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또는 나에게 보내는 편지 1

수능을 앞둔 너희들에게

by 강후림


그날은 평소보다 더 일찍 나서야 했어. 누워 있는다고 더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지. 동이 트기도 전에 나선 11월의 거리는 너무나 추웠어.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나왔지만, 온기 가득한 집안과 사뭇 다른 바깥 온도에 정신이 번쩍 든 거지. 사실 모든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아. 17년의 세월이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어 버렸어. 세상에, 17년이라니. 게다가 교사가 되고 난 후 수능 응원을 나섰던 날의 기억과 뒤섞여, 어떤 것이 내가 수능 치던 날의 풍경이었는지 선명하지가 않아. 응원 나온 학교 후배들이 여럿 있었던 것도 같고, 그냥 몇 분의 선생님만 계셨던 것도 같아. 누군가가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넨 것 같기도 하고, 작은 간식 꾸러미를 쥐여 준 것 같기도 해. 혹은 이도 저도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래도 여전히 선명한 기억 하나가 있어. 3학년 부장 선생님이 덥석 내 손을 잡으시더니 왼손 엄지 손톱에 글자 하나를 써주시고는 등을 투닥거려 주셨지. 한자였던 건 분명한데, 무슨 자였는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수험장에 들어섰고, 낮은 책상과 높은 의자에 당황했던 기억이 나.

난 시험 불안이 있었어. 주위 상황에 굴하지 않고 차분하게 내 시험지에만 집중하는 강심장이 못되었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점수가 널을 뛰었고, 고3 수험생 시절에는 정말 일희일비하며 살았어. 긴장하면 장운동이 극심히 활발해지는 통에 시험 중 화장실에 가는 일도 잦았지. 순발력도, 냉철함도, 융통성도 없는 쫄보여서 참 힘든 수험 시절을 보냈어. 수능 때도 결국 언어 영역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오고 말았지. 남은 문제를 풀려고 펜을 들었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손이 파르르 떨렸던 것 같아.

그날 아침에 선생님이 써주신 한자는 무엇이었을까. 이길 ‘승(勝)’이었을까, 닿을 ‘도(到)’였을까, 이룰 ‘성(成)’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 내가 그 선생님이었다면 당시의 나에게 무슨 글자를 써주었을까. 그리고 지금의 너희들에게 내가 무슨 글자를 써줄 수 있을까. 사람은 딱 자신의 경험치만큼 타인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야 진심을 담을 수 있을 테니까.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너무나 진부한 말이지만 이게 나에겐 평생의 숙제였어. 실전을 연습처럼 해낸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쉽니. 편안하게, 하지만 집중해서. 그게 내 경험치에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이야. 그래, 그렇다면 편안할 ‘안(安)’을 써줘야겠다. 시험장에서 내내 함께 할게. 쫄보끼리 힘을 보태 보자.




한편으론 이런 응원이 다수에게는 무용한 일이겠다 싶어. 애초에 대학에 뜻을 두지 않은 친구도 있고. 수능 성적 자체가 필요하지 않은 친구도 많으니까. 이러나저러나 그동안 애썼다, 얘들아. 성적으로 줄 세우는 학교에서 줄곧 감당해야 했을 소외나 배제의 기억이 너희의 남은 날들을 지배하지 않기를 바랄 뿐. 성적으로 인한 열등감이 자존감마저 깎아내리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말이야.

김윤석 감독의 ‘미성년’이라는 영화에서 매우 인상 깊게 봤던 장면이 하나 있어. 여고생 ‘주리’와 ‘윤아’가 시험 기간, 학교를 박차고 나가려고 하자 선생님이 말씀하셔. “야, 시험 안 보고 어디 가. 너네 그러다가 나중에 진짜 큰일 난다.” 둘은 뭐라고 대답했게. “거짓말.” 그러고는 그냥 나가버리지. 이 장면이 나는 왜 그렇게 통쾌했을까. 어쩌면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로서 행했던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이 부정당하는 장면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공부 외에도 다양한 길이 존재하지만, 내가 가진 경험치로는 그 다양성을 열어주기에 역부족이었어. 또 공부하는 과정에서 성취감 한 번 느껴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공부의 길을 택한 어른의 조언이 어떻게 들릴까 하는 회의감도 들었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고 하기엔 사는 게 도대체 만만치가 않아서, 무책임한 조언이 될까 두려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영화 속 선생님이 말하는 ‘큰일’이라는 게 정말 큰일인지, 아닌지. 이제 곧 학교를 벗어나면 또 다른 현실의 벽과 마주하게 될 거야.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할게. 적어도 지금보다 좀 더 자유롭기를 바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지금/ 간절하게 길을 찾는 너에게로 / 빛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니.’

박노해의 ‘별은 너에게로’라는 시의 일부야. ‘가장 빛나는 별’이 수능 대박이나 대학 합격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줘. 때론 가슴에 품은 말 하나가 살아갈 힘이 되더라고. 사실, 너희의 모든 하루하루가 이미 빛나는 별이야.