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아 기다리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달달 슈가가 서서히 잊히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면서 저에게는 생애 첫 '출간'이라는 바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가게도 활기를 되찾아가면서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출간을 앞두고 준비하는 일까지 정말 몸이 몇 개되든지 하루가 한 서른 시간쯤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보냈습니다.
책 제목은 <나는 작은 옷 가게 사장님입니다>입니다.
어느 날 문득, 정말 문득 옷가게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책들이 나와 있는데 옷가게 주인의 진솔한 이야기는 못 보았습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손님들에 대해 불편한 이야기를 감히 할 용기가 없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들의 옷 가게 이야기도 아직 책으로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왜 아줌마들의 시장 옷에 대한 이야기는 읽히지 못할까요? 과소비를 미화하거나 소비를 부추기는 이야기도 아니고, 사치와 낭비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데 왜 아줌마들의 시장 옷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도 쓰지 않았을까요?
만 9년을 옷가게 사장님으로 살아오면서 처음 시작했던 낯선 직업 '장사꾼'이 된 이야기. 이 곳에서 만난 손님들과의 이야기. 조금은 부끄러운 이야기도 솔직하게 썼습니다. 동대문 시장을 처음 갔을 때의 설렘과 낯선 세계를 만나고 늘 낯선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두려움을 글로 썼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낯선 사람들과 단골이 되어가면서 손님들에게 '슈가 언니'라 불리면서 지내고 있는 나의 일터이자 놀이터 같은 공간 '슈가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렇게 즐겁게 썼던 글을 출판사 리스트를 뽑아서 투고하였습니다. 원고를 읽고 연락이 온 출판사도 있었습니다. 처음 해 본 투고와 연락에 얼떨떨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무언가 맞지 않는 것 같아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혹시 출판사와 연결이 되지 않더라도 초고가 있으니 독립출판이라도 하면 된다는 주변 지인들의 의견에 끄덕끄덕 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씽크스마트'라는 출판사를 알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투고를 했습니다. 메일을 확인한 편집장님의 연락이 받고 대표님과 미팅을 하고 출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기획출판이라는 조건으로 진행하였으며 목차 변경 등 여러 번의 탈고와 교정 작업등 제법 꼼꼼한 준비운동을 마치고 예쁜 표지 디자인으로 옷을 입힌 책이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브런치에 연재한 글의 일부도 책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나는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히말라야 산맥을 촬영하느라고 비싼 헬기를 빌릴 수가 없으며, 여행 일기를 쓰기 위해 런던이나 파리의 어느 호텔에서 지낼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집 거실에 앉아 돋보기를 쓰고 느린 타자로 톡톡 두드리며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글로 적었다. 유명한 작가의 글이나 훌륭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쓴 책은 읽기 전부터 화려한 이력이나 스펙이 책 표지에 광고 문구처럼 새겨져 있다. 독자들은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이력을 본다. 그리고 자신들의 평범함과는 다른 삶에 이미 ‘와~’ 하고 감탄사부터 플러스로 장착하고 책의 첫 페이지를 열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어려운 문장을 쓸 필요도 없고, 없는 일을 지어내는 것도 아니기에 그냥 편안하게 회상하면서 썼다. 평소 책을 잘 안 읽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호기심에 내가 쓴 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욕심은 있다. 내세울 이력은 없으니 ‘이 아줌마 뭐지?’ 궁금해하면서 읽었으면 좋겠다. --- p.18
동네책방 '숲으로 된 성벽'에 진열된 나의 책
코로나가 터졌어도 나는 원래 쉬는 일요일 말고는 단 하루도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 어떤 날은 한 명도 오지 않아 종일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전기세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혼자 있으면 추우니까 어쩔 수 없이 난방을 했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음악을 틀어두었다. 가게 안에 조명도 많은데, 손님이 없다고 부분적으로 꺼두는 것도 싫어서 여느 때와 똑같이 유지하면서 나의 일을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단골손님들을 위해 카카오스토리에 신상 사진을 부지런히 올리고 소소한 이야기라도 기록했다. 어쩌면 요즘 손님들은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더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손님들이 여전히 나의 스토리를 보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코로나 때문에 매일 뉴스를 빼먹지 않고 보듯이 ‘슈가의 스토리’ 또한 매일 볼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 p.110
단골들과 옷에 대한 고민을 함께한다는 말을 앞에서 했다. 신상을 준비할 때 내 머릿속은 온통 옷 생각뿐이다. 매일 거래처에서 올리는 신상 사진을 보다 보면 눈이 빠질 것처럼 피곤해진다. 하지만 신상을 살펴보는 일을 게을리할 수가 없다. 하나라도 우리 스타일에 맞는 옷을 골라야 한다. 저녁에 가게를 마치고 퇴근하지만 집에 와서는 다시 신상 고르는 작업을 한다. 마치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기분이다. 거래처에서 신상이 쏟아질 때는 새벽 두 시까지 폰에서 눈을 뗄 겨를 없이 바쁘게 주문하고 입금하고… 잠을 쫓아가면서 일한다. 그렇게 일을 끝내고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면 어느새 날이 훤하게 밝아온다. 그렇지만 옷에 대한 욕심으로 신상을 내일 당장 보고 싶어 진다. 사진으로 보고 주문한 예쁜 옷들을 어서 빨리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고 얼른 입어보고 싶어서,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 “또 신상이 나왔네요?” “왜 자꾸 예쁜 옷들을 갖다 놓는 거예요?” “이제는 다음 계절까지 안 올 거예요.” “지난주에 많이 질렀는데 또 예쁜 옷을 해오면 어쩌라고.” “이번 달은 거지가 됐어요.” “슈가에는 오면 안 되겠다. 옷 찾으러 왔다가 또 사네.” --- p.142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마다, 마지막 날에는 ‘올해는 유난히 빨리 지나갔어’라고 말한다. 그 말속에 허무하게 보냈다는 후회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바쁘게 또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단한 성과나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작은 목표 하나를 이루었고 지금 내가 하는 일과 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애쓰며 살아온 것이다. 눈에 보이는 커다란 결과만이 우리가 노력하며 살아온 흔적은 아닐 것이다. 분명히. ‘누군가의 가슴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 사람이 되었던 일’, ‘나 자신과 했던 작은 약속 하나 지키며 살았던 지난 세월’, 그리고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시간’ 등…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서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일상이 가장 큰 목표일지도 모른다. 거창한 일들은 그런 일을 하고 싶어 하거나 지금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몫으로 넘겨주고 우리는 소소한 행복을 찾으면서 자신의 자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약방의 감초’ 같은 소중한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살면서 힘 빠지고 속상했던 일을,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기도 했던 시간을 붙들고 있지는 말자.
---p.274
주변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건네는 축하 인사를 받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럽습니다. 아직은 서툴고 부족한 글입니다.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고 그냥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주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우리의 모습입니다. 옷가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세요. 달달한 슈가의 스토리가 소소한 행복을 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