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뿌리 (下)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by 강후림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 윤에게도 친구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내가 보고 짐작한 바가 윤의 전부일 리 없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윤아, 네게 친한 친구가 있니? 꼭 학교 친구가 아니어도 좋아. 나이나 성별 이런 거 상관없이 말이야.”

윤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는 눈이었다.

“… 친한 친구란 어떤 거죠?”

당황했지만 반가웠다. ‘예, 아니오’ 식의 건조한 대답이 아니라 주저함이 느껴지는 질문이었으니까.

“음…. 친한 친구에겐 기쁨이든 슬픔이든 두려움이든 후회든 그냥 막 털어놓게 돼. 내가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계산 따윈 하지 않고서 말이야.”

“…그런 거라면, 없습니다.”

“그렇구나….”

“…….”

“외롭지 않니? 내가 너였다면 외로울 것 같은데.”

“…….”

“뭐랄까, 나는 네가 외롭지 않은 게 아니라, 외로움에 무감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윤은 웃었다. 일종의 실소였다. ‘오버하고 있네.’라고 말하는 듯해서 나는 순간, 움찔했다.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거니?”

윤은 다시 입을 닫았다. 침묵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좀 더 주절거렸다. 내가 뭔가 실수한 걸까. 해명되지 못한 윤의 웃음이 날 오랫동안 불편하게 했다.


막막한 마음에 교내에 상주하시는 전문 상담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윤을 상담실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넌지시 제안했지만 역시나 요지부동이었다.

“사회적 고립 상태인 것 같아요. 자발적으로 자신을 외부와 차단하는 거죠. 선생님 혼자 해결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부모의 적극적인 의지와 개입, 협조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가정에서 촉발된 문제로 보이니까요. 어머님께 전문 상담을 권유해 보세요.”


아이의 담임교사라고는 하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내밀한 가정사와 오래 묵혀온 아픔을 털어놓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어쩌면 아이의 선생이기에 더욱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윤의 어머니가 나에게 깊은 속내를 드러낸 것은 아이에 대한 걱정이 개인사를 공유하기 싫은 마음보다 더 절실하기 때문이겠지.

“곧잘 웃고 말도 재잘재잘 잘 했었어요.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죠. 지금은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있지만. 같이 살아도 각자 사는 것과 다름없어요.”

그녀는 줄곧 남편에 대한 원망과 자책 사이를 오갔다. 물론 어른들의 잘못이었지만, 결코 그녀만을 탓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모는 아이의 울타리이자 본보기여야 한다는 건 환상일지도 모르니까. 부모의 도리라는 윤리적 잣대에 비해 한 인간이 겪는 아픔과 고통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생생하니까. 엄마가 돼서 왜 어린 아이 앞에서 자주 울었느냐고 책망할 게 아니라, 왜 울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묻고 경청할 존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타인도 돌볼 수 있을 것이므로. 본인의 슬픔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사람에게 어찌 타인에 대한 배려를 기대할 것인가.

윤의 어머니에게 홀로 먼저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녀가 끝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내 영역 밖의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그녀가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다시 윤과 마주 앉았다.

“어머니랑 통화했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주시더라. 불쾌하니?”

“…….”

“너를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으니 이해해줘.”

“…….”

“어머니는 너를 생각해서라고 하셨지만, 네 입장에서는 어땠어? 차라리 두 분이 이혼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 있니?”

“그건 아니에요.”

뜻밖에도 윤은 꽤나 빠르게 그리고 분명히 대답했다. 냉랭하고 경직된 집안 분위기가 오히려 윤을 더 힘들게 한 건 아니었을까, 하고 내심 짐작하던 차였다. 어머니는 윤에게 한 번도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없다고 하셨지만, 윤은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원망, 신뢰를 상실한 관계의 위태로움에 대해. 아이는 어리다는 이유로 가족의 문제에서 소외됐지만, 그로 인한 아픔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주체 중의 하나였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연약한 존재에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얼마나 절박하게 다가왔을 것인가. 존재론적 불안과 관계의 가난 속에서 점점 말을 잃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끝내 윤의 아버지와는 통화하지 못했다. 가족 문제에 제3자가 깊이 개입하는 일에는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나는 두려웠다. 불쑥 나타나 가정사를 들먹이며 아들을 염려하는 담임교사의 존재는 그에게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그에겐 또 어떤 사연이 있으며, 나는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 걸까. 당사자들이 오랫동안 묵혀 온 문제를 제3자가 섣불리 들쑤셔서 더 큰 갈등을 불러오진 않을까.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윤의 마음에 내재해 있고, 어머니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잘 알면서도 나는 끝내 망설이기만 했다. 어머니에게 알린 윤의 문제가 아버지에게도 전해져야 하고, 아들의 오랜 외로움을 부부가 함께 응시해야 할 때이지만, 나는 결국 적당히 타협하고 말았다. 윤을 그대로 두는 것은 게으른 외면이라고, 주제넘은 경고라도 했다면, 만약 그랬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입시 상담과 각종 공문 처리, 수업 준비 등으로 허덕이던 일상 속에서 당초 계획만큼 윤과 자주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윤은 여전히 혼자였다. 간간이 이어지던 상담에서도 그동안 힘들고 외로웠다, 는 식의 고백은 고사하고,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데도 서툴렀다. 사려 깊은 돌봄이 있는 곳에서 기대며 살아가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아이에게,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무한한지, 말로는 다 전할 수가 없었다. 무언의 눈맞춤과 토닥임 정도로 ‘나는 늘 너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단다’하는 마음을 종종 표현할 뿐이었다. 외로움에 취약한 나라는 인간의 방식대로, 윤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위무하고 싶었다.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해 본 경험이 없거나 너무 오래 전이었다는 게 문제예요. 선생님께서 그 역할을 해주세요. 따뜻한 관심과 정서적 지지를 받아본 경험은 윤의 기억 속에 분명히 남을 거예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윤의 이렇다 할 변화도, 어머니의 적극적인 협조도 없는 상황에서 점점 지쳐가던 나에게 상담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은 큰 위안이 되었다. 도리어 내가 너무 큰 변화를 바랐던 건 아닌지, 내가 뭔가 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오만을 부렸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어머니의 눈물과 아버지의 무심함을 헤아리기까지, 길었던 고립의 시간을 허물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필요할 것인가. 그건 오롯이 그들의 몫이다. 모든 가족에겐 복잡다단한 관계의 얽힘이 존재하고, 고유한 사정 속에서 구성원 각자가 짊어져야 할 불가피한 몫이란 게 있으니까.

삶의 생생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걱정하고 기웃거리는 마음, 관계의 풍요로움 속에서 존재가 확장되는 경험 같은 것들이 윤과 함께 하기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서툴었지만 진심이었던, 나의 관심과 염려가 윤의 마음속에서 작은 씨앗이라도 되면 좋겠다. 얼어붙고 쪼그라들었던 그의 마음속에 작은 틈이라도 벌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