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곳은 고소 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수사부서로, 평균적으로 수사관 1명 당 약 30건의 사건을 가지고 있다. 죄명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경제사범, 특별법위반을 다루고 있다.
우리 수사팀에는 고소장을 자주 접수하는, 나이가 지긋하신 단골손님이 있다.(이제 '그녀'라고 호칭하겠다)
그녀가 접수하는 사건은 모두 불송치로 종결되는데(옛날 표현으로 불기소), 그녀의 고소장들은 모두 동일한 내용으로서 이미 한 번 수사가 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수사규칙상 한 번 수사가 이루어질 경우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다시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임에도 그녀는 약 300페이지 분량의 고소장을 한 달에 한두 번씩 꾸준히 접수하고 있다. 그것도 몇 년째.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그녀의 고소장이 또 접수되었고, 역시나 이전 고소와 같은 내용으로,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음에도 몇십 년 전 잃어버린 돈을 찾아달라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수사관들은 그고소장에 관심이 없었다. 이에 수사팀장님이 발 벗고 나섰다.
수사팀장님은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자이기 때문에 검토해야 될 서류가 많아 우리 회사에서 가장 바쁜 위치 중 하나이다. 그런 팀장님이 그녀와 소통을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팀장님은 그녀와 직접 전화통화를 하셨고, 약 1시간 동안 긴 대화를 나눈 팀장님은 2일 뒤 그녀를 뵙기로 하였다.
아무리 출석 요구를 해도 절대 수사기관을 방문하지 않던 그녀였는데, 드디어 그녀가 왔다. 전화통화할 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평범한 행색에 다만 어딘가 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팀장실에서 약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고, 말싸움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달리 팀장실을 나오는 그녀의 얼굴은 밝았다.
팀장님은 담당 수사관들을 호출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고소인께서는 아무런 이유 없이 고소장을 계속 접수하시는 게 아니다. 처벌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고소인이 수년간 똑같은 고소장을 접수하는 이유는,
그저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뿐이다.'
나도 그랬고, 수사관들은 그녀를 그저 민원인으로 생각했다. 수사결과를 통지하는 날이면 불같은 말로 전화기를 불태우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날 이후로 그녀의 태도가 변했다. 그녀의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 느껴졌고, 무엇보다 수사관을 힘들게 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피고소인을 어떻게든 잡아내서 형사처벌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저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이었다니.의미 없는 수사를진행하기보다는 단지고소인의 억울한 마음을 알아주는 게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는 거였다.
물론 그녀는 지금도 공소시효가 지난 동일한 내용의 고소장을 계속 접수하고 있다. 그러나,고소인이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접수하는 것 만으로 고소인의 마음이 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그녀 사건 외에 내가 맡고 있는 다른 사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고소인의의중을 알아주는 것 또한중요한 일임을그녀가 내게 알려주었다.수사관으로서 한걸음 더성장하게 해 주었다.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