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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쭉정이 Feb 27. 2023

22살 여자애, 경찰이 되기로 결심하다

도저히 안 보이던 '꿈'을 발견한 계기

나는 꿈이 없는 사람이었다. 

기껏해야 막연히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정도뿐이었다. 사람을 좋아해서 방송국 PD 또는 기자 정도는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러나 모두 막연한 생각일 뿐이었고 구체적으로 내 안에 '꿈'이라는 것은 한 번도 와닿은 적이 없었다.


20대 초반까지는 꿈이 없어도 괜찮았다. 당시 우리 집은 잘 사는 편이었는데 그 덕에 불안함이나 조급함을 느껴본 적 없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미래를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게 곱게 자라던 인생이 송두리째 뽑혀버렸다.

대학교 2학년을 보내던 중,  모든 일을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우리 집은 아주 큰 사기를 당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줄줄이 문제가 터졌다.


온실 속 화초였던 내 인생에 칼바람이 불었다. 흙이었던 땅은 걸음마다 깨져버리는 살얼음판이 되었고,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만 보던 나는 불안장애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인생이 뒤바뀌어 버린 시간이었다.


방황하기 시작했다.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깨져버린 인생이 두려워 앞을 내다보기도 어려워 숨어있었다. 그렇게 22살이 되기까지 약 6개월 동안 방황을 했다.



문득 검찰, 법원은 뭐 하는 곳인가 궁금해졌다. 

어머니는 이 일로 법원을 자주 왕래했는데 그게 계기가 되었다. 가방에 노트 하나 넣고 지하철로 서초역으로 갔다. 서초역에는 대법원, 대검찰청,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모두 한 곳에 모여있었다. 건물이 참 높았고, 차가웠으며, 웅장한 느낌이었다. 모두 들어가 봤지만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 차가운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경찰서도 가봐야겠다 싶었다.

당시 우리 집 앞에는 서대문경찰서가 있어서 바로 가봤다. 물에 들어서니 현관을 지키던 경찰관이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냐길래 형사과를 들어가 보고 싶다고 했다. 신고하러 오셨냐길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형사과가 궁금해서 들어가 보고 바로 나오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경찰관이 나를 의심했다. 아마 기자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막 들어오시면 안 된다면서 나가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형사과 한 번만 구경하겠다 했고, 경찰관은 이러시면 안 된다면서 내가 서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결국 쫓겨나기 일보 직전 화장실 한 번만 쓰고 나가겠다고 했다.



놀란 마음을 잡고 경찰서 1층 화장실에 쪼그려 앉았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머릿속에 섬광처럼 무언가 스쳐 지나갔고 확신할 수 있는 감정을 느꼈다. 처음 느껴 본 감정이었다. 머릿속에 계속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집에 가자마자 엄마한테 말했다. "나 경찰 할래"


그렇게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서 노량진으로 갔고, 시간이 흘러 합격한 뒤 서대문경찰서로 발령이 났다. 그렇게 나는 경찰관으로 새 삶을 살기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순수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섬광처럼 느껴진 그 기분은 운명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분명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경찰관으로 일한 지 벌써 8년 차가 되었다. 일이 마냥 좋은 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럴 때, 힘들었던 시기와 경찰이 되고 싶었던 간절함을 다시 떠올리면 마음을 조금은 다시 다잡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우리 가족 또한 한 때 피해자였기 때문에, 지치는 날에도 피해자가 우리 엄마 아빠라고 생각하면 나는 계속해서 달릴 수밖에 없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그래도 나는 조금은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일들이 한 번씩은 있는 것 같다.

꿈이 없던 나에게,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것처럼, 신께서 내게 길을 알려주셨던 것 같다.


어떠한 일을 하던 각자에게 그만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경찰이라는 직업이 운명처럼 다가왔듯, 꼭 어떤 스토리가 있지 않더라도, 우리가 이 일을 선택하고 하는 이유는 알게 모르게 어떤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뜻에 맞게,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디엔가 반드시 의미가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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