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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슈가 Jul 06. 2020

여행하듯이

마법 같은 일. 마음이 하는 일

9년 전 장사꾼이 되기로 하고 나선 첫 서울행.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 5시.

동대문 상가 주변은 구매 대행자들이 상가 앞에 모아 두었던 옷 보따리들을 대형버스에 싣고 있었다. 전날 저녁 8시에 오픈한 매장들은 하나둘 마감할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자정에 오픈하는 상가는 다음 날 정오까지 업무시간이다. 우리처럼 먼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새벽 5시면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내려와야 하지만 인근 수도권 상인들은 아침에 일찍 나와서 장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저녁에 오픈하는 상가에는 퇴근 후에 와서 장을 보고 돌아간다고 했다. 나처럼 먼 지방에서 서울까지 물건을 하러 다닌다는 것은 예사 노동이 아니다.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일이니까 서울까지 가서 물건을 해오는 일은 이 일의 특성상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으며 이런 노고 또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노동의 대가와 교통비도 옷값에 포함이 되어야 하지만 사실 물가는 지방이 더 싸다. 나 역시도 이 일을 해보기 전에는 이런 힘든 과정에 대해서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내가 사는 세상 밖의 이야기로 생각했다. 그래서 서울로 가는 길이 늘 여행 같은 것이었을까?  


여행(旅行)이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내가 팔 물건을 사기 위해 서울을 가는 일도 여행(旅行)이라고 여기고 싶었다. 동대문 상가를 다니면서 쓴 나의 글도 여행 이야기처럼 전해졌으면 좋겠다. 거창한 여행지를 다녀온 것이 아니고 일을 목적으로 서울을 다녔지만 평범한 주부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생활이기에 내가 다닌 곳의 느낌을 여행(旅行)이라는 생각으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2014년 7월 '좋아서 하는 카페'에 앉아서 휴일을 마무리하며


저녁 8시 반쯤 서울 동대문시장에 도착해서 일을 마치고 새벽 5시.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일을 마친 상인들이 하나둘 버스에 오르는데 출발할 때의 꽃단장했던 모습들은 사라지고 밤새 공기도 답답한 밀폐된 상가에서 시달린 모습들이다. 힘들고 지쳐서 잠은 오고 다리는 퉁퉁 부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화장기가 다 사라지고 피곤함으로 덧칠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내 모습도 저렇겠구나.' 싶은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오기도 했다. 이제 첫날인데 당장 다음부터 혼자 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다. 밖에서 보았던 옷가게 주인의 화려한 모습과 이렇게 밤새 일을 마친 사장님들의 모습은 생각도 못했던 모습이었다.

상인들을 태운 버스는 올라올 때의 인원과 동일한지 인원 파악을 하고 출발했다. 한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는 듯 보이는 서울을 뒤로하고 버스 창가의 커튼을 닫고 무릎담요를 얼굴까지 당겨서 덮고 잠이 들었다.

밤새 정신없이 돌아다닌 것 말고는 내가 어떤 옷들을 샀는지 순미가 어떤 옷들을 골라 주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밤사이에 발이 붓도록 고른 옷들을 얼른 걸어주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지쳐 있었지만, 또 다른 설렘과 두려움이 있었다.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경험 서울행은 이렇게 마무리를 했다.     


두 번째 서울을 가야 할 때가 되었다. 이번에는 혼자 가야 한다. 2주간의 장사를 어떻게든 해냈다. 어떤 물건을 해야 할지 수시로 고민하면서 늘 계절을 앞서가야 함을 잊지 않아야 했다. 서울 간다는 안내문을 걸어두고 장차를 탔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서먹서먹했다. 삼촌에게 되도록 맨 앞자리 혼자 앉는 자리를 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키 큰 손님들에게 맨 앞자리는 양보해야 했다. 운 좋게 키 큰 손님이 없는 날은 어찌 가능하기도 했다. 공기도 틀리고 자리도 넓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조용해서 앞자리를 선호했다. 잠을 자 두어야 하는데 뒷자리는 좀 시끄러워서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날카로웠다. 아무리 여행 가듯이 간다고 하지만 시끄럽게 수면을 방해하는 것은 피곤했다. 버스는 멀미 때문에 잠을 자야 했다. 그리나 낯선 사람과 팔이 맞닿은 채로 서울까지 몇 시간을 붙어서 가는 것이 불편해서 잠을 깊이 잘 수도 없었다.

혼자 가는 서울행.

