어. 그놈들이.
나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찌꺼기였을 테니까. 모르는 놈들 시선은 씻기긴 했어. 헬멧 안에서 들리지 않을 욕을 씹기라도 했거든. 아는 놈들 입에서 나온 건 안 씻기더라. 내 언어를 아는 놈들. 어린 시절 함께 무대를 꿈꿨던 친구들.
걔들 대부분도 나처럼 이상에 닿지 못했어. 몇몇은 아이돌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지. 돈은 꽤 벌었대. 때마침 아는 형들을 통해서 나한테도 일거리가 들어왔어. 밤낮으로 아이돌 곡을 썼지. 하나도 안 팔리더라. 곡을 붙드느라 배달만 못 할 뿐. 언제 팔릴지도 모르는 곡에 밤을 태우는 건 사치였어. 하루 벌어 하루 메우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도 미련이 남았었나 봐. 진혁이에게 연락했거든. 얼마 전 유명 아이돌에 곡을 팔았다길래 부스러기라도 떨어질까 싶었지.
카페에서 만났어. 진혁이 손목에 시계 빛이 반사되더라. 롤렉스래. 유명 아이돌 곡으로 입봉하면 자신에게 선물하는 게 전통이라나. 시덥잖은 얘기 떠들었어. 어떻게 팔았냐. 네 곡 작업은 안 하냐. 이런 거. 나도 네 작곡팀에 끼워 달라고 말할 타이밍 보면서.
“언제까지 돈 안 되는 네 음악 붙잡고 있을 거야? 일단 돈 벌고, 나중에 우리 음악 해도 되잖아. 괜한 자존심일 수도 있어.”
웃는 척했어. 안 그러면 뭔가 역류할 것 같았거든.
같은 시기, 엄마의 섬망은 심해졌어. 밥 먹을 때 숟가락도 못 들어서 고개가 꼬꾸라졌지. 기저귀에 대소변을 뭉개는 것도 일상이었고. 도움 받고 싶더라. 돈이든 뭐든. 누구한테라도.
어느 순간부터 누나와 사적인 연락은 잘 안 했어. 자기 대신 엄마 돌보라고 할까 봐. 내 배 채우기도 벅찼거든. 엄마를 보는 것도 주말마다에서 격주 바꿨지.
외가 친척들과는 연을 끊었어. 시작은 엄마가 쓰러지기 전이었지. 뇌종양 판정 몇 주 전, 엄마가 멍하자 이모는 “마귀가 들렸다”고 소리치며 두꺼운 성경책으로 엄마 머리를 내리찍었대. 누나한테는 “너 때문에 네 애미가 저 꼴 났다”했고. 누나는 그 일을 담담하게 전했어. 말하면서 목이 갈라졌었지. 그걸 혼자 다 받아냈으니까.
사촌 형제들은 수술 뒤 단 한 번도 병원 문턱을 밟지 않았어. 엄마가 퇴원한 뒤에도 마찬가지였고. 아버지? 자존심이 붙잡았어. 친구들도 보고 싶지 않았지.
뭐 하나 떠오르더라. 그루 형이 던진 단어, 선택받은 사람. 특별한 거라고 믿기로 했어. 찾아야하는 게 있다고도 했으니까. 연민을 구걸하지도, 현실 탓도 안 하기로 했지.
배달 단 하루도 안 쉬었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에 오면 자기 직전까지 내 곡을 썼지. 푼돈 긁어모아 음원도 냈어. 근데 내 이름을 부르는 곳은 없더라. 어떤 카메라에도, 어떤 장소에도 내 얼굴은 못 끼었고. 바닥난 잔고, 수치심만 끝까지 들러붙었지.
봄이었어.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졌지.
신호에 걸려 횡단보도 건너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어. 헬멧 안이 조용해졌지. 엔진 소리도, 바람도, 콜 알림도 안 들리는 순간 왼쪽 관자놀이 안쪽이 둔하게 울렸어. 이명도 들렸고.
전화 알림에 정신이 들었어. 엄마였지. 안 받았어. 쓸데없는 말 할게 뻔했으니까. 그 후로도 다섯 번이나 더 와서 차단했어. 집 가는 길에 풀려고.
음식 픽업하러 식당에 들어갔어. 조리가 덜 돼서 기다려야 했지. 핸드폰을 보다 실내를 훑었어. 내 또래 남자애가 자기 엄마랑 마주 앉아 밥 먹고 있더라. 웃으면서.
가게를 빠져나왔어. 골목 안 빌라 주차장 구석에 오토바이를 처박고 통곡했지. 그날 이후로도 그 짓을 되풀이했어. 몇 주에 한 번씩.
언젠가부터 울음도 안 나더라. 빈 느낌만 남았지. 뭔가로 채우려 했어. 나를 잊게 해줄 누군가로. 바닥까지 더럽혀지면 아까울 것도 없을 테니까. 내 몸 더 함부로 굴려도 될 테니까.
합의된 어둠 속에선 안 물었어. 과거도 현재도, 이름도.
구속했어. 지배했지. 울먹이는 눈이 올려다볼 때, 그때만큼은 살아 있는 것 같았으니까. 끝나면 옷 입는 손이 떨렸어. 거울도 오래 못 봤고.
아침이 오면 다시 헬멧을 썼어. 조리 완료 시간이 지나도 음식이 안 나오면 목소리를 높였지. 도로 위에서 왼손 엄지는 클락션을 시도 때도 없이 눌렀고. 누가 거슬리게 운전하면 신호 걸릴 때까지 끝까지 따라갔어. 욕 지껄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