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뿌리 (上)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by 강후림


학교 앞 골목길에 막 접어들었을 때였다. ‘윤’이 보였다. 주위에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다소 이른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마침 윤 혼자였다. 잠깐 망설이다가 차창을 내리고 물었다.

“윤아, 탈래?”

윤은 순간 내 얼굴을 보는 것 같더니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 돌려 제 갈 길을 갔다. 무안했다. 다른 아이라면 으레 탔을 것이다. 학교는 산중턱에 있고, 날은 더워지고 있었다. 불편한가 보다, 괜한 오지랖 떨었군, 중얼거리며 다시 차를 몰았다.




윤은 외딴 섬 같은 아이였다. 연결된 다리도, 오고가는 배도 없는….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외로운 거지, 윤이 진짜로 외로운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다.

방자한 웃음소리와 욕지거리, 차라리 괴성에 가깝다 할 노래 소리 등으로 순식간에 귀가 얼얼해지는 쉬는 시간에도, 윤은 주변을 음소거 처리한 듯 앉아 있었다. 자신을 향한 농지거리에는 잠깐 희미하게 웃을 뿐 평정인지 무심인지 모를 원래의 상태로 재빨리 복귀했다. 말을 걸기 전에는 먼저 말하는 법이 없었는데, 그 대답이라는 것마저도 한 박자 늦은 단답형에 그쳤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반복되면서 아이들도, 교사도 차츰 윤과 친해지려는 수고를 굳이 하려 들지 않았다.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아이, 원래 그런 아이라는 주변의 인식은 윤을 외롭게 했을까, 편하게 했을까. 나서서 윤을 소외시키는 이도, 품으려는 이도 없었다. 윤은 어떤 말썽도 일으키지 않았으므로 교사의 관심이 시급하게 필요한 몇몇 요주의 인물에게 늘 상담의 우선순위를 빼앗겼다.


그간 윤을 마주할 때마다 내심 걱정스러웠으나 그런 마음 쏠림은 눈에서 멀어지면 또 그만이었다. 해묵은 우려를 안은 채 운명적으로 윤의 담임이 되었다. 그를 면밀히 관찰할 명분을 등에 업고 얄궂은 사명감을 불태우며 윤과의 거리를 좁힐 기회를 노렸다. 섣불리 다가갔다간 또 무안해질 일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윤의 뒷모습을 보았다. 점심시간 아무도 없는 불 꺼진 교실에 윤 혼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돌아섰다. 저대로 둘 일이 아니야, 나는 걱정스레 되뇌었다.


며칠 뒤 어렵게 윤과 마주 앉았다. 저에게만 뜬금없이 상담을 통지하면 불편해 할까봐 학기 초 전수 상담이라는 명목 하에 윤의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터였다. 오늘 컨디션은 어떠니, 점심은 맛있게 먹었니, 학기 초라 힘들지, 이런저런 잡담으로 변죽을 울리다가 훅하고 정공을 가했다.

“너 그때 왜 내 차 안 탔어?”

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불편해서요, 라는 대답이라도 듣고 싶었으나 역시나 침묵으로 대응했다. 돌려 말해봐야 나만 입 아프겠다, 싶어서 작정하고 거듭 잽을 날렸다.

“너 지금 무지 불편하지? 미안해, 네가 불편해 한다 해도 앞으로 이런 자리는 자주 있을 것 같아. 널 좀 더 알아야겠어. 난 네가 너무 궁금하거든.”

어차피 이렇다 할 반응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고, 별다른 계획도 없었다. 그건 고작 우리의 첫 만남이었으니까. 의심의 여지없는 장기전이었다. 거북하고 괴로워도 누군가와 마주 앉아 눈빛을 교류하는 시간이 윤에게 꼭 필요할 것 같았다.




그간 학부모 상담 내공이 그럭저럭 쌓인 나였지만, 내가 먼저 전화 걸기란 매번 적잖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학부모 상담은 피하고 싶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자식의 모습, 더군다나 10대 아들의 학교생활은 부모에게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 덕에 자식에 대한 온갖 환상과 오해로 무장한 부모들이 때때로 날 곤혹스럽게 했다.

이번에도 그럴까, 윤의 부모는 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부모라고 하면서도 상담 전화는 으레 아이의 어머니에게만 걸게 된다. 자식에 대한 타인 -더군다나 담임교사- 의 짙은 우려를 접하는 일은 엄마의 가슴을 얼마나 철렁하게 할 것인가. 여러 번에 걸쳐 지극히 조심스레 당신 아들의 학교생활을 브리핑했다.


“윤이 어렸을 때 남편의 외도가 있었어요. 그맘때 제가 집에서 자주 울었죠. 윤이 그걸 종종 봤고요. 여태 헤어지지 못하고 그냥 살고 있어요.”


예상치 못한 그녀의 고백에 나는 주춤했다. 그녀는 끝내 울먹였다. 수화기 너머의 그녀와 어린 날의 윤을 꼭 안아 주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머리를 굴리느라 나는 꽤나 진땀을 뺐다.


나도 엄마의 눈물을 속수무책으로 마주한 적이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그날 엄마는 내 앞에서 울었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정도가 아니었다. 엄마가 울다니, 저리 무너져서 울다니, 어린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엄마가 운다는 사실보다도 엄마가 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에 더 놀랐다. 나만의 원더우먼이 영원히 사라진 느낌이랄까. 묘한 배신감마저 들었다. 거대한 슬픔의 정체를 헤아리기에 나는 너무 어렸고, 저리 울다가 내 엄마인 것마저 포기하고 영영 떠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게 두려워서 나도 같이 울었다.


단 한 번의 기억도 이리 생생한데…. 집안을 휘감은 낯선 슬픔과 냉랭한 기운 속에 무방비로 놓인 채 오랜 시간 어리둥절했을 윤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 누구도 해명하지 않았다. 애들은 몰라도 되는 어른의 문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이는 애들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언급하기 두려워서 다들 쉬쉬하는 동안 아이는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린 채 살아온 걸까. 문득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이성복 시인의 시구가 떠올랐다.


나는 윤의 입에서 아픔에 관한 말이 나오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