마음은 걱정과 긴장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가을이 점점 다가오는 바깥 풍경을 보면서 '그래, 나는 지금 여행(旅行)을 가고 있어' 억지로라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스스로 체면을 걸기도 했다. 힘든 노동이라 생각이 들 때면 가기 전까지 마음이 무겁고 '가기 싫다. 힘들다.' 한숨을 짓기 때문에 최대한 여행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휴게소에 도착했다. 출출하고 입이 궁금한데 혼자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막막했다. 이런 여행 처음이니까. 살면서 한 번도 혼자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기에 휴게소에서 혼자 무엇을 사 먹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이것도 한두 번 더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서 버스에 올랐다. 휴게소에서 혼자 먹는 것보다 버스에 앉아서 먹는 것이 더 편했다.  

서울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서 어디를 가는지 우르르 흩어져서 가고 있었다. 나는 어디부터 가야 할지 막막했다. 딱 한 번 와본곳을 길치인 내가 동서남북 구분도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방향감각이 전혀 없었다. 일단 수첩에 적어둔 곳부터 찾아갔다. 한번 가본 곳이라 어느 상가가 어디에 있는지 눈앞에 두고도 못 찾고 헤맸다. 근처에 다 몰려 있는데도 그것이 눈에 안 들어왔다. 수첩을 들고 매장을 방문하고 겨우겨우 낯선 곳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다행히도 이전에 순미와 오랫동안 친분이 있었던 매장에서는 나를 기억하고 서먹하지 않게 반겨 주기도 했다. '그래 이 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위안을 삼았다. 다니다 보니 나처럼 지방에서 혼자 올라와서 두리번두리번 매장을 둘러보는 내 또래의 아줌마들도 보였다. 젊은 아가씨들은 새벽이 되어도 여전히 예쁘기만 했다. 나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들의 지쳐가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몇 년 후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서글픔이 커졌다. 하지만 나는 꿋꿋하게 이 일을 여행하듯이 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믿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노동이 아닌 여행이 될 수 있는 '마법 같은 일. 그것은 마음이 하는 일'일 것이다.


어느 날부터 장차를 타지 않고 KTX를 타고 서울을 다녔다. 서울 가는 기차 안에서.


서너 번 가는 동안  두 동생과 친해지게 되었다. 한 참 어린 동생들이지만 옷가게는 나보다 선배인 동생들과 서울 가는 일에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다. 혼자라는 어색하고 외로운 여행이 아니어서 좋았다. 서울에 도착하면 단골로 가는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고 일을 시작했다.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만나서 휴식도 취하면서 음료나 간식을 먹을 때는 같이 여행 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전국의 많은 상인들과 중국 상인들까지 많아지면서 사람 구경하는 일도 재미있었다. 중국 상인들을 위한 옷을 만들어 파는 매장들도 늘기 시작해서 화려한 디자인과 알록달록한 색상의 옷들이 많아졌다. 우리나라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중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매장들이 활기차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차를 타는 일은 점점 힘들었다.  


오래전 기억을 기록하면서 지금 침체되고 썰렁해진 동대문의 분위기를 상상해본다. 오랜 거래처에서의 한숨소리도 들린다. 내수경기가 침체되면서 중국 상인들에게 의존해 오던 매장 역시 코로나 19 사태로  침체되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동대문시장은 오래전 내가 경험했던 활기찬 분위기와 치열했던 삶의 현장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절이 다시 오기를 희망해 볼 뿐이다. 






2014년 6월 30일 이날은 소나기가 내렸다.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사진을 찍고 짧은 글을 남겨놓았다.

서울 가는 버스 안ᆢ
 
어느덧 유월도 이렇게 마지막 날이 되었다.
한차례 소나기와 함께 초하의 싱그러움이 

잠시나마 또 다른 일상을 만끽하게 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약속이 없어도 마주하게 되는 시간들이지만
늘 새로운 모습으로 다르게 다가오고 또 지나간다.
 
시간은 똑같은 때의 반복이 절대 아니다.
내가 지나오고 지나가고 지나갈 것이기에..
그 시간은 누가 어떻게 지나가느냐에 따라
다르게 그려질 내 이야기 속에 있으니..
 
반복의 일상이지만 결코 반복이 아닌 삶.
때론 너무 지겹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겠지만
매일 새로운 시간을 선물같이 맞이하고 사용해가는 것이라고

소중하게 감사하기로 한다.
 
힘들게 사는 것과
힘쓰며 사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열심히 정성껏 살아보려고 힘을 낸다.  

파이팅!!


- 2014년 6월 30일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남긴 기록을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겨본다.

꽤 긴 세월이 흘렀다.

삶에 대해서 시간에 대해서 여전히 나는

정성껏 살아보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달달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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