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신화
태오 형이 연희동 작업실로 데려갔어. 눅눅한 반지하. 소파베드 하나랑 세면대에 대충 연결된 샤워기가 있었지. 집 구할 때까지 지내도 된대. 대신, 자기 퇴근 하고 나면.
일도 금방 구했어. 내 사정을 아는 규하 형이 카페를 같이 하자고 했거든. 매니저, 월급 200만 원. 인테리어 공사 현장도 같이 몇 번 갔어. 커피 머신이 들어선 걸 봤지. 테이블도.
바로 부동산으로 갔어. 지인들한테 빌린 돈으로 카페 근처 오피스텔 원룸을 계약했지. 남은 돈은 200만 원.
전역 다음 날부터 닥치는 대로 일했어. 물류센터, 막노동. 술집 주방에서 밤낮 구분 없이 몸을 갈아 넣었지. 이사하면 가구도 전부 새로 사야 했고, 돈 새는 구멍은 끝이 안 보였으니까. 끼니는 늘 편의점에서 떼웠어. 그렇게 2주, 입주를 마쳤지.
얼마 안 가 몸이 파업했어. 영양실조에 몸살감기까지 겹쳐서. 스물일곱 먹고 서울 한복판에서 굶어서 쓰러지다니. 헛웃음 나더라.
며칠을 침대에만 누워 있었어. 하루는 전화벨이 울렸지. 몇 안 되는 유학 시절 친구, 유니.
“뭐… 그냥저냥 버티고 있어.”
전화 끊자마자 문자가 왔어.
<10만 원 보냈어. 굶지 말고, 건강 잘 챙겨. 그래야 어머니 돌보지.>
바로 집 근처 삼계탕집을 갔어. 다행히 자존심도 굶고 있었거든. 만 원이 넘는 음식 오랜만이더라.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을 긁고 내려갔어. 눈물이 고였지. 삼계탕 한 그릇에.
배 채우니까 식당 안이 눈에 들어왔어. 수저 부딪는 소리, 주문 소리, 웃음소리. 그 안에 끼어 앉아 있으니까 괜히 어딘가에 속해 있는 것 같더라.
“사아야, 미안해.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개인 사정으로 인테리어 대금을 감당 못 했대. 뭐, 중간에 일이 꼬였나 봐. 카페 공사는 멈췄고 오픈은 결국 엎어졌지. 혹시나 해서 찾아갔어. 그냥,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커피 머신, 테이블. 다 그대로 더라. 먼지만 쌓였고.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두 개를 샀어. 집에 왔는데 안내키더라. 냉장고에 넣었어. 문은 열렸는데 복도였어. 다음 문도 복도.
두 달도 안 돼 다시 짐을 쌌어. 연고 없는 마곡동에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익숙한 마포구로 돌아가려고. 복비, 이사 비용 감수하고 연남동에 두 번째 거처를 만들었어.
구직 사이트를 뒤졌어. 망원동에서 주 5일 알바를 구했지. 그런데도 하루 두끼 겨우 챙겨 먹었어. 월세니, 공과금이니, 보험료니. 밀린 청구서부터 처리해야 했으니까. 통장 앱을 열 때마다 음악은 닫혔지.
그쯤 엄마는 거의 열 달 만에 병원에서 나왔어. 누나가 자기 원룸으로 데려갔지. 5평짜리.
주말마다 찾아갔어. 일주일에 한 끼라도 같이 하려고. 하루는 중식을 시켜 먹었어. 식탁이 없어 엄마는 침대에 앉히고 우리는 바닥에 앉아 떠먹여 줬지. 다 먹고 집에 가려는데 누나가 그러더라.
“친구 만나고 올게. 2시간만 엄마 봐줘.”
“빨리 와. 나도 일 있어”
없었어. 그냥 그 안에 있고 싶지 않았지.
“내가 뭐 하루 있으랬냐? 나는 매일 붙어 있는데.”
발 쿵쾅거리며 나갔어. 현관문도 세게 닫고. 근데 한 시간 반 만에 도어락 누르더라. 들어오면서 말했지.
“나도 가끔 생각해. 다 내려놓으면 어떨까.”
엄마는 멍하니 TV 보고 있었어.
1월, 생일 일주일 전. 눈이 내렸어. 알바에서 준 식대를 쥐고 국밥집으로 들어갔지. 음식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만 봤어. 일하느라 놓친 가십거리랑 인스타를 훑으려고. 식당 구석 천장에 달린 TV에 뉴스가 틀어져 있었어. 앵커 목소리가 주방 소란을 뚫고 내 귀에 박혔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국내에서도 처음 확인됐습니다. 어제 우한에서 온 30대 중국인으로…”
침묵이 먼저 퍼